2014년 3월 31일 월요일

[에바노트] 내 선택은 언제 시작되었고,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

선택
Choice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넌 꿈이 뭐니?
그 다음엔 뭐할거니?



선택.

오늘 문득, 내 삶에, 나는 언제부터 선택을 시작했는가 돌아보았다.
의식의 흐름은 이러했다.
지난 주에 동아리오빠가 밥을 사주었는데
나는 메뉴 중 가장 고기가 안들어가는, 오징어볶음을 시켰다.

나는 얌체같이 채식중이라며 오징어만 빼고 먹었다.
해물에 대해 생각하자,
내가 10살 때 미국에서
다른 가족들이랑 다같이 해산물로 유명한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 그 때부터 였다.
미국에서 아빠는 나에게 작은 선택권들을 주셨다.
가령 외식을 할 때 내가 메뉴를 정하거나,
가족끼리 관광을 하고 나서
기념품가게에 들어가서 기념품을 하나 고르라고 하신다거나,
독사진을 어디서 찍고 싶냐던가.

아니, 그럼 그 이전에는 선택권이 없었느냐고?
10살 이전까지는 부모님과 외출을 해본 적이 많이 없었다.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다.



일단 밥 먹을 때 그랬다.
아빠의 영어 과외선생님과 식사를 했다.
(아마 이 식사가 외국인과 우리 가족이 식사한 유일한 자리일 것이다.)
그 때 메뉴에서 나는 Smile Pancake를 시켰다.
팬케이크에 체리, 시럽 따위로 얼굴이 그려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웃는 얼굴의 귀여운 팬케이크가 마음에 들어
그것으로 시켰다.

하지만 체리는 너무 강해 내 입맛에 맞지 않았고,
결국 대부분을 남겨야 했다.
이 때 아빠는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 당시 나는 또, 분홍공주님이었다.
아니, 분홍색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초록색이었다.
그런데 TY인가, 동물 인형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는데
제일 먼저 산 동물이 하얀 쥐, Cheezer였다.
정말 귀엽고, 그 보슬보슬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촉감이 좋았다.

나는 그 치저의 집을 지어주었다.
김 박스에 침대를 놓고, 책상을 놓고,
치저의 귀저기와 담요를 바느질해 직접 만들었다.
그 때 모든 것을 분홍색으로 꾸밀 수 있더라.

나는 여행을 떠날 때 치저의 귀저기며, 여행가방을 꾸렸다.
그때, 어? 나도 분홍색만 입을 수 있나?
생각하며 모든 분홍색 옷들만 챙겼다.
분홍 여행.
그 여행 때 입은 모든 옷은 분홍색이었다.

그 때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풍경 속에 조금이라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밋밋하기까지 한 풍경 앞에 자리했다.
그러면 아빠는 핀잔을 주셨다.



"아무것도 없는데. 참.. 얜 특이해."

서부 마을에 놀러가서, 그저 나무집이기만 한 집 앞에서 찍은 것,
부찻 가든에 놀러가서, 원두막 아래 어두운 데서 찍은 것.
-이 원두막에 들어갔을 때 기둥에 낙서가 되있는 것을 보고
나는 바로 또 '여긴 아니야' 생각이 들었다.

"얘는 여기 그늘져서 어두운데. 참.. 특이해."

기념품을 고를 때도 그랬다.
캐나다 기념품가게 였는데, 나는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잎이 무지개색으로 겹쳐지는 열쇠고리를 골랐다.
그 열쇠고리가 상당히 비쌌고, 다른 가족의 딸인 빛나는
비교적 실용적인 미니 손전등을 골랐기에
아빠는 다시 한 번 핀잔을 주셨다.

"얘는 이걸 왜 골랐는지 모르겠어. 비싸기만 하고. 실용성도 없고."

나는 반항심에 분명 아빠에게 "필요하다구요!"라고 말하며
입을 씰룩 거렸을 것이다.
묵직하게 내 손 안에서 빛나는 열쇠고리가
내 마음에도 묵직하게 무게를 지웠다.

.
.
.
다시 기억의 실마리가 된 해산물집으로 돌아와서.
랍스터가 유명한 집이었다.
우리는 그 날 인생에서 유일한 것으로 기억하는
랍스터를 먹었다. 아니, 난 먹은 기억이 없고, 다른 사람들은 먹었을 것이다.
나는 남기고 나서 아빠께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양이 제일 적어 보이고,
내가 맛없어서 그만 먹지 않게 그래도 친숙해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내 앞에는 감자튀김과 돈가스와 같은
매우 단순한 음식이 놓여졌다.
맛은, 생긴 그대로의 맛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김없이 다 먹었다.
나는 그 날 아버지가 내 선택에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 떠오른다.
정작 나는 그리 맛있는 식사는 아니었는데
.
.


이 사건들이 있은 후
10살의 나는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인지한 것 같다.
선택을 잘 했을 경우에는 칭찬을 받고, 주위사람들과도 하하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을 잘 했다고 하더라도(팬케이크)
내가 그것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남기면)
그것은 잘한 선택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남들이 보기에 잘한 선택은
선택을 잘 하고, (평범한 음식. 내가 다 먹을 수 있겠다)
끝까지 마무리도 잘 하는 것이다. (다 먹는다.)

하지만
25살 나의 선택은
선택을 '잘 하는 것'도, 남들이 보기에 잘한 선택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선택은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거다.
메뉴를 고를 때에도 익숙한 음식을 고르지 않고,
이름이 낯설거나, 설명을 들어서는 도무지 어떤 음식인지 감 잡을 수 없는 것을 시킨다.

요즘 누가 물어보면,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언어 배우면서, 일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그래서 계획은 있고?
아뇨 없어요.

새로운 나라에서 가서, 새로운 일을 할거니까 저도 모르지요.
20대의 나는, 그렇게 여러 나라에서 여러 경험을 쌓다가
30대가 되어 점차 장기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칠 선택들을 해나가고 싶다.
결혼이라던가, 직장이라던가.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 때 아부지께 전화가 왔다.


25살의 나는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솔직한 내 생각을.
내 선택을.

내가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해 걱정하시는 아버지께

채: 아빠, 제가 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그 언어의 실용성 때문이라기보다
그 언어 자체의 매력 때문이에요.

아빠, 저는 제가 20대일 때 많은 언어를 배워두고 싶어요.
마치 땅따먹기처럼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라도 일단 사두는 거에요.
그리고 30대에는 그 곳에 하나하나 제가 풀을 심어가면 되잖아요.

아빠, 저는 멋대로 사는게 아니에요.
저는 제 삶에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저는 제 삶으로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에요.
정말 다른 사람의 롤모델이 될 거에요.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은, 저는 제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제 나이 때 열심히 고생하고,
제 스스로 이 세계가 어떤지 직접 살아보고 싶어요.

엄마는 옆에서 '너 아빠한테 혼난다' 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내 선택이 어리석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번에는 대견하다고 하셨다.

아버지랑 22분의 통화 후에 카톡이 왔다.
'너는 너의 길을 가라. 네 스스로.
아빠 엄마는 그림자처럼 따라 가며 응원할테니.'

난 참 멋진 부모님을 두었다.



나의 길을 간다.
내 스스로.





[에바노트] 헌법재판소에 간 날.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을 아시나요?


헌법재판소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

김해웅님을 뵙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방문했습니다.

김해웅님은 제 페이스북 친구이신데,
헌법재판소의 홍보심의관실에서 일하세요. 

제가 이스라엘에서 활동할 때부터
저를 멀리서 응원해주신 분입니다. 


여기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입니다. 

건물 안에도 이 하얀 화강암으로 
되어있었어요. 

하얗고 정직하고
진지하고 올바른 느낌.


경찰: 어디가세요?

채: 만날 분이 있어서요. 음, 잠시만요.

저는 페이스북으로 김해웅님과 대화한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채: 헌법재판소 홍보심의관실에서 김해웅님을 뵙기로 했어요.

경찰: 아 그럼 방문증을 드릴테니,
신분증 좀 주세요.

채: 네.

저는 방문증을 속히 목에 걸고 헌법재판소로 걸어들어갔어요. 


방 안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김해웅님은 기자님과 미팅 중이셨어요. 
저는 김해웅님과 기자님께 제 명함을 드렸습니다.

김해웅님을 실제로 뵙게 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김해웅님은 헌법재판소 앞의 음식점에서 밥을 사주셨어요.

채: 김해웅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거에요?

김해웅: 그것을 알려면 얘기가 조금 길어지는데요,
 국가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삼권분립으로 이루어지지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설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한 것인데요, 나치 때 이게 문제가 되었죠. 나치가 권력을 독점하면서 행정부이면서 입법부, 사법부를 모두 총괄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삼권분립만으로는 공권력에 대해 독립적으로 대응할 곳이 없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1948년 헌법재판소를 최고로 만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두환 대통령 때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남에 따라 1988년에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세워지면서 사법부에서 많은 부분 가져와야 했는데, 여기서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의 너무 지나친 간섭을 막기 위해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가 아니면 청구할 수 없다.

출처: 헌법재판소, http://www.ccourt.go.kr/cckhome/kor/cjustice/constitutionPetitionJudge.do

 '재판을 제외하고는' 이라는 구절을 넣은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구요? 사법부의 판결이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하더라도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들이 이 부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 헌법 제 1조는 2항으로 되어있다.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D%97%8C%EB%B2%95_%EC%A0%9C1%EC%A1%B0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결국 '재판을 제외한' 이 아닌 '재판을 포함한'으로 바뀌려면
국민 스스로가 일어서야 하는 것이지요.

독일은 65년 동안 약 700건의 위헌판결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5년 동안 700건이 넘는 위헌판결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의 공권력에서 위헌 -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이 되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았나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홍보심의관은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김해웅 님은 제 꿈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응원해주셨어요. 

"제 삶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라고 저는 다짐했어요.




돌아올 때 다시 바라보는 헌법재판소는
따뜻하고, 친구 같은 느낌이었어요. 

헌법재판소.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곳이에요.


당신의 기본권은 안녕한가요?











2014년 3월 26일 수요일

[ISUP / 이스라엘 그녀의 체험기]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으며 놀이를 생각하다.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서


네덜란드의 위대한 문화사가 하위징아 Johan Huizinga가 쓴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의 일부분이다. 
강신주 저자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304쪽에서 발췌했다.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놀이가 자발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의 억지 흉내일 뿐이다. 자유라는 본질에 의해서만 놀이는 자연의 진행과정과 구분된다. (...) 어른이나 책임이 있는 인간들에게는 놀이는 도외시해도 무관한 기능이다. 놀이는 여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에 대한 욕구는, 즐거움이 놀이하기를 원하는 한에서만 절실해진다.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놀이는 물리적 필요가 도덕적 의무로 부과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는 임무가 전혀 아니다. 


1. 잔소리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명령을 내리는 것이며 이로 인해 아이에게 어떤 행위는 의무로 부과된다. 잔소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격려와 칭찬일까? 

 하지만 이 격려가 보상으로 주어진다면 개인적으로 그리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토플에서 스피킹 시험을 준비하는데 한 교수의 수업의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피아노를 치는 것이 대견해서 앞으로 피아노를 칠 때마다 10달러 씩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딸은 더이상 피아노를 치는 것이 이전처럼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 피아노를 치는 것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이 아닌, 의무감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는 방식을 보며 정말 신기했던 것은 쿨리 씨네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을 때이다. 외동딸인 야엘은 아기천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지만 정말 하는 짓은 미운 3살이었다. 특히 처음 보는 동양인인 나에게 3박 4일 내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물리 씨와 노아 씨의 반응이 더 인상적이었다.

야엘: 나 혼자 계단 내려갈 수 있어
노아: 그래 내려오렴.
야엘: 저 언니(에바)는 보지 말라 그래.
노아: 에바 씨 미안한데 차 안에서 기다려 줄래요?

 나는 내심 섭섭해하며 차에 먼저 탔다. 이 부모님은 내 체면을 생각하면서 야엘에게 그렇다고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치지 않았다. (손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등.) 대신 차에 타서 "왜 에바 언니랑 안 친해지려고 하는 거야?" 라고 야엘에게 물었다.
야엘은 그저 동양인인 내가 낯설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야엘에게 억지로 "에바 언니랑 놀아." 하지 않고, 야엘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마음을 열기까지 다독여주는 부모님의 인내심이 보였다. 결국 마지막 날, 야엘은 자신이 이 닦는 자리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야엘은 정말 친한 사람에게만 자기가 이 닦는 모습을 보여준다.)


2. 여행
 나는 여행이 재미없어 지는 순간을 알고 있다. 관광을 의무감으로 느낄 때이다. 지난 체코 여행 때 나는 시내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권 앞에서 고민하면서 괴로워했다. 나는 내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그 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그저 책을 읽는 것이다. 체코에 와있으면서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장소에서 책이나 읽고 있다니. 하지만 나는 그 날 책을 읽어서 무척 행복했다. 이것은 반대로, 여행을 의무감으로 느낄 경우 독서나 공부는 놀이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나는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아주 조심스럽다. 

이스라엘 에일랏의 해질녘

3. 밥 먹기
 밥을 의무적으로 먹는 사람이 있을까? 스모 선수? 음식 빨리 먹기 선수? 식사가 즐거운 것은 그것이 놀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식사를 의무로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밥을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하지만 '이건 맛있는 음식이니 꼭 먹어봐야해.', '이건 몸에 좋은 음식이니 다 먹어야해.'라는 욕심과 '남기면 아까우니 다 먹어야해.'라는 의무감이 있어서 대체로 남들보다 많이 먹게 된다. 정말로 내가 식사를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맛을 음미하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놀면서 먹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식사의 금액이 나에게 그런 의무감을 더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엄마가 맛있게 차려주신 다이어트 식단을 보면서 나는 내 한계효용이 체감했음을 알았다. 여느 때처럼 그 식사가 고맙고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남기면 안된다는 의무감에) 먹었을 뿐이다. 내일은 엄마께 아침을 차려주시지 말라고 해야 겠다. 

엄마가 야채와 과일을 썰고, 후라이팬에 두부를 부쳐주시는 수고의 과정을 내가 당연시 여기면 안 될 것 같다. 요리하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내 자신에게 과정의 수고를 알려주어야 하니까. 


한국에 귀국한 다음 날 아침 엄마가 차려주신 것. 
행복에 겨워서 먹었던 기억.

4. 글 쓰기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뭐랄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을 때도 있다. 그저 열심히만 살고 있을 때. 표면적인 것들이 나를 감싸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우스울 때 혹은 반대로 사치로 여겨질 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글 쓰기가 나에게는 놀이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글 쓰기를 직업으로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글 쓰는 이로서의 의무감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가장 두렵다. 
 '책을 낸다' 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책을 내는 데 수반되는 목적의식이 없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명성, 수익이 되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반대로 나는 내 글 쓰기를 놀이에서 의무, 목적이 될 정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사를 쓰는 것보다 블로깅을 하는 것이 그래서 더 즐겁다.)


책이 고플 때 김민준, 이기석 학생이 한국에서 선물로 가져온
책 두 권과 노트 두 권. 저 노란 노트를 특히 내가 얼마나 아꼈는지 모른다.


5. 운동
 어제 생각이 들었다. 요즘 웨어러블 기기가 나오면서 그 날 하루종일 내가 걸은 걸음 수나 시간을 측정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웨어러블 기기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그만두었다. 내가 그 날의 걸음수나 칼로리를 파악하는 순간 나는 걷는 것을 의무감으로 느끼게 될테니까 말이다.

6. 행복
'행복하다'는 것이 놀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위징아는 목적과 수단이 분리되는 순간 그것은 노동이고, 목적과 수단이 결합하면 놀이가 된다고 말했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수당을 받기 위해 하위징어는 노역 일을 하는 노동자와 모래성을 쌓고 있는 어린 아이를 비교하였다.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행복 자체도 목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행복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즉 '안정적인 수익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평안하게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그것에 다다르는 것을 의무감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면 행복이 무엇인지, 직접 탐구해나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사람은 모험을 하면서, 때론 실패를 하면서도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놀이이니까. 

알라딘의 창업가, 얀키 마르가리트 씨의 집. 
나는 보인다. 그도, 그의 아들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과
'놀고 있다'는 것이.
얀키 씨가 놀면서 만든 태양열 나무


7. 의무를 주는 것
 우리에게 의무감을 주는 것은 돈과 가정이 아닐까? '놀이'라는 것을 사치라고 여기는 때는 돈과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생길 때일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돈과 가정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전제하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돈을, 놀이를 하던 중 엄마가 가져다주는 달콤한 과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떤지? 달콤한 사과를 아삭 한 입 베어 먹고는 이내 내가 집중하던 그 놀이에 다시 빠져버리는 것이다.
 가정 역시 그런지도 모른다. 가족을 내가 부양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이라는 게임판에서 함께 놀이하는 '플레이어'로 보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개별적인 '플레이어'로 길러졌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멋지다, 나는 더 위대한 사람이 되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8. 한계의 역설
내 삶은 그렇게 자유롭지 않아. 나는 약자야. 가난하고, 허약하고, 젊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다윗과 골리앗>이다. 이게 위로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또 나는 엠마가 한 말을 기억한다. "제한시킬수록 창의적이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샤밧인 금, 토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TV, 컴퓨터, 핸드폰을 모두 끄고, 전등를 끄고 켜는 것조차 일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조건적인 '제한'이 그들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샤밧이 되면 이스라엘에는 승용차도,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다.
운전을 절대 금지하는 욤키푸르에는, 이 텅 빈 고속도로 위를
어린 아이들의 자전거가 누비고 다닌다.


나는 이 세상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가? 


2014년 3월 23일 일요일

[ISUP/ 이스라엘 그녀의 스타트업 인터뷰기]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으며 '인터뷰'를 생각하다


독서라는 여행을 위하여
-나에게 인터뷰란 무엇인가


*이 글에 나오는 인용문은 모두 강신주 저자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그 에필로그 '독서라는 여행을 위하여'에 나오는 인용문들입니다.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
-몽테뉴, <수상록>

그런 의미에서 여행 갈 때에는 명함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 안에 담긴 연락처를 주고 받는 의미라면 괜찮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자신이 어떤 지위이고.. 그것은 내가 살던 사회에서 통용되는 나이고, 여기 지금 나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러니 그 전에 입고 있던 '나'라는 갑옷을 입지 않고,

나를 유채원이라는 이름 이외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태초의 '에바(Eve)'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선 책이란 속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자라고 생각하고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든가 혹은 썩고 타락한 사람들이라면 어휘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는 책은 전번 상자에 담긴 상자, 혹은 그것을 담는 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석을 달고, 해석을 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결국 책에 대한 책을 쓰게 되고, 같은 식으로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들뢰즈 <대담>

강신주 씨는 이 독서법을 두고 논문을 쓸 때를 떠올리셨다. 나는 GRE에서 타임하는 것을 떠올렸다. (영어토론동아리에서 Economist지 스터디하는 것)


혹은 스타트업 인터뷰가 나에게 그렇다.
그 스타트업은 뭔가 담겨 있는 상자다.
아이폰 5를 샀다고 가정하면,
그 상자 안에는 아이폰이 있고,
간단한 사용설명서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아이폰이라는 유형의 상품과
사용설명서라는 기능
을 두고 탐구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인터뷰에 대입해보면
나는 유형의 서비스와
그것이 전달하는 기능을 두고 탐구한다.
(때로는 사용설명서를 그대로 옮기기도 한다.)

스타트업 인터뷰도 이렇게 진행할 경우에는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폰5의 책임자를 만나
좀 더 살아있는 설명을 들을 뿐.

유익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그 상자 안에는 '이성'만이 자리한다.


책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은 책을 어휘나 의미를 찾는 것과는 무관한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작용을 하는가, 어떻게 작용을 하는가?"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 만일 작용이 없으면, 그럼 다른 책을 집어 들면 된다. 바로 이것이 강렬한 독서이다. 무엇인가 발생하든가 아니면 아니든가, 그뿐이다. 아무런 설명할 것도, 이해할 것도 해석할 것도 없다. 
-들뢰즈 <대담>

스타트업 인터뷰가 아닌
사람 인터뷰가,
삶의 인터뷰가 되는 순간이다.

그 창업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 사람의 삶에, 인품에 감동하고 나면

나는 내 개인적인 삶의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 질문들은 나에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 내 표정으로 번지고,
내면적으로 내 마음에 번진다.

스카이클리어앱스의 창업가, 그리고 Answers.com의 창업가인 로젠버그 씨(인터뷰 때는 curiyo의 창업가로서)를 인터뷰할 때가 그랬다.

스카이클리어앱스의 창업가는 다른 스타트업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회사명 하에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있었고, 각기 iOS 마켓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삶을 정말 '제대로' 살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를 모든 팀원들에게 소개하고, 고객들의 피드백을 나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의 자신감이 놀라웠다. 나는 스타트업에 대한 질문을 끝낸 뒤에 그 자신에 대한 인터뷰 질문들을 해나갔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올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취미(운동)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로젠버그 씨의 인터뷰기는 인터뷰 후에 바로 다루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바로 30분 후에 6개월 동안 씨름한 파이버의 미카 씨 인터뷰가 후에 나에게 크게 자리잡아 인터뷰기를 먼저 작성했다. 그는 따뜻하고 인자하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다. 나를 인터뷰어가 아닌 따뜻한 체온을 가진 '인간'으로, 인격적으로 마주하고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Answers.com의 창업가인 그가 아무것도 아닌 나와 인터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까지 오시다니...

그는 작년에 심장질환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더 느끼고, 삶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후에 그는 나와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나와의 인터뷰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먼저 나와 찍은 사진을 올려준 인터뷰이는 로젠버그 씨가 처음이라 정말 감동적이고 감사했다.



이 말을 책에 대입하자면,
들뢰즈의 이 말은 자기계발서를 떠올리게 한다. 리니는 자기계발서를 두고 욕을 했다.

리니: 자기계발서에 쓰인 것은 단지 그가 성공한 방식일 뿐이야. 우리는 그 사람과 성격도, 성향도, 경험도 달라. 그런데 천편일률적으로 그 방식을 우리가 따라하면, 과연 우리도 그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봐. 오히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자기계발서를 참 좋아했다. 22살 때까지는 자기계발서만 찾아다녔던 것 같다. 리니의 말은 나에게 실천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가 자기계발서를 읽고 나서 자기 스스로 책의 내용을 일상에서 실천을 했냐는 것이다. 만약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좋은 말일 뿐이다. 진정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요건 3가지로 이성, 감정, 그리고 세 번째로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야 비로소 진정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 진정성을 자기가 먼저 갖추고 -Self Leader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할 수 있다면 그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항상 이런 '강렬한 독서'를 하고 있었다. 아니다. 솔직해지자. '짧고 강렬한 독서'라고 해야겠다. 나는 다 읽은 문학책이 별로 없다. 소설을 읽다가 집중하기 힘들면 바로 다른 책을 집어든다. 역사책이나 자기계발서, 실용적인 책들처럼 곧바로 나에게 작용할 수 있는 책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 읽고 나서도 나에게 '작용'하지 않는 문학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냥, 주인공에게서 다른 삶의 일면을 보았다.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ISUP/ 이스라엘 그녀의 스타트업 생존기] 위비츠(Wibbitz) 옥상파티


위비츠 옥상파티
Wibbitz Rooftop Party




울판 아비브에 갔다. 첫 수업을 들으러

아마도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건 나랑 버스에서 대화했던 19세 여자애가 유유히 멀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사진의 프레임에서 나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울판 아비브에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동행하며 길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하는 이 여자애에게

사실 나 길 알아.

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소녀는 나를 큰 길로 안내하고 자신은 군부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군인이라고는 안 믿기는 여린 소녀. 이스라엘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군대를 간다.


세상에첫 수업만 듣고 말려고 했는데 수업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히브리어 알파벳을 이미 알고 있으니 수업 진도가 아주 빠르게 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다음주에도 올 것 같다

그 다음에는 Tawkon co founder, Ori Goshen을 인터뷰하러 갔다그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대개 인터뷰이들은 내가 취재를 한 다음 자기 업무를 하느라 내가 빨리 가야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그는 되려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그리고 리니와 나의 사업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그가 재미있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얘기의 교훈은 최고의 상품을 만들려고 골방에 틀어박히지 말고밖으로 나가 고객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었다그리고 정말 실험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검증을 하라는 것퍼뜩 인사이트가 떠올랐다그래스타트업을 위한 맞춤형 한국 출장을 기획해 주는거야나는 무릎을 쳤다나오자마자 리니에게 연락을 했다


그 날 밤 나는 Wibbitz 옥상파티에 갔다

나는 검은 민소매 원피스에 
줄리아에게서 빌린 하이힐을 신고,
머리는 비녀로 고정시켰다.

웬 비녀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는 영국에 갈 때도 이스라엘에 갈 때도 비녀를 챙겼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여기는 브라운 호텔.
저 옥상에서 열릴 파티.


위비츠는 정말 이스라엘에서 손꼽히는, 잘 나가는 스타트업
신문기사를 나에게 1분 짜리 뉴스로 만들어 보여준다. 
정말 나만을 위한 뉴스 보도랄까.


호텔은 작지만 아주 고급스러웠다. 
귀여운 중후함.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조하르 다얀에게 한국의 태극부채를 선물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인터뷰가 있음을 확인했다. 

위비츠 인터뷰 섭외를 어떻게 한 것이냐면,

2주 전에 조하르가 스타타우 수업 때 CEO 강연을 왔다. 
그 때 위비츠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조하르는 자신감에 차서 위비츠를 보여주며,

"멋지지 않나요?"
"저는 사람들이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꿀 겁니다."

라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강연 후 조하르는 강의실을 나왔다. 

쉬는 시간에 나는 조하르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혼자 걸어가고 있는 조하르가 보였다. 
저는 조하르 앞으로 달려가 명함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조하르 씨, 저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터뷰를 한국의 테크블로그에 연재하는 에바입니다.
당신의 강연에 너무나 감명을 받았어요.
당신을 꼭꼭 인터뷰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턴 1순위로
위비츠를 염두해두고 있었어요.
저를 인턴으로 받아주시는 것도 생각해주세요."

조하르: 내 명함 받았지요?
인터뷰 날짜를 한 번 잡아보죠.
인턴 건은 생각해 볼게요.

이렇게 해서 위비츠를 인터뷰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조하르의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누나와 이야기 나누었다.

채: 안녕하세요? 저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터뷰하는 에바입니다.

누나: 네 안녕하세요. 여기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채: 조하르가 초대해주었어요. 다음 주에 조하르와 위비츠 인터뷰가 있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조하르와 가족관계임을 밝히지 않았는데
조금 뒤 솔직히 말해주었다.
화려한 액세서리와 드레스를 볼 때 엄청난 부자임을 알 수 있었다.

조하르의 누나는 금발의 미인이었다.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뉴욕에서 왔다고 했고,
나는 애리조나에 산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암묵적으로 그녀가 뉴욕과 애리조나는 비교가 안 되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친구가 나에게
머리에 젓가락을 꽂은 거냐고 물어봤다.
다른 친구들은 웃었지만
나는 진지하게 이건 한국의 비녀이며,
조선시대의 여자들이 머리를 고정할 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후 이 생각이 나서, 
더 이상 비녀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길 때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나는 내가 비녀를 또 사갖고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끝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나는 밤 12시까지 남았다
내가 가져온 한 뭉치의 명함을 다 돌릴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조하르가 다가오자 나는 사진가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조하르는 Enjoy!라고 나에게 말한 뒤 다른 무리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말했다.

남자: 조하르 다얀, 그와의 사진은 매우 매우 중요하지요.
채: 그렇군요..

다음 주에 위비츠를 인터뷰 한다는 것이 황송해졌다. 


이외에 스위스 남자,
프랑스의 아름다운 방송인 여성과 함께 
한참을 같이 얘기 나누었다. 

한 잔 더 안 마시냐고 묻자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내가 유럽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 Soluto에 다니는 착실한 남성,
시밀러 그룹의 다니엘 부척(비석세스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기사),
나를 무시한 이태리 남성,
벤 랭을 만났다. 


밤 12시에 만난 한 남자는 나에게 맥주를 사주었다. 

그리고 그 때.. Alice Grishin을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날 하이힐을 신고드레스를 입고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상당히 고단했다
하지만분명 가치 있었다그것을 나중에 더 깨달았다.

[ISUP/ 이스라엘 그녀의 스타트업 방문기] 윕키(Wibki) 방문 & 아로마 커피(Aroma Coffee)에서 아이디어 회의

Wibki
윕키


오늘은 All my Faves, 아니 이제는 Wibki라고 불러야 할 스타트업을 Star Tau 학생들과 방문했다. 즐겨찾기를 로고로 한다니 재미있는 발상이었고, 정말 괜찮았다. CEO는 자신의 서비스에 자신이 있었다

단순히 즐겨찾기를 로고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URL을 일일히 입력하는 것에서
URL대신 로고로, 
이미지화할 것이라는
큰 비전이 있었다.

나는 CEO의 자신감, 그리고 Wibki가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로 부터 6달 후,
2월.
나는 Wibki에 방문해
CEO를 다시 인터뷰 하게 된다.


Aroma Coffee
아로마 커피


인터뷰 후에 리니와 나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그날 리니와 Aroma 커피숍에 왔다. 


이스라엘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아로마 커피가 있다.



반쪽 짜리 이 샌드위치는 17세켈 (6000천원 정도) 한다.
그 옆의 저 아이스커피는 정말 정말 맛있다!!

커피랑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우리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12월에 임대표님과 함께 여기 방문한 상미씨가
이 종이를 가져간 게 기억 난다.

그래서 일까.

한국에 와서 
빈 트레이에 얹어주는 커피가 너무 성의없어 보이는 것은.


리니에게 사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

간만에 디저트를 먹으니 어찌나 맛있던지.
머리도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리니는 정말 CEO에 적격이었고,
나는 정말 CMO에 적격이었다.

리니는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를 외워서 그렸다.
우리는 부분 부분을 함께 채워나갔다.

리니랑 나는 너무나 잘맞는 퍼즐같다
리니가 선을 그어주면 나는 그 자리에 촘촘히 꽃을 심어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