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3월 마지막 날. 중국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



3월 마지막 날 
중국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


상하이에 온지 2개월 하고도 2주가 지났습니다. 상하이에서의 직장생활도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저에게 있었던 변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로, 졸지 않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점심을 먹으면 당연히 졸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하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버릇인데, 중국에 와서 그 버릇을 고쳤습니다.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포장문화 덕분입니다. 예전에는 밥을 남기기가 아까워서 배가 불러도 꼭 다먹었었는데, 이제는 점심을 먹으면 반드시 조금은 남겨서 싸간 다음 저녁으로 먹고 있어요. 덕분에 맑은 정신으로 점심 먹은 후에도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테크노드 메인. 캡스톤파트너스 기사와 마이리얼트립 기사가 보입니다^^

둘째, 기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어요.
작년에는 정말이지 변비걸린 사람처럼 기사 하나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 처음 와서도 하루에 기사 한 편을 쓰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시간, 영어 실력에 대한 욕심을 버린 덕분입니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욕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다 넣으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기사도 길어지고,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지고 질질끌게 되었어요. 그런데 테크노드 전사회의 때 영어 기사의 길이를 줄여달라는 위팅의 발표를 듣고, 기사량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요즘에는 word카운트의 350자 ~ 400자에 맞게 쓰고 있어요. 정보 제공 욕심 때문에 더 길어지면 600자가 넘을 때도 있지만요.

제가 처음으로 쓴 영어기사는 2013년 12월 31일에 Geektime에 쓴 것이고, 두 번째 기사는 2014년 11월 30일에 TechNode에 쓴 것입니다. 써본 기사량이 적은 만큼 제가 쓰는 어휘나 어법에 대해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다른 기사들의 세련되고 깔끔한 표현들을 보면서 뒷골이 서늘해지거나 마음이 풀썩 가라앉는 경험을 종종 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표현들을 돌려가면서 짜깁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조각보옷을 깁는 양 문장문장에 욕심을 내다보니 속도도 느려졌습니다. 그런데 스피드가 더 중요함을 많이 느끼게 되면서부터,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제가 인터뷰이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제 입으로, 제 목소리로 편하게 풀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 창업가와 이야기할 때 감동을 받은 부분, 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느낌표를 가져간 부분이 어디였는지 기억합니다. 제 방법은, 그 감동 그 마음 그대로 일단 다 적어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쓰고 싶은 글의 뼈대를 잡은 다음, 회사 홈페이지의 올바른 표현이나 다른 기사들을 참고하며 제 표현을 바로 잡습니다.

여기다 회사의 PR담당 분들, 마지막에는 영국의 Mike Cormack이 검토를 해주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런웨이에 올릴 만한 글이 나오게 됩니다. 마이크가 수정한 부분과 제 원본 기사를 비교하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제 글이 테크크런치 기자의 수준이 될 만큼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제는 개방적인 테크블로그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기사 하단에는 제 이메일이 있어서 스타트업이나 관련 조직에서부터 저에게 기사 의뢰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은 저를 친근하게 Eva라고 부르며 제 기사에 대한 평을 해주고, 자기 회사 서비스 링크를 달아 제 코멘트를 부탁하거나, 흥미로운 기사 제안, 산업 전반적인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의뢰합니다. 상하이에 있는 경우에는 아예 그 회사에 방문하기도 해요.

완성된 기사 한 편을 레스토랑의 요리라고 비유하면요, 이런 이메일 문의는 마치 장을 보면서 야채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입니다. "조금 덜 익은 것 같은데, 나중에 좀 더 무르익으면 사갈게요."라고 말이죠. 물론 제철이 된 채소의 경우에는 오오오!를 연발하며 요리를 시작합니다. 아예 저한테 요리를 해서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보도기사 전달) 이 경우에는 저희 쉐프님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 쉐프님이나 다른 요리사들의 추천이 있을 때에만 요리로 내놓고 있어요. (다음카카오 케이큐브 벤처스 합병 기사, 비네이티브 투자 유치 기사가 그 경우입니다.)



셋째, 중국어가 조금씩 늘고 있어요.
중국어는 아직도 제가 많이 반성을 하면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말하기 전에 영어로 할 수 있는 말과 중국어로 할 수 있는 말을 구분해서 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어로 말을 그냥 막 던지고 있어요.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중국에 온지 2주만에 아이폰6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 핸드폰인 Meizu를 사게 되었는데, 한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카카오톡도 안 쓰고, 네이버 사전을 대체할 영한사전을 찾게 되었어요. 영어, 중국어만 쓸 수 있는 가운데, 일기도 중국어로 쓰기 시작했어요.

가령 둔황에 혼자 여행하다가 제 여권을 보고는 중국인이 아니면 민박집에 묵을 수 없다며 밤 10시에 경찰서에 간 적이 있어요. 결국 외국인을 숙박할 수 있는 4성급 호텔에 더 비싼 돈을 내고 묵어야 했습니다. 그 때의 섭섭한 마음을, 여기는 중국이니 중국인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로에서 뺨맞았으면 종로에서 눈 흘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 덤덤하게 경찰서에 간 일기를 썼습니다. 이렇게 일기를 써서 위챗으로 보내면 제 과외선생님인 세실리아가 글을 교정해줍니다. 중국어 블로그 LOFT에 올렸습니다만, 괜스레 경찰서에 갔다는 얘기를 해서 다들 제 걱정을 할까봐 위챗 모멘트에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에 간 바로 다음 날. 사막을 보러 둔황에 왔고, 마침내 사막을 보았습니다. 고진감래.

오늘 친구 둘 앞에서, "케이트가 내 왼손에 헤나를 그려주었는데, 한국인들이 모이는 독서토론 모임 뒤풀이에서 어른들이 내 헤나를 보지 않도록 하면서 술을 마시느라 아주 혼났어." 라는 말을 제스처와 함께 설명하는데, 친구들이 알아듣고는 하하 웃었습니다.

중국어를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친구들이 제 말을 알아듣고, 제 개그에 웃어줄 때에요. 제 동갑인 남자애가 저한테 영어로 말하면 제가 도도하게 "중국어로 말해줄래?" 하면 친구들이 제 말투 듣고 킥킥 웃거든요. 회사에서 분위기메이커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넷째, 규칙적인 생활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외로움 병에 빠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정말 잘 빠지는 병인데, 이 때 시계가 9시 이내라면 어김없이 술친구인 정연이에게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럴 일이 없어요. 아니,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규칙적인 팻말들을 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퇴근하고 나서 바로 댄스수업에 가거나, 중국어 수업을 잡아두어서 외롭다는 감정에 쏟을 에너지를 활동으로 발산하고 있어요. 한 번도 제 선택사항에 없었던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가 생기면서 정말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었어요.

기분이 몹시 안좋을 때, 그나마 글을 써서 좋은 글이 나오면 좀 나은데, 그것도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거든요. 그림을 그리면 생각이 없어지고, 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외로울 때는 외로운 소녀 그림, 애정이나 관심에 목마를 때는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여자의 그림, 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을 때는 원색의 강렬한, 자신감이 넘치는 여인 그림을 선택합니다. 이 그림을 똑같이 캔버스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못 그리고 잘 그리고는 안중에 없어요. 제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에 있어서 밉고 고운 것이 있을리 없으니까요.



다섯째, 혼자 재미있게 사는 법.
집에 혼자 살고, 또 출장이 자주 있다보니 집이 허하게 느껴지는 적이 많았습니다. 침대가 좀 큰 편인데, 저는 그 침대의 구석 1/3에 방석 두 개만한 전기장판을 깔고, 최대한 전기장판에 밀착하여 차렷해서 자거든요. 이런 환경이라면 혼자 공부를 하고, 일을 더 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만, 사람은 무척 다채로운 무지개색깔 같은 존재라서 일이나 공부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그 능률도 매번 100%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중국은 제가 네 번째로 혼자 사는 나라입니다. 영국 3개월, 이스라엘 7개월, 미국 3개월, 그리고 중국. 이스라엘에서 일만 하면서 살아봤는데 정말 인간이 피폐해진다는 것, 일의 능률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반대로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잘 쉬면, 월요일에 더 일에 잘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한 가운데 혼자 놀기도 물론 할 수 있지만,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저만의 보증수표 3종이 있어요. 에어비앤비 (Airbnb), 카우치서핑 (Couch Surfing), 그리고 밋업(Meetup)입니다. 회사에 절친도 위팅, 카페 -가 있긴 하지만, 그 친구들은 상하이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제가 놀러가자고 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카우치서핑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이미 중국에서 세 번 해보았어요. )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왕카이, 레이나, 로렌스) 밋업은 주말의 빈 칸, 평일에 빈 칸에 종종 채워넣습니다. 그림 그리기 밋업, 근교여행 밋업, 연극 밋업에 갔었고 좋은 친구들도 덩달아 사귀게 되었어요.



지난 주말에는 케이트, 세게이 - 러시아 커플을 집에 묵게 해주었어요. 알고보니 세게이가 러시아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더라고요.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어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Laoshi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엑셀러레이팅도 받았답니다. 이 친구들에게서 러시아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고, 같이 등산도 나갔으며, 케이트는 제 손등에 헤나도 그려주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정말이지 주변에 구차하게 신세를 사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호스팅을 하니, 베푸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아, 이제 내가 베풀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섯째, 제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당황하셨죠.)
작년에 윤모언니와 대화가 생각나요. "언니 저는 제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매력은 말야, 계속해서 노력을 쌓아가면 자연스레 생기는거야."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년 12월부터 1.5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고 있어요. 오늘은 최고의 날이니까,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고, 거울을 보았을 때 씩 웃을 수 있는 것에서 멋진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제 스타일이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 회사 안에서도 저만의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 같아요. 아직 일적인 부분이나 중국어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아 엠마, 위팅, 카페에게 질문하는 적도 많은데, 고마움을 표현할 뿐 질문을 한다고 해서 눈치를 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항상 제가 갖고 싶어하던 '당당함'이라는 단어를 갖게 되었어요.



이 글에 다루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댄스수업, 여행, 독서토론 이야기 들인데, 종종 하게 되겠지요. 이제 밤 10시가 되었으니 집에 가야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2015년 3월 7일 토요일

[베이징 에바노트] 베이징에서 테크노드 기자들이 모여 4시간 반 동안 회의한 것은 feat. 중국의 뒤풀이 문화



베이징에서 테크노드 기자들이 모여 
4시간 반 동안 회의한 것은


1박 2일 베이징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3/6 테크노드 기자들 회의가 있었거든요. 

이 회의를 위해서 상하이 기자들 5명이 
2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도착했어요. 

2월 14일 ~ 2월 28일까지 14일 간 휴가를 보낸 뒤
시작한 신년 첫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정말로 음력설날에 큰 의미부여를 해요.)

강루 대표님은 WMC행사로 유럽에 출장 가계셔서
기자들끼리만 모여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베이징 왕징에 있는 THE NODE의 1층 회의실.
3/6 금요일 오후 2시

테크노드 기자들이 모두 한 방에 모였습니다. 
테크크런치 담당 기자가 3명, 테크노드 중문 기자가 4명, 테크노드 영문 기자가 3명, 총 10명이었습니다. (거기다 활동 담당인 루루까지 11명)
보우위엔이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다른 기자들은 모두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습니다. 
새로 들어온 기자 세 명이 있어서 자기소개를 먼저 다 하고 나서 최고편집장인 뉘치엔이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一、团队相互认识
二、动点中文编辑记者规范
三、如何和企业保持好联系
四、条线划分
五、明星创业公司访谈系列
六、创始人小饭桌计划
七、桂林和宇廷分享
八、ChinaBang名单确定和联系方式
九、中英文合作

1. 자기소개
2. 테크노드 중문 기자들의 규범
3.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4. 약간의 구분
5. 명성 있는 스타트업의 방문 계열
6. 창업자 탁상 계획
7. 구이린 & 위팅의 발표 
8. 차이나방 명단 확정 그리고 연락방식
9. 중문 & 영문 합작

2~6번은 뉘치엔이 PPT의 내용을 읽는 것으로 상당히 빠르게 넘어갔습니다. 모든 첫 문장은 원칙상~原则上 으로 시작하고, 예외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7번으로 넘어가서 구이린은 기자들이 기업에 방문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을 짚어주었고, 
위팅은 위챗 페이지 운영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테크노드 위챗 뉴스를 열성적으로 읽는 층은 누구인지, 이들을 “种子用户”라고 합니다. 그대로 풀이하면 종자사용자입니다만 핵심사용자라고 하겠습니다. 

위팅은 구체적으로 위챗상에 우리 기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캡쳐하고, 개선될 부분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영상이 포함된 기사는 반응이 아주 긍정적이며, 기사를 너무 길게 하면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진지한 분위기 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8. 차이나방 명단 확정 그리고 연락방식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8번이었습니다. 차이나방은 간단히 설명하면 테크노드에서 자체적으로 주최하는 스타트업 시상식인데요, 5개 도시에서 각각 10개의 스타트업이 발표를 하고 이제 최종 시상식에서 발표할 후보들을 기자들이 직접 가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회의가 족히 3시간 30분은 소요된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과정은 먼저 PPT로 분야별로 - 교통앱, 의료앱, 생활서비스앱 -을 PPT에 대표 스타트업 10개씩 묶어 보여줍니다. 
뉘치엔이 "자, 앞에 제시된 스타트업에 대해서 전망이 좋거나, 잘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에 대해서 너희 생각을 말해봐."라고 하면 다들 자기 생각을 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스타트업 기사를 주로 작성한 기자들이 먼저 말을 하고, 다른 기자들이 말을 보탰습니다. 
간혹 각기 다른 서비스를 진행하는 기자들끼리 왁자지껄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가령 핸드폰의 경우, 
보우위엔이 제가 새로 산 메이주 핸드폰 이야기를 하면서 메이주 지지를 하면, 
샤오미4를 쓰고 있는 왕핑이 샤오미도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다들 아니라고 하면, 열심히 샤오미를 변호하는 왕핑 ㅋㅋ

이렇게 각기 분야에 대해서 30분씩 논쟁을 하면서 후보자를 가리고 나서,
중문 최고 편집장인 뉘치엔, 영문 최고 편집장인 트레이시가 마지막 당부를 하는 것으로 회의가 끝났습니다. 



중국회사의 뒤풀이 문화



하나, 총 15명이다보니 다 같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식당을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마주보고 먹으면서, 모든 음식을 다 쉽게 맛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저번에 굴림판 없이 원탁에 앉아서 식사한 적이 있는데, 서로 음식을 챙겨주느라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둘, 회식이라고 해서 꼭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가 마신 음료는 주스 > 콜라 > 사이다.

다른 자리에서는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나이가 좀 있으신 남자분들이 많았거든요. 저희 회사는 대체로 나이대가 20대 중반, 후반이고 남녀비율이 거의 반반이다 보니 술보다는 음료수를 마시는 편이에요. 술을 마시더라도 이제 중국에 온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만 고량주와 같은 중국술을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칭따오와 같은 중국 맥주를 마시거나 와인을 마시더라고요. 


음료수를 식당에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사와도 되더라구요. 그렇다면 누가 사올 것인가? 이 대목에서 다들 위챗방에서 주사위를 굴렸어요. - 위챗 이모티콘 중에 입체 주사위를 누르면 돼요 :)

대표님 : 뭐하는 거냐? 

대표님: 제일 많은 숫자인 사람이 돈 내는 거야? 

뉘치엔: 제일 작은 숫자인 사람이 나가서 음료수 사오는 거에요~

저는 3이 나와서 다행히 모면~ 당첨된 사람 셋이서 나가서 음료를 사왔습니다. 다같이 건배를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어요. 


드디어 나온 음식. 


베이징의 유명한 음식인 烤鸭(카오야, 오리구이)
장차 50분을 기다린 후에야 나왔습니다. 
저랑 카페는 사진 찍는 중. 


샤사샥~~

카오야 처음 먹어봤는데, 껍데기는 바삭하고, 살은 부드러우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오이, 새싹과 같이 밀가루 전병에 쌈해서 땅콩 소스를 발라 먹었습니다. 
굴림판이 저에게 두 번만 오는 바람에 쌈을 두 번 밖에 못 먹었습니다만 ㅠ
정말 맛있었어요!

셋, 다 먹은 후에는 반드시!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요. 

중국에는 포장 문화가 매우 익숙한 곳이라서, 당연히 음식이 남으면 싸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종업원이 직접 총 4개 플라스틱 통에 정갈하게 싸주었습니다. 

넷, 2차... 안 갈 수도 있구나... 실용주의!

뉘치엔: 2차는 노래방이 어때? 10명 정도니까 큰 방 좀 알아봐. 

(보우위엔, 류텅, 근처의 노래방에 전화)

보우위엔: 2시간에 1000위안이래! (20만원..)

모두: 그럼 가지 말자.

그리하여 저녁만 먹고 헤어졌습니다... (이럴 수가!)
호텔에 도착하니 평화로운 9시...



뉘치엔이랑 같은 방을 쓰게 되어서 오늘 필기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발음 듣고 단어 찾아본 것을 보고 핫핫핫 웃는 뉘치엔.
>>는 그녀가 교정해준 단어입니다. 



바로 위챗방에 공유하는 그녀 ㅋㅋ
다들 화이팅 해주었습니다.



네, 정말이지 이번 회의를 통해 다시 한 번, 더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 오는 상하이, 사무실에 앉아 쓴 블로깅입니다. 

3/8 오늘은 여성의 날이에요 :)
특별히 여자분들 오늘 기분 좋은 일요일 보내세요!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시안 에바노트] 중국 시안의 베이커리 빠담(Padam) 제빵, 손님맞이 일일체험




시안의 베이커리 일일체험




제 친구 레이는 Padam이라는 베이커리를 시안에 창업했어요. 이 친구는 싱가폴계 중국인인데, 부자집에서 자랐습니다. 7년 동안 아무 일을 하지 않다가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14년 12월 28일에 영업을 시작했다는 액자가 걸린 것으로 보아 2달이 되었습니다만 그 인기는 엄청납니다. 이미 여러 투자들에게 콜을 받고 있는 그는 한창 바쁘게 사업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창업가였습니다. 

베이커리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에게? 고작 요만한 거였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파리바게트에 익숙한 저에게는 고객이 앉을 테이블은 하나, ㄱ자 유리진열대가 전부인 이 베이커리가 너무 작게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2층의 사무실 겸 제빵실에 들어가니 제법 규모가 컸습니다. 저는 6명의 직원들이 빵을 만드는 모습을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에게 빵도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1 소시지빵




처음 먹은 빵은 소시지빵이었습니다. 짜거나 달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빵인데, 소시지가 짜지도 않고, 나머지 빵부분도 은근한 달달함이 있어 먹기 좋았습니다. 나중에 이름을 보니 '핫도그'로 되어있더라구요^^

#2 찹쌀빵



그 다음으로 반으로 잘려서 제 손에 놓인 빵은 신작이라고 하는 찹쌀빵이었습니다. 겉에는 참깨가 아낌없이 투여되고, 안에는 팥이 들어간 이 빵은 어르신들도 참 맛있게 드실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 제가 카운터를 볼 때의 일입니다.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빵이라 진열대에 놓였을 때 손님들이 잘 사가지 않았습니다.

손님 : 이 빵은 뭐죠? 안에 뭐가 들었어요?
일란 : 신제품이라 실은 잘 모르겠어요.
에바 : 아 이 빵 오늘 제가 먹어봤어요. 안에 팥이 들어가 있는데 아주 맛이 있어요.
손님 : 그래요? 그럼 이 빵 하나 주세요.

저는 일란에게 찡긋해보였습니다.

#3 일편단심 빵



그 다음으로 먹은 빵은 '일편단심'이라는 케이크였습니다. 실은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를 위해 보숭보숭하고 동그란 순수한 자태로 놓은 케이크와 스테인레스 포크로 착각할 만한 플라스틱 포크와 함께 예쁘게 식탁에 놓아준 것을 보고 다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에는 체리가 든 것 같았는데, 전혀 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케이크 자체도 별로 달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원래 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하기에 그냥 그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케이크는 이 가게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케이크였습니다.

따뜻한 빵을 실컷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저로서는 좀 안타까웠습니다.

원래는 바로 카페에서 기사를 쓰려고 했던 저는 제빵사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레이가 제빵사 한 명이 나가서 빵굽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말을 하자 저는 대뜸 오늘 하루만 여기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닥청소, 설거지 등 어떤 잡일이라도 좋으니 허락해달라고 말입니다. 레이는 친구인 저에게 일을 시키는 게 미안한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레이: 임금은 어떡하지?
에바: 에이, 점심, 저녁만 해결해주면 그걸로 돼.
레이: 하하 당연하지. 알았어. 한 번 물어볼게.

레이는 징징을 불러 설명을 했습니다. 징징은 제가 제빵을 많이 배우지 못할텐데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저는 어떤 잡일이든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레이는 저에게 앞치마와 요리사 모자를 건내주었습니다. 빨간 셔츠 위에 짙은 회색빛의 앞치마를 두르니 정말 쉐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징징과 칭진 옆에 다가가서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녹차반죽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제가 하니,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녹차반죽에 노른자, 그 다음 흰자, 우유를 넣은 다음, 칭진이 젓는데 그 힘이 엄청났습니다. 그 다음 완성된 생크림 한 통과 그 녹차반죽을 젓는 것을 보고 저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칭진은 처음에는 손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저에게 팔을 걷어달라고 하더니 팔꿈치까지 생크림통에 넣고 함께 젓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절대로 이 빵은 먹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반죽은 족히 4개의 트레이에 넓게 펴졌습니다. 과연 이게 어떤 빵으로 변신할까 궁금했습니다.

#1 샌드위치

한편 진팡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달걀을 어쩜 저렇게 동그랗고 예쁘게 부쳐서 샌드위치 안에다가 넣는 것일까, 게다가 빵을 4단으로 쌓다니.. 어떤 모양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완성적을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삼각으로 잘린 샌드위치는 정성스런 4층, 그 겉은 달걀로 맛있게 구위진데다, 위에는 햄과 격자 마요네즈로 한껏 치장한 모습이었습니다.



#2 Seasons Cake

케이크들은 전부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과일케이크를 꺼내서 ㄱ자 자로 가로 18cm, 18cm로 재서는 네모진 칼로 잘랐습니다.

칭진은 그 위에 오렌지, 키위, 빨간 과일, 딸기, 복숭아, 파인애플, 체리를 먹음직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다 되었다 싶은데도 계속해서 올리더니 정말 과일더미가 된 후에야 초콜릿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름하여 Seasons Cake였는데, 4계절이라니, 귀여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이 케이크를 고르실 때 오늘 만든 것이라 무척 신선하다고 말씀드리는데,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옆에서 열심히 지켜보고, 그 분들이 저에게 관심있게 질문하는 것들에 재미있게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트레이에 머핀도 올리고, 머핀 포장도 하고, 케이크도 옮기고, 유선지도 벗기고, 바나나 껍질도 벗기고 간간히 일을 도왔습니다.

무척 신기했던 것은 식빵을 만들때였습니다. 처음에는 크루아상을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반죽을 똑같은 무게로 재서 덩어리를 아름다운 동그라미들도 줄새우더니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돌돌 마는 것이었습니다. '롤케익인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예쁘게 만게 의미없을 만치 무심히 5개 반죽을 깊은 틀에 옮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야 알았습니다. 열심히 부풀어오른 그 빵은 정확한 직사각형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식빵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식빵을 뜯어먹을 때 동글동글하게 말려서 뜯어지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오빠가 좋아하는 빠리바게트의 모닝브레드가 생각났습니다.

그 이후의 반죽에는 말린라즈베리, 건포도, 팥이 들어갔는데 제빵사님이 그 재료들을 아낌없이 반죽 위에 흩뿌리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좁은 반죽위에 얼어있던 재료들이 승차하듯 제빨리 올라타고, 다시 이불말듯 돌돌 말려 탐스러운 원통형 반죽이 되는 식이었습니다.



진팡, 칭진, 에바 그리고 징징

징징은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런닝맨, 아빠 어디가 등등의 예능프로그램을 다 좋아하고, 시안에는 이니스프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그녀는 바나나를 채썰어 자르더니 그것을 한 프라이팬씩 버터에 튀겨내었습니다. 나중에 이 바나나에 초콜릿을 입히는 것을 보니 케이크 재료가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드디어 점심 시간. 우리는 앞치마를 벗고, 코트를 챙겨입었습니다. 요리사복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평상복을 입은 모습을 처음 보니 다들 멋쟁이들이었습니다. 칭진은 저를 무척 마음에 들어해서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참치가 들어간 동그란 빵, 맵고 뜨거운 탕에 든 국수, 그리고 맵고 차가운 국수를 푸짐하게 시켜주어서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런 음식을 패스트푸드처럼 판매하는 것도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오후에는 트레이시가 Brite Semiconductor 시리즈 C펀딩 기사를 부탁해서 사무실에서 기사 작성을 했습니다. 4시에는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는데, 도심 속 5차선 도로의 3차선에 공원이 조성된 곳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쌀쌀하고 하늘은 흐렸습니다만 저는 이미 시안에 다시 봐도 반가울 여러 얼굴들이 생긴 후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한 사람씩 곱씹으며 저는 공원 한 바퀴를 돌고 베이커리로 돌아왔습니다.

러시아인인 리나가 집에 갈 참이었습니다. 리나는 중국어를 정말 잘합니다. 유학생으로 3년을 여기서 산 그녀는 제가 이전에 만난 러시아 사람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아주 상냥했습니다. 제가 어떤 빵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 되려 저에게 좋아하는 빵을 골라보라고 말하며, 우각 모양의 빵을 손수 싸서 건내주었습니다.

날렵한 모양의 우각 빵은 겉보기에 더 이상의 형용사를 붙을 것 없는 그저 빵일 뿐인데, 그 맛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겉테두리를 먼저 살살 뜯어내서 바삭하고 달달하게 먹고나서 그 순수한 속살을 입에 넣으면 정말 그 쫄깃함이 느껴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베이커리 안에 리나, 앤드류 그리고 조조 세 사람이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저도 같이 일손을 돕기로 했습니다. 제가 중국어가 서툴어서 미리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한 손님이,

손님: 우와, 이 베이커리는 정말 인터내셔널하네요.

하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사실 러시아인 리나, 우간다인 앤드류를 채용한 것이 저역시 신기하던 참이었습니다. 사실 중국어를 못하고, 흑인인 앤드류를 채용한 레이가 내심 대단해보이기도 했습니다. 일란은 신장 사람인데, 집에서 플랜테이션을 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배가 아주 맛이있다며 내일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베이커리에서 손님들을 맞는데, 이 베이커리, 정말 대단했습니다. 케이크를 포장 그 상자가 편리하게도 위에 뚜껑이 있는 종이상자인데다, 손잡이를 쇼핑백의 넓고 편리한 손잡이로 감아주었고, 개별 상자에 나무손잡이에 스테인레스 손잡이가 있는 케이크 조각용 도구, 묵직한 스테인레스 포크와 숫자 초, 모든 케이크가 아름다운 샷으로 (실물과 똑같이) 펼쳐지는 팸플릿을 함께 주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생일자를 위한 왕관은 그 종이재질이 무척 훌륭하고 고풍스러운 금색이었으며, 멋진 필기체로 생일문구가 영어로 적혀있었습니다.

레이는 파담 웹사이트도 만들고 본격 위챗 마케팅에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가장 맛있는 빵집이 이곳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중국 에바노트] 중국을 열광시키는 세 회사 (과거, 현재, 현재분사 : 미르의 전설2, 36kr, 도우반)


중국을 열광시키는 세 회사 
(미르의 전설2, 36kr, 도우반)


보원은 현재 제가 쓰는 모든 한국 기사들의 중문번역을 담당하고 있는 친구에요. 원래 이름은 보우위안인데 쉽게 보원으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보원이 살고 있는 시안에 놀러오게 되어서 같이 어제 한동안 수다를 떨면서 나온 이야기들입니다. 



하나, 중국을 열광시킨 게임 미르의 전설2

에바: 보원, 한국 스타트업 기사 중문 번역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뭐야? 
보원: 한국의 게임회사들에 대한 기대가 사실 더 커. 앞서 있었던 거액의 투자 사례도 모두 한국의 게임회사에 대한 것이었어. 
에바: 크로스파이어처럼 말이지? 
보원: 응.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전성기는 바로 미르의 전설2야. 그 때는 정말 중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게임을 했었어. 
에바: 하하. 그 때 우리오빠가 한창 어둠의 전설을 할 때인데. 그거 레벨1에서 99까지 키우는 거 맞지? 
보원: 맞아. 그런 방식의 온라인게임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돈벌이 대상이었는지 몰라. 그 때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내가 아는 형은 잘하는 게이머 10명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어. 사람들의 계정을 받아서 원하는 레벨까지 올라가주고, 희귀아이템을 손에 얻고 하는 거지. 
에바: 와... 상상이 간다. 그 10명이서 사무실에서 열나게 게임하고 있는 장면이라니... 또 같이 사냥나가면서 말야 그치?
보원: 응 맞아. 그렇게 해서 한번에 4000위안(76만원 정도) 은 쉽게 벌고 했었지. 정말 돈 많이 벌었었어. 

*위키피디아 - 미르의 전설2
-《미르의 전설 2》(The Legend of Mir 2)는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wemade)에서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동양 무협 MMORPG 온라인 게임이다.
-2001년 서비스를 시작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중국으로의 진출을 통해 온라인 게임의 황무지였던 중국에 발을 디뎌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온라인게임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
-현재 서비스 중인 대한민국 내 단일 게임 사상, 전 세계 누적 매출 최대기록을 보유




둘, 테크크런치를 둘러싼 레드카드

보원: 에바, 네 올해 소원은 뭐야?
에바: 좋은 영문기사 쓰기, 중국어 잘 하는 것. 네 올해 소원은 뭐야? 
보원: 음.. 테크크런치 차이나를 더 널리 알리는 거야. 
에바: 그 이유는?
보원: 지금 테크크런치 차이나의 페이지뷰가 정말 낮아. 
에바: 사람들이 정말 테크쪽에는 관심이 없는게 아닐까? 
보원: 아니야. 36kr이라는 회사에서 테크크런치를 번역한 기사를 올려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 
에바: 그럼 저작권 문제가 있었을텐데. 
보원: 바로 그 이유로 한 번 테크노드 측에서 36kr에 경고를 한 적이 있어. (테크노드는 테크크런치의 중국 공식 파트너이거든요.)

*참고 : 조상래 대표님의 플래텀 기사 공유



* 크런치 베이스 - 36kr.com 
중국의 테크미디어. 2010년에 설립되었으며, 처음 이름은 TechCruch China Station이었다(!) 이름은 원소주기율표의 36번째 원소인 크롬(Kr)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슈퍼맨의 고향인 Planet Krypton의 주요소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2012년 부로 12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Oday라는 이벤트를 중국의 7개 도시에서 개최한다.

에바: 네가 지향하는 기사는 어떤 기사야? 
보원: 나는 구글, 애플이 어느 회사를 샀다는 식의 기사가 싫어. 이미 대기업이기 때문에 어떤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든 성공적일 가능성이 크니까.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가 좋아. 개발자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도록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 



셋, 주목해야 할 중국회사 도우반 (Douban.com)

보원: 네가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 한국 스타트업과 비교할 때 중국에서 발견한 독특한 특징은 뭐야? 
에바: 중국의 핀테크를 보고 정말 놀랐어. 한국에서 나는 거의 인터넷 결제를 하지 않았었거든. 중국에서 모바일로 거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아. 
보원: 그렇지. 광꾼지에(11/11) 때 장난 아니었으니까. 
에바: 응. 그 날 하루만 몇 조원 벌었었다고 익히 들었지. 네가 생각하는 중국의 차별성을 지닌 회사는 어디라고 생각해? 
보원: Douban.com 회사 사이트에 한 번 들어가봐. 나는 중국만의 특징적인 점으로서 이 회사를 꼽고 싶어. 이가 정말 앞으로 크게 될테니까. 

* 두두차이나 - 도우반
-중국인들의 인문(독서, 영화), 지식 교류의 장. 서평, 영화감상을 나눈다. 
-유저층 : 20대 초반의 대학생
-광고가 하나도 없다. 
-전자상거래 업체와 수익 배분. DVD, 서적 판매로 수익 
-Flickr과 같은 간결한 UX가 특징
-세콰이어 캐피탈, Bertelsmann Investments에서 2011년에 시리즈 C

* 크런치 베이스 - 도우반
-2005년 3월에 설립
-베이징에 본사. 
-대표: Bo Yang

보원이 생각하는 도우반의 장점
보원: 도우반은 스스로 사이트를 제작했어. 이 사이트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세상에 이와 비슷한 기능이나 유저 커뮤니티를 보유한 곳이 없었어. 
내 생각에 한 회사가 정말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문제는 그 시장이 정말 형성되느냐는 거지. 도우반은 천천히 그리고 깊이있게 충성유저층을 형성하고 있어. 
중국에는 좋은 교육을 받은 정말 대단한 실력의 개발자들이 많아. 좋은 아이디어 바탕이 된다면 얼마든지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거야.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 온지 한 달. 유럽 배경의 중국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네 가지 (중국의 문화대혁명,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중국의 멜로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세 가지

有一个地方只有我们知道

이제 중국에 온지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어요. 
저는 1월 10일 토요일 오후 4시에 베이징에 도착했고, 
2월 10일 화요일 오후 4시에는 상하이 사무실에서 
한창 비트윈 기사 작업을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었지요.


상하이 사무실.
햇빛이 쏘는 저 자리에서 일합니다. 



"잠자기 밥먹기 움직이기 등, 생활에 규칙적 리듬이 있어야
몸과 맘의 감기가 안 걸린다." 

감기가 걸린 것은 맞습니다만
생활에 규칙적인 리듬은 나름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규칙적인 리듬을 깨는 일이 있었어요. 
퇴근하고 문화센터에 갔는데, 오늘 수업이 없다고 하는 거에요. 
제가 지난 번 중국어를 잘 못 알아들은 탓이지요, 뭐. 

그 길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지난 주에 봐두었던 영화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때는 6:10 p.m.

에바: 저기, 제가 제일 금방 볼 수 있는 영화가 뭐에요? 
종업원: 이거에요. 嘲笑鸟.
에바: 음.. 중국영화인가요? 포스터 좀 보고 싶은데.
종업원: 포스터 없어요. 미국영화에요. 
에바: 네... 이걸로 주세요.

저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일단 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이 영화 관람.

아.. 내가 중국 멜로 영화를 골랐었네. 하면서요.

집에 와서 표에 적힌 제목을 찾아보니...
嘲笑鸟는 Mockingjay


어라.. 내가 본 영화는 이게 아닌데..

제가 본 영화는



이 멜로영화 였거든요. 
아... 내가 상영관을 잘못 들어갔구나...
그제야 알았습니다.
어쩐지.. 영화가 90분만에 끝나더라구요..ㅋㅋ

그래도 이 중국 영화를 본 게 원래 봤어야 했을 미국 액션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이번 달 계획 중 하나였던 '중국 영화 보기'도 달성했으니까요. 

중국 멜로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세 가지

하나, 영어, 중국어 자막을 둘 다 깔아주는구나. 

지난 번 <호빗>은 영어니까 당연히 중국어 자막이 들어갔는데, 오늘 중국 영화는 배경이 프라하인만큼 영어, 중국어가 다 나오는 영화였고, 영어, 중국어 자막을 다 깔아주더라고요. 
덕분에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영화가 수많은 중국어 학습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서로 추천할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둘, 멜로 영화에도 중국인 특유의 웃음 코드가 들어가는구나. 

중국인의 호탕한 성격 때문에 멜로 영화에서 나름의 슬프거나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가도 대사에 웃음코드를 넣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들과 대화에서
"아빠는 더이상 엄마한테 돌아오지 않으실거에요."
"뭐?"
"그러니 엄마도 남자친구를 사귀세요!"

라던가

의도인지 아닌지 모를, 연인을 붙잡기 위해 뛰어가는 남자의 바지가
반바지라던가. 

또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NG장면들을 모아서 보여주는데, 방청객 웃음을 효과로 넣더라구요. 그 방청객 웃음이 이 영화 전체의 옥에 티라고 생각될 만큼 매우 낯설었습니다. 


셋, 중국 그리고 체코 공산주의의 과거와 지금.

영화 내용과 공산주의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중국공산당, 그리고 작년 프라하에 갔을 때 방문했던 프라하의 공산주의 박물관이 묘하게 겹쳐지더라고요. 1989년은 중국과 체코 두 국가에게 매우 중요한 해였는데요, 중국의 민주화 운동의 대표로 꼽히는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났고요. (정확히 1년 후 제가 태어납니다.) 체코의 경우는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붕괴하였고,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거든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제가 프라하 공산주의 박물관 포스팅을 해놓은 게 있었네요. 
2014년 2월 22일 작성한 것입니다. 

[에바노트 / 유럽 거닐기 ] 체코 프라하 - 체코의 암흑기를 보여주는 공산주의 박물관


포스팅 중에서.

'벨벳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벨벳혁명 [Velvet Revolution]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벨벳혁명에서 정말 국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까.
내가 이 박물관의 상영관에서 본 영상에서는
구타 장면과 폭력적으로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 가득했는데.

영상에서 한 밴드가 노래를 부른다.
영상으로는 체코 시민들이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피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프라하. 지금 내가 관광하는 이 도시가 25년 전에는 시민들의 데모와 자유화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가득했던 곳이라니.
노래는 놀랍게도, 그 가사를 모르고 들었더라면
편안한 곡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분노, 적개심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고마워요.
내 약함을 알려주어서. 힘을 길러야 함을 알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추함을 주어서.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쓴 맛을 보여줘서. 잠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어요.
..

라는 식의 가사로 이어지는 이 노래를,
가슴 아프게 들었다.
오히려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에
프라하 시민들이 갈구하는 자유화가 더 간절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넷, 중국의 유럽 사랑 그리고 안타까움

정말이지 요즘에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영화촬영지의 꽃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도영화 <Bang Bang>을 봤었는데요, 거기서 킬러인 주인공과 여주가 세계여행을 언급하면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서 프라하에 가거든요. (황당무게한 줄거리에 수억의 돈을 어떻게 쏟아부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인도의 매력적인 영상미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아예 전체 배경이 프라하였습니다. 심지어 영화 줄거리 배경에도 체코 - 중국의 국제 연애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950년대에 프라하의 의사와 만나 사랑에 빠진 란신. 60여년이 흐른 후 란신의 손녀인 진티엔이 프라하에 사는 중국인 남자와 만나 사랑하면서, 할머니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중국인 남주는 또 프라하 여자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 딸이 있거든요. 

중국인들의 최근 결혼사진 촬영 트렌드가 유럽의 유명한 건물들 앞에서 야외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주어허랑 CNN으로 뉴스를 보는데, 앵커가 '중국인들의 유럽 사랑'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도하더라고요. 중국인들이 추운 겨울날 턱시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던의 빅벤, 국회의사당 앞에서 로맨틱한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보는데 정말 중국인들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난 주 처음 알게된 독일친구 스테이시와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스테이시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년 역사로 중국이 쌓아두었던 그 모든 소중한 문화와 지식들을 모두 불태워버린 것을 안타깝게 말하더라고요. "역사를 알면, 후손들도 그 나라의 미래를 어떤 정신으로 이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영향 중 두 가지를 발췌해보았습니다.

전통 도덕의 붕괴[편집]

홍위병에 가담한 청소년이 자신의 부모나 스승을 반혁명세력이라고 고발하거나 또는 구타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문혁 지도부는 사람들이 문화적 전통들을 비판하고,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것은 "비림비공" 운동때 더욱 강조되었다.마오쩌둥의 사상은 전통 도덕과 관습을 제치고 중국에서 모든 것들을 이끄는 중심논리가 되었다. 홍위병의 권한은 군, 공안, 그리고 사법기관을 넘어섰다. 중국의 전통 예술과 사상은 무시되었고, 그 자리에 마오쩌둥 사상이 차지하게 되었다.

문화 유적과 전통 유산의 파괴[편집]

문혁 기간 동안 건물, 공예, 서적 등의 중국의 많은 역사적 유산들이 "구시대적 산물"로 간주되어 파괴되었다. 공예품들은 각 가정에서 탈취되거나 혹은 즉석에서 파괴되었다.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산출하기 어렵다. 서양의 목격자들은 중국 역사의 수천년의 문화유산들이 단 10년간의 문혁기간동안 파괴되었다고 추산한다. 또한 이런 파괴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행위였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역사가들은 문화 대혁명을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하기도 한다.


저역시 한국인의 정체성 위에 세계의 지식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후기 쓰려다 삼천포에 빠진 포스팅
지금은 11시 30분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p.s. 매월 10일은 월급날. 오늘 영화표 이외에 지른 것들. 




2015년 2월 8일 일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 생활의 편리한 점 세 가지 : 인터넷 결제, 이동통신사, 포장문화


중국 생활의 편리한 점 세 가지 


하나, 중국의 인터넷 결제가 좋은 이유는 물건을 받고 나서 결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쿤치가 메이주 대리점에 직접 방문하고 나서 서비스에 무척 불만족하고는, 차라리 메이주 핸드폰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쿤치: 제가 오늘 주문해서, 내일 이벤트홀로 배달되게끔 할게요.
에바: 응? 그럼 네가 돈 내야되는 거 아니야?
쿤치: 아니에요. 물건 받으면서 돈 내면 돼요.
에바: 카드도 되는거야? 카드, 현금으로 같이 내야할 것 같아서.
쿤치: 네, 둘 다 낼 수 있어요. 우리 이벤트 시작이 2시니까 1시에 배달되게 하면 되죠?
에바: 응

긴가민가 했습니다. 다음 날, 차이나방 이벤트가 시작되고, 무척 정신이 없는 가운데 과연 이 100명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택배 아저씨가 나를 찾으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주문한 것이므로, 핸드폰이 없었습니다.) 로비에서 '유채원'씨가 누구죠? 묻는데, 그날 이벤트홀에 처음 온 저를 누가 아느냐는 말이죠.

엠마: 에바, 네 핸드폰 도착했어?
에바: 아니, 아직..
엠마: 괜찮아. 주문자 이름으로 현재 택배기사가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배송현황을 볼 수 있으니까.
에바: 뭐 정말?

정말이었습니다. 이벤트가 한창 진행중일 때, 쿤치가 저를 불렀습니다. 아마도 쿤치의 핸드폰으로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나봅니다.

택배아저씨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메이주 MX4를 소중하게 건내받았습니다. 오늘 현금카드의 잔액을 확인한 결과 2474위안이 남아있었고, 제가 지불해야 하는 돈은 2499위안이었습니다. 저는 2470위안은 카드로, 29위안은 현금으로 지불했습니다.
쿤치는 핸드폰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며 포장을 뜯어 핸드폰을 켰습니다. 모든 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택배아저씨께 괜찮다는 사인을 해보였습니다.


즉 정리를 하면,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로 주문 가능.



물건 수령



물건 상태 확인



결제



택배기사 작업 완료



둘, 중국의 이동통신사는 놀랍게도, 주말에도 영업을 한다. 


한국의 이동통신사 근무시간은 분명히 평일 오전 9시 ~ 오후 6시까지 근무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요, 중국의 경우에는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근무를 합니다. 

금요일 밤

유에팅: 오, 에바. 핸드폰 샀네!
에바: 응 메이주로 샀지.
유에팅: 자, 빨리 번호 등록을 해야지.
에바: 응, 근데 지금 6시 반이면 너무 늦은 거 아냐?
유에팅: 아냐, 지금도 열었어. 그리고 오늘 아니더라도 내일이나 모레 가도 돼.
에바: 뭐? 주말에도 이동통신사가 문을 연단 말이야?

일요일 낮

오늘 메이주 핸드폰에 번호를 연결하기 위해 Unicom 대리점에 찾아갔는데, 정말 세 창구의 여직원이 모두 제대로 주황색 리본을 가슴에 달고 머리는 깔끔하게 올려묶고 저를 맞이했습니다.



덕분에 감격적이게, 핸드폰의 배경화면을 드디어!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핸드폰이 없어진지 정확히 13일만의 일이었습니다. (메이주 폰 구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저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외모로도 행동으로도 중국인으로 착각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셋, 중국에서는 먹고 남긴 음식의 포장이 무척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푸우위엔, 따빠오!"

음식을 주문할 때보다 더 당당한 이 한 마디.
심지어 제가 얼마만큼의 음식을 남기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제일 적게 남겼을 때는 동그랑땡 두 개를 남겼을 때였는데, 이와도 상관없이 포장을 해갔습니다.
포장을 하기로 하면, 서로간에 전혀 미안하거나 눈치볼 것이 없는 것이, 저는 포장을 할 때 1위안을 지불해야 하고, 직원은 저에게 투명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나무젓가락을 건내줄 뿐 직접 싸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중국에서 더 음식의 양이 많이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음식을 버리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8명이서 식사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9명이서 회식을 갈 때에도 남은 음식에 대해서는 누가 가져가는 것을 정하기 전에 일단 포장을 하고 봅니다.


이 고마운 포장문화 덕분에 저는 '음식을 남기면 안돼!' 하면서 양조절에 실패하던 과거와는 달리 제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여유있게 싸갈 수 있어서 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점심은 직원들과 바깥에서 사먹고 남은 음식을 싸서 그 날 저녁에 먹거나, 그 다음 날 아침에 원래 있던 제 한국 반찬들과 같이 먹으면 돈 절약도 많이 되더라고요. 지금 제 냉장고에는 각기 다른 중국 반찬이 세 개, 한국 반찬이 세 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