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6일 수요일

[ISUP/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존기] 6개월 간 6차 시도만에 Fiverr, 미카와 드디어 인터뷰


Fiverr
파이버


Fiverr는 5달러로 무엇이든 매매할 수 있게 해주는 웹사이트이다. 
5달러를 내고 번역, 디자인, 잔심부름은 물론 
수천 만 명이 모인 대형경기장에서 당신 회사의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비디오를 찍어주는 것, 
당신의 스토리를 담은 우쿨렐레 노래를 직접 써주고 연주한 비디오를 찍어주는 등 
기상천외한 일들까지 해주어서 
‘Fiverr에 중독됐다.’라는 말까지 떠돌게 하는 스타트업이다.




파이버, 그 험난한 인터뷰 섭외기..

왜 그렇게 간절했느냐고 물으면

1.한국의 백수, 백조들이
직장에 찌든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 하기 위해,
반드시 파이버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2. 엠마 부틴이 여러 번 언급한
10억 달러 기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스타트업

3. 미국의 프리랜서가 2020년에는 50%를 차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
긱에코노미의 도래
에 대한 미카의 의견을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스타트업이 아니다. Fiverr는 단기 비정규직, 계약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긱Gig들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인 긱에코노미Gig Economy의 리더라고 할 수 있기 때문. Fiverr의 CEO인 미카 커프만Micha Kaufman은 긱들이 미국의 5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온라인 플랫폼이 긱들을 고객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서 경제의 원동력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차 시도 (2013년 8월 8일)
현재 중국에 있어서 안 된다는 샤이.


2차 시도 (2013년 9월 21일)


샤이의 잘근잘근.


미카와의 만남 (10월 23일)


파이버 파티 때 사무실을 방문해 미카를 만났고,
구두로 인터뷰 약속.


그리고 Fiverr 기사 작성




3차 시도(11월 18일)


미카의 오곡오곡.



4차 시도(1월 1일)

링크드인을 통해 파이버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르기 시작.
"미카가 무척 바빠서 답장을 못한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

그리고

가이가 암스테르담의 페기 소개.(1월 5일)
페기가 뉴욕의 아담 소개.(1월 5일)

아담과 여러 번 핑퐁.
나와 여러 번 사전대화를 약속했으나 파토



파이버 직접 사용 (1월 12일)






내 프로필 사진을 심슨화 해줌.
5000원 치고는 음..
하단의 멋진 필기체는 내가 이 심슨그림 제작자에게 피드백 해준 것이다.

만약 당신도 하고 싶다면 여기 클릭.
추천은 안 한다. :P




5차 시도 (2월 5일)


아담에게 한번 더 조름.
아담이 이스라엘의 에이탄 소개.(2월 10일)

2월 11일 이후 연락 끊김..




6차 시도 (2월 24일)

에휴. 파이버랑은, 
안 될 것 같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국 가기 전에 말이나 해보자.


그리고



마침내 출국 하루 전, 에이탄의 소개로
2월 26일로 잡힌 인터뷰!!!

로비: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미카 씨가 내려올 거에요.


때는 오후 2시.
늦은 식사 중인 직원들.





입이 즐거워야
일도 즐겁게 한다는 철학.


드디어 만난 미카!!!!!

미카 씨는 어제 미국에서 돌아왔으며
며칠 후 다시 미국행.
이렇게 10일을 간격으로 미국 - 전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해요.

파이버 사무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미국 플로리다주와 뉴욕 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습니다.

2010년에 파이버가 나왔을 당시에는
오바마 선출이 된 해였고,
그 해의 화두는 '실업률' 증가,
고학력의 저임금 문제 등이었습니다. 

파이버는 정말 시대를 타고난 스타트업


미카: 오랜만이네요.
에바: 미카 씨, 정말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미카: 첫 아이에게 잘 해주지를 못했어요.
두 번째 아이를 낳았을 때 결심했죠. 
일 주일에 한 번은 3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고,
아이와 놀아주며 하루를 보내리라.

저는 이 신조를 10년 동안 지켰어요.
그리고 심지어 지금은 이 원칙을 파이버 직원들과도 공유합니다.
일주일 중 한 요일은 3시에 퇴근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가 없는 사원은 자기계발을 하는 겁니다. 

에바: 샤밧(안식일)이 있는데도요?

미카: 주말만 아이들과 보내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잖아요. 

와.. 대단..
정말 유대인 사람들은 휴식을 '일을 하지 않는 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휴식을 새로운 창조를 위한 꼭 필요한 시간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스타트업 인터뷰를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늘 말해주는
가족의 가치.

일이 늘 우선되고, 그러기 위해 가족들의 시간을 희생하던
내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에 오기 전 가족 다같이 회식, 딱 한 번 했던 기억.




미카: 프리랜서는 외롭습니다. 
하지만 파이버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백수였던 20대 청년이 파이버로 돈을 벌어 포드 자동차를 산 이야기,
고등학교 때부터 파이버를 해서 가장 긴 팔찌 만드는 것으로 신기록을 세운 소녀 이야기,
파이버 내의 프리랜서들이 함께 모여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파이버 공식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미카: 이제 모든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브랜드인 시대가 올 것입니다. 

놀라웠다.
이미 내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1월 말 피치나잇 이후로 내 스스로를 스타트업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카씨, 정말 고맙습니다!

아 정말 미카 씨와 인터뷰, 
71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날아갈 듯 했다. 

이제 정말 미련없이 한국에 올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남은 인터뷰 세 개.
무려 세 지역을 돈다.
텔아비브 - 헤르쩰리아 - 라나나

그리고 한국 행.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ISUP/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존기] 말이 씨가 되다

생존
Survival



어젯밤에도 가방을 모두 헤집고,
오늘 아침에도 가방을 뒤집었습니다.
지갑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말 이것이,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존기가 되었음을.
이것은 마치, 제가 이 프로젝트명을 그렇게 지었을 때부터 생존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진 동전은 13.7세켈. (4300원. 1세켈 = 320원 기준)
제가 오늘 가야 할 인터뷰 3개, 내일 가야 할 인터뷰 3개.
버스 차비는 6.9세켈. (2200원)

첫 인터뷰 갈 차비는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당장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돈을 꾸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자고 있는 저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도 돈을 꾸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스타트업 창업가, 당신을 인터뷰하러 당신의 스타트업 사무실에 방문한 것이니 그들에게 돌아가는 여비를 달라고 할 거다.
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동안 인색하다고 생각했던 스타트업들.
그들에게서 차비를 받을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대가를 바라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웬 한국인 여자애가 당돌하게 부탁한 인터뷰에 응해준 것이 고마워서
한국기념품을 꼭 전달합니다. 

다만, 저는 인터뷰와 기사 작성이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차비, 원고료를 주거나, 식비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저는 일하는 사무실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없는데,
이 외길을 걷는 것이 
가끔씩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대체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차나 커피를 으레 대접 받았습니다. 
인터뷰 후에 밥을 사준 스타트업은 스탠즈포, 진저 소프트웨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할 때 커피를 사준 스타트업은 많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주말에 택시를 타고 한인교회까지 온 건 프레스캇.
인터뷰를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 구글캠퍼스까지 온 건 밥 로젠샤인 씨.
가 기억납니다. 

단, 최고의 인터뷰를 할 것이며, 
돌아가기 직전에 이 말을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을 위해 최고의 인터뷰를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제 지갑은
오빠가 안 쓰는 검은 남자지갑이었습니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그 지갑을 여기 가져온 건
가볍고 부피가 작다는 그 이유 하나였습니다. 
정말 임시방편의 그런 지갑.

그 지갑 안에 든 것은
50$를 환전해서 나온 154세켈.
주민등록증
국민은행카드
이스라엘 Discount bank 카드

제 명함 12장 정도
제 증명사진 한 장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뭐 그리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현금, 카드가 없을 뿐이지,
여권은 제 가방 안에 있으니,
오로지 2박 3일만 잘 ‘생존’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여행을 가기 전 모아 둔
세켈 동전들이 있었습니다. 
13.7세켈.
왕복 13.8세켈이 드는데 0.1세켈이 부족했습니다. 
첫 스타트업 인터뷰 부터 부탁해야 겠군요. 



저는 인터뷰 장소로 향했습니다. 
8시 45분에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상태.
스타트업 현관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제 백을 내려놓고,
여자가 찬 바닥에 앉을 수 없으니,
코트를 포개어 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기를 씁니다. 



이렇게 지갑을 잃어버리고나서 생각이 든 것은,
그 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샀더라면. 생각이 든 것입니다.
다시 만날 친구들에게 줄 선물.
저는 정말 엽서 이외에는 어떤 기념품도 사지 않았거든요.
또 이래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점심을 먹은 이후로 먹은 게 없습니다.
물 몇 컵과 차 두 잔.
그래도 그 동안 참 잘 먹어두었으니 괜찮습니다. 

제 장점은 위기에 대한 내성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기가 닥치는 순간, 오히려 이상한 쾌감이 올라오는 것은
그래서 일까요? 
저는 똘끼 있는 인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 일을 허락하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의지하라고. 기도하라고. 

참 자비로운 분입니다. 
제가 6개월 이스라엘 사는동안,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은
그러시지 않다가,

집의 품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주에,
당신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그리고 제게 이미 친숙한 텔아비브에서
이렇게 이끄신 것이니까요. 

인터뷰 후에 저는 집에 돌아가서,
제일 말쑥한 정장을 입고, 단정한 구두를 신고 
그 다음 인터뷰에 가리라 다짐했습니다. 

제가 늘 지적하는 제 스스로의 단점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적당히 하는 버릇.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른 데 세는 버릇. 

최선을 다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저에게 이 일을 허락하신 게 분명합니다. 
정말 너의 그 다음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지금 이 단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순간,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로이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걸걸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인터뷰 후에 정말로 저는
마음먹은 대로 했습니다.
Eva: Roi,
Roi: Yes?

Actually, I want to ask you a favor.

What is it?
I lost my wallet yesterday.
Can you lend me 10 shekels?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다만 Sorry about that. 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거지가 아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오로지 다음 약속장소로 발을 옮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그리고 그에게는 작은 호의인 것을 부탁한 것이니까요.

 그 역시 태연하게 10세켈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10세켈을 받아쥐고
나와서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기숙사에 가서 묵직한 짐도 풀고,
옷도 정장으로 갈아입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버스 좌석에 앉아
대낮의 햇살을 받으며 의자 손잡이에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13:00

구글캠퍼스에 도착해서 
밥 로젠샤인씨를 기다리며 인터뷰 준비를 하는데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 검은 지갑을 식탁 아래에서 찾았다고. 

:)

좋은 교훈이었구나. 
감사하다. 


밥 로젠샤인 씨가 오셨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밥: 작년에 심장발작이 왔었어요.
제 목 아래에 호스를 넣더군요.
이게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채: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밥: 하루하루가 감사합니다.
가족들이 소중하게 생각되고, 더 시간을 많이 보내려합니다.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요.

저는 그와 비할 것이 전혀 못되지만
몇 시간 전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이야기,
그 과정 속에서 생각 난 것들을 그에게 얘기해주었습니다. 

한 번 잃었다가 되찾는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기 하루 전의 일이었습니다. 

2014년 2월 25일 화요일

[에바노트 / 유럽 거닐기] 이스라엘 텔아비브 - 재회


텔아비브
Tel Aviv


여기는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입니다. 

텔아비브 행 비행기에 올라타는 사람들. 



탑승객 중 정통유대교도도 있었군요.


WizzAir를 통해서
왕복 15만원으로, 텔아비브 - 부다페스트,
바르샤바 - 텔아비브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줄을 잘못 서서 
바람이 너무 차가운데
마지막으로 탑승..


유럽 여행을 떠나길 참 잘 했습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15명 중 몇은
1월 말에 귀국하고,
몇은 영국 여행 후 귀국하고, 
저는 동유럽 여행 후 가장 늦게 귀국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에 5개월 더 머무르는 오빠도 있지만요.)

13일 간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를 여행했고,
나라 하나 하나 소중한 추억을 안고 갑니다.
순위를 매길 수도 없을 만큼,
각기 다른 빛깔로 빛나는 보석 같습니다.

여행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그저 싼 값의 비행기 티켓을 이용해서
한 번 여행을 하고 한국에 와야겠다.
그 생각으로 계획한 여행이었습니다.
비행기 티켓도 가장 저렴한 헝가리, 폴란드로 선택.

기대가 적었던 만큼
제가 마주친 행복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어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보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하고,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멍 때리기도 하고),

좋은 취미가 생겼어요.
1. 초상화 그려서 선물 하기
카우치서핑을 한 네 호스트 모두에게 선물했습니다.
2. 엽서 사서 편지쓰기 
그리고 현지 우체국에서 보내기

여행이 즐거운 건
인생을 사는 여러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코드판에 음악을 듣고, 암벽 등반을 하는 오메르,
캐나다에서 원주민과 산 적이 있고, 배관공, 식당주인, 가이드를 한 다니엘 아저씨,
유기농 가게에서 일하는 비건 청년 토마스,
시크교의 인도 레스토랑 주인 토니왈라 아저씨



텔아비브 도착.



악명 높은 이스라엘 입국 심사를 마쳤습니다.

3일 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원래 이스라엘에는 스타타우 학생으로 있었다고 말하니까
1분 정도만에 보내주었어요.

참고로 입국 심사 때는 영어로만 말하고,
관광객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아요.


기차

2주 만에 쓰는 히브리어.
기차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히브리어로 
이 기차가 하샬롬까지 가는 거냐고 더듬더듬 물어보니
내 히브리어가 답답한 듯
영어로 대답해주는 그.
그래, 내 히브리어는 아직이지..

하지만 카우치서핑 집에 와서
또 열심히 히브리어로 대답하려 노력 중.



환전

50달러를 환전하니
세켈로 고작 154세켈...
하하 참.

동유럽에서 여행할 때는
50달러가 그렇게 큰 돈이었는데
이스라엘에 와서
154세켈을 보니, 참 작은 돈으로 여겨지네요.
무시무시한 이스라엘 물가를 실감하며
묵직한 배낭을 지고
40분을 걸어서
킹조지 거리에서 가까운 
카우치 서핑 집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

오자마자 이메일 답장.
한국에 오기 전에 인터뷰 6개를 더 하고 올거에요.
내일 3개,
모레 3개,
그리고 모레 밤 10시 비행기로 한국에 옵니다.

인터뷰 74개 목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게요. 

점심 12시에 먹은 것으로 
새벽 1시까지 버티니 상당히 배가 고프네요.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에바노트 / 유럽 거닐기] 폴란드 바르샤바 - 대학교 강의실에 살금살금

바르샤바
Warsaw


한 여인이 이 앞에 다가섰습니다.


저는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채: 이 사람은 누구죠?
여: 우크라이나 사람이에요. 이번에 우크라이나에서 목숨을 잃었지요.
채: 그런데 왜 바르샤바에서 추모를..
여: 왜냐하면 바로 이 대학의 선생님이셨거든요.
채: 아아..




아카데미아


그리고 그 앞에 선
코페르니쿠스의 동상.

지구는 둥글다
지구가 공전한다
는 것을 알린 사람.

코페르니쿠스적 사고관


이 성당 앞에 앉아 있는 머리 긴 사람은
남자입니다.

성당만 있을 때는 사진 찍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 긴 머리, 담배 피는 남자를 보는 순간
성당과 넣기에 완벽한 피사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성당에 쇼팽의 심장이 보관되어 있데요.

쇼팽은 파리에서 죽었는데,
내 심장은 바르샤바에 가져가달라고 부탁해서,
쇼팽의 몸은 파리에,
그 심장은 이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고 해요.


채: 이 아름다운 건물은 뭔가요?
학: 바르샤바 대학교에요.

공연장 같은 입구,
여기가 대학교라니

비엔나에서 만난 다현언니는
가는 도시마다 대학교 도서관에 가본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어요.
그 나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는다고.


그 나라의 지성인은 그 나라의 대학생을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에 나가기 전 그 어떠한 이해관계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시 검색해보니

'대학생은 그 시대의 프리즘이고,
대학교수는 그 시대의 최후의 양심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정면의 건물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건물의 전광판에
dni 999
999일이라고 써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바르샤바는 공작을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엽서에도, 
오늘 공원에도 있었던 공작.


분필은 종이에 말려 있었는데,
한국 것보다 각지고 더 굵었습니다. 


강의실 벽이 철제 구조물이니까 재미있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어요.  


멋진 강의실!


2층 강의실에 올라가니 
책상이 다음과 같은 접이식이었습니다. 특이.


채: 교수님 저, 실례지만 무슨 과목을 가르치세요?
교: 유럽내의 협력에 대해 가르칩니다.
채: 유로존 말인가요? 
교: 네, 유로존은 경제적인 연합체라면 좀 더 정치적인 면에서 협력에 대해 가르치지요.
채: 저는 유로존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 좀 회의감이 듭니다. 그리스, 벨라루스, 키프로스의 경우에는 파산 상태에 이르렀잖아요. 
교: 그것은 필연적인 상황이었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죠. 
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이나 프랑스의 사르코지가 그 일로 고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잘 사는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요? 
교: 그래서 그리스를 구제하면서 많은 조건들을 내걸기에 이르렀죠.
채: 폴란드는 아직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죠?
교: 네, 아마 근 3,4년 내에도 가입하지 못할 거에요. 지금은 통화수준이 유로화를 따라가기에는 멀었거든요. 물론 현재 폴란드 돈이 싸기 때문에 수출 호조를 보고 있다는 이점도 있고요. 하지만 유로존에 가입하는 것이 더 이득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폴란드도 유로존에 가입할 거에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유로존 내의 정치적인 협력은
레딩 EU 부위원장이 말한 연방국가를 가리키는게 아닐까.




2010년 가을, 영국 토론 동아리에서 그 날의 주제가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해야 하는가'
가 주제였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반반의 의견이었다가 
마지막에는 유로존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분명 유로존이 가지는 이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영국의 파운드화를 지키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그 날 독일 친구 다니엘과
스페인 친구 라오가 열띤 논쟁을 했다
(물론 두 사람의 재미있는 영어 억양으로 인해 보는 사람 모두 흥미진진했지만)
당시 스페인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독일에서 구제에 퍼붓는 돈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PIIGS
(Portugal, Island, Italy, Greece, Spain)

2010년 유럽 발 금융위기 때 유럽의 골칫거리였던 이 나라들,

바로 오늘 뉴스를 보니,
PIIGS의 나라들이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일랜드, 스페인은 구제금융을 이미 졸업했으며,
포르투갈, 남유럽에서 가장 문제아였던 그리스 역시
올해 6월에 구제금융을 졸업할 것이라고 한다.

유럽 경기는
1. 미국 등 선진국의 경제상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ECB(유럽 중앙 은행)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2. 경제 회복이 꾸준하다.

한편 2014년 글로벌 증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신흥국의 위기로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

이렇게 바르샤바 대학을 나왔습니다. 

2014년 2월 22일 토요일

[에바노트 / 유럽 거닐기 ] 체코 프라하 - 체코의 암흑기를 보여주는 공산주의 박물관

프라하
Prague


카지노 건물.
여기가 공산주의 박물관입니다.


테라스에 나가보니 북한의 공산주의에 대한 사진과 정보가 나열되어 있었어요.
임진강을 건너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
잡혔을 경우에는 사망.
삼족을 멸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중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텐트생활.

2013년 6월 5일 헤럴드 경제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중국인, 라오스 브로커에게 500~1000만원을 주고 빠져나오는 식입니다.
최근에는 탈북자의 수가 줄어 연간 3000명이다가
매달 100명으로 줄었고,
그로 인해 브로커 간 경쟁이 심화되어 서로 밀고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탈북아기 중 몇은 미국에 입양을 보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0605000270&md=20130612235127_BC (검색일 2014년 2월 22일)


북한은 영양실조로 죽습니다.

정부에서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돌보는 대신
김정일,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붓습니다.


체코의 공산주의

체코에서는 근면한 노동자들을 영웅화하여 포스터에 넣었습니다. 

이 당시에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정부관료, 의사, 화가 등 공산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공산주의 하에서
학생들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교육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충실한 '공산주의 하의 인민'을 양성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자본주의는 나쁜 것이며,
근면한 노동을 강조하여 아이들을 교육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공산주의 하의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하에서는 기존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하키 등
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들을 처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후에는 이들을 공산주의를 위한 모델로서
등장시키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 당시의 식료품 가격은 모두 정부에서 통제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농약을 살포하였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일생동안 얼마만큼의
독극물을 섭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영상에서 비커에 각각의 독극물 섭취량을
스포이드로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는데
정말 경악할만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이 독극물들을 쟁반에 담아
신생아들에게 어여쁜 간호사가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웃는 캐리커쳐들.


첫번째 
"진짜 친구는 근면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만날 수 있다."
두번째
"광산에서 일하는 당신은 우리의 영웅"
세번째
(잡지를 보고있는 남자를 노동자 두 명이서 한심하다고 여기는 내용이었다.)


벨벳 혁명. 1989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은 1989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 붕괴를 불러온 시민혁명으로, 피를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이었다. 

1948년 공산정권이 들어선 체코슬로바키아는 1968년 당 제1서기인 A.두브체크의 주도로 자유화운동인 일명 '프라하의 봄'을 시도하였으나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침입으로 좌절되었다. 

1977년에 다시 일어난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은 정부의 인권탄압에 항의하고 헬싱키조약 준수를 촉구하는 '77헌장'을 공표하였다. 이어 1989년에는 바츨라프 하벨의 주도 아래 공산통치 종식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벨벳혁명'을 일으켰고 최초의 자유선거로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를 '벨벳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벨벳혁명 [Velvet Revolution]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벨벳혁명에서 정말 국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까.
내가 이 박물관의 상영관에서 본 영상에서는
구타 장면과 폭력적으로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 가득했는데.

영상에서 한 밴드가 노래를 부른다.
영상으로는 체코 시민들이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피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프라하. 지금 내가 관광하는 이 도시가 25년 전에는 시민들의 데모와 자유화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가득했던 곳이라니.
노래는 놀랍게도, 그 가사를 모르고 들었더라면
편안한 곡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분노, 적개심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고마워요.
내 약함을 알려주어서. 힘을 길러야 함을 알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추함을 주어서.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쓴 맛을 보여줘서. 잠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어요.
..

라는 식의 가사로 이어지는 이 노래를,
가슴 아프게 들었다.
오히려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에
프라하 시민들이 갈구하는 자유화가 더 간절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영상으 보면서 광주민주화운동도 생각 나고,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도 생각 났다.

아마도 내가 '화려한 휴가', '저 달이 차기 전에' 영화를 보아서
그 장면들이 더 겹쳐지는 것 같았다.




책상 마저도 별.


공산주의 박물관의 같은 층에 자리한 카지노.
참 아이러니 하다. 

이스라엘의 키부츠도 공산주의에 대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 역시 실패하여
이제 키부츠는 굉장히 자본주의화 되어 있다.

공산주의는 몰락했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사는 우리가, 그리고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것을 남에게 나눌 때
그것이 남에게는 큰 효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고기 한 점을 더 먹는다고 효용이 더 증가하지 않지만
서민이 빵 한 조각을 더 먹을 때의 효용은 하루의 끼니에 버금가는 것이므로.

이건 정말이지 나에게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