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31일 토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1월 마지막 날, 노오란 여인을 그리다



노오란 여인을 그리다



Today I drew a yellow woman, and thought, probably I'm Leonardo Davinchi. 

추운 사무실 안에서 차가운 손끝으로 타자를 두드립니다. 하지만 30분 전에 먹은 토마토 북어국과 멸치반찬에 먹은 따뜻한 밥 덕분에 뜨뜻한 배를 안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글을 씁니다. 죄송해요, 오늘 작정하고 제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로 인해, 제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거든요. 오늘 Painting 수업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노오란 여인을 그리고 왔어요. 그 4시간의 이야기에 대해 차근차근 들려드릴게요.

오늘 아무런 일정도 없었어요. 엄마가 상하이에 오셔서 같이 관광하게 될 줄 알았는데, 패키지 여행으로 그것도 제가 사는 집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호텔에 머무르시거든요. 엄마 말로는 제가 주말에도 일하는 줄 아셨답니다. (뭐야, 네 아빠는 토요일에도 일하시더만.) 결국 이번 주말도 유채원이랑 놀게 되었습니다.

밋업을 한 번 가고 싶던 터라, 오늘 있는 밋업 목록을 보다가 Painting 밋업이 있었습니다. 진짜 이 밋업에 참석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실제 밋업에서 사람들이 Painting하는 모습이 예쁘게 사진에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52$. 내가 그린 그림을 가져갈 수 있고, 사진도 찍어주고, 커피도 주고.. 이런 요소들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저는 사진에 집착이라 할 만큼, 큰 중요성을 두거든요.) 이 밋업에 꼭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Changing Rd역에서 내려서 세 사람에게 길을 물어서 가까스로 밋업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메이는 저를 친절하게 맞으며 먼저 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70장 정도의 그림더미가 폴더에 꽂혀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모두들 견본을 보고 그리는 형태였습니다.

저는 오기 전부터 노란색을 많이 써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옷을 사도 노란색을 꼭 생각하고 싶다고 나가서는, 늘 노란색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다른 색 옷을 사오기 때문에 오늘 유독 옷장에 가득 들어찬 검은 계열의 옷들이 답답했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노란색을 많이 쓰리라 생각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그림들 중에서 노란 색이 많이 쓰는 풍경화, 그리고 노오란 여인의 초상화를 골라두었다가 노오란 여인을 선택했습니다.

메이: 음? 너 처음 온 건데 이 그림은 너무 어렵지 않을까? 색깔이 무척 다양하잖아.
에바: 그래도 노란색이 많이 들어가고, 꼭 사람을 그리고 싶어서. 잘 보면 스케치는 단순한 편이야.



저는 한 수염난 흑인 옆에 앉았습니다. 이젤에 걸친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두고 손에는 지우개, 연필이 쥐어졌습니다. 제가 선택한 그림을 다시보니, 제가 최근에 찍은 프로필 사진처럼 여인은 진지한 표정의 옆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 그림에 자신을 내면화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메이: 자, 그림을 봐. 이 여인의 구도를 볼 때 세로로는 1:1:1로 나누고, 가로로는 1:5:1로 나누면 좋겠다.

'아, 그림도 막 그리는 게 아니고 이렇게 처음에 구도를 정하는구나.' 저는 여인을 스케치북에 스케치했습니다.



유나: 음, 이 여자는 옆모습이잖아. 그러면 눈코입이 이런 삼각형을 그리지? 그리고 눈 부분을 부채꼴로 그리면, 눈의 위치가 이렇게 되어야겠지?

유나는 제가 스케치한 눈의 위치를 재조정 해주었습니다.

유나: 자, 이제 쓰지 않은 선들은 지우개로 지우면 돼.

저는 쓰지 않을 선들을 지웠습니다. 그 때

메이: 지우개로 지울 필요 없어. 어차피 물감을 씌울 거잖아.

저는 큰 붓과 작은 붓을 하나씩 고르고 팔레트에 물감을 짰습니다. 치약만큼 큰 물감에서 흰 색, 노란 색을 짜고, 손가락만한 작은 물감에서 검정, 빨강, 초록, 파랑, 황토색을 짰습니다. 메이가 신문지와 종이컵에 담긴 오일을 갖다주었습니다.

에바: 음, 붓이 빳빳한데 물에 풀어야 하지 않을까?

메이: 아니야. 오일페인팅은 물이 필요없어. 신문지랑 오일만 쓰는 거야.

저는 하얀색, 노란색, 그리고 살색으로 먼저 칠을 했습니다. 이렇게 혼자서만 하다가 일을 그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이가 주변에 제가 물어볼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몇 사람 소개해주었는데 이렇게 혼자 자신감에 넘쳐했다가는 많이 못 배울 것 같았습니다. 오늘이 첫 날인만큼 도움을 청하자 싶어, 제 앞으로 유나가 지나갈 때 유나를 붙잡았습니다.

유나: 이런, 붓이 딱딱하네. 오일에다가 이런 식으로 붓을 부드럽게 하면 돼.

유나는 빨간 색 부분을 칠해주었습니다. 눈 부분의 빨간 물감과 눈가의 살색 물감을 섞는 것도 시범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유나: 그 다음에 머리칼을 칠하면 되겠네. 검정색 + 초록색을 섞어 짙은 초록을 만들면 되겠어.

저는 그냥 검은 색인 줄 알았는데 정말 다시 보니 김처럼 푸른 기가 있는 검정색이었습니다. 저는 검정색과 초록을 섰어 머리칼을 칠했습니다. 그러던 사이 메이는 다른 일이 있다며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정말 캔버스와 저만의 시간이었습니다.

페인팅은 정말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 성격과 아주 잘 맞았습니다. '완전히' 혹은 '절대'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연히 잘못 붓을 댄 부분은 원래의 색과 섞여 더 극적인 색깔 배치를 만들어냈습니다. 과감하게 여러 곳에 묻혀둔 빨강, 초록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원래 있어야 할 색들 - 살색, 상아색들과 멋지게 어울렸습니다. 세심한 붓터치를 하는 사람이 보면 '저렇게 폭력적이게 붓을 다룰 수가!' 하고 기겁할 만큼 대담하게 푹푹 팔레트에 물감을 묻히고는 그림에도 똑같이 푹푹 찍어대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그 사람 성격이 드러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일단 지르고 보는 제 성격대로 제 그림에는 '반드시 이래야 해!' 고정관념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견본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데 있어서 그 과정은 제 마음대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 때 유나가 저랑 흑인 친구에게 다가왔습니다.

유나: 자, 이 시점에서 멀리서 그림을 한 번 들여다 봐. 분명 가까이서는 볼 수 없던 부분이 보일 테니까.

저는 멀찌감치 서서 제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견본에는 극적으로 표현된 초록색 그림자가 제 그림에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간혹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구나 싶었습니다. 초록색 부분을 더한 다음, 이제 정말 디테일 이외에는 다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제 손은 물감으로 더러워진 상태였습니다. 제 스웨터에도 초록 물감이 묻었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자국'인 마냥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흙장난을 하듯이 마음껏 더러워지는 것이 기분 좋았습니다.

저는 물감 묻지 않는 손등으로 버튼을 눌러 종이컵을 하나 쥐고는 커피를 내렸습니다. 거품이 올라간 커피는, 그것도 일의 상당부분을 끝내고 나서 그 다음 단계에 이르기 전에 마시는 지라 더더욱 맛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손이 바쁘기 때문에 눈이 그동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애 옆에 앉았습니다. 풍경화를 그리는 이 여자애의 그림은 정말 섬세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각형 팔레트를 물감들로 얼마나 요령있게 자리 배치를 하는지 보고 놀랐습니다. 물감을 세세하게 섞어 새로운 공간에 자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제 팔레트는 그야말로 재래시장인 반면, 이 친구의 팔레트는 백화점 1층의 스카프 매장 같았습니다. 그 때 유나가 캔버스로 다가왔고, 저는 후닥닥 제 캔버스 앞에 앉았습니다.

에바: 이제 디테일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아.

유나: 응, 눈코입부터 하는 게 좋겠는데.



유나는 디테일 붓을 두 자루 가져왔습니다. 세밀한 붓으로 검은색을 묻혀 유나는 과감하게 눈을 그렸습니다. 그 다음 두터운 붓을 세워서 강한 선을 강조했습니다. 유나가 그린 눈을 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눈썹도 한 선을 실수했습니다. 하지만 유나는 능숙하게 틀린 선에 살색 덧칠을 했습니다.

유나: 자 나머지는 네가 그리면 되겠다. 아, 그리고 눈알을 잘 보면 완전히 흰 색이 아니고, 하양+초록이야.

유나가 가고 나서 저는 눈, 코, 입을 마저 그렸습니다. 유나가 그린 눈에 하얀 동공을 그리고 나니 비로소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오란 여인의 입술은 아주 도톰하니 매력적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입술은 그에 미치지 못했지만 일단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덤불도 그리고, 여인의 옷에 주황색 무늬도 넣었습니다. 작은 붓을 쓰니 더 재미있었습니다. 세심하게 선을 그리다가도 그 주변의 색깔과 오묘한 섞임을 연출하고. 그림도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유나가 다가왔습니다. 유나는 제가 포착하지 못했던, 그림자진 얼굴 부분에 초록색 명암을 더 넣어주고, 얼굴 전체적으로 주황색 + 갈색을 더해 입체감을 더해주었습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었습니다. 유나는 입술도 파랑과 하양으로 멋지게 연출해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얼굴은 거의 완성했다고 주변 디테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유나는 주인공의 얼굴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이 그림의 메인은 이 여인이지.'

유나: 자, 다 된 것 같은데? 이제 네 이름을 싸인할래?





저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하얀 붓으로 끄투머리에 EVA라고 썼습니다. 그림에 비해 제 글자체가 무척 어린아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더 신경 쓰고 싶은 부분이 있었기에 붓을 들어 노란 꽃 점들을 찍고, 입술 부분의 붓터치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입술의 질감을 바로 잡았습니다. 그림의 마지막에는 제 중지에 묻은 하얀색으로 이곳저곳 색을 섞으며 부드럽게 다듬었습니다. 중지가 군인옷 색깔이 되었을 때에야 저는 마침내 완성했다고 생각이 들어 손을 뗐습니다.

저는 주변의 여자애에게 제가 그린 그림과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아, 그 행복감은, 뿌듯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유나가 매주 일요일 2시 ~ 6시에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에도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정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상하이라는 이 장소가 제 자아실현의 장이 되고 있었습니다.

------

제 어릴 적 꿈은 화가였습니다. 자기의 꿈을 그려보세요, 하면 늘 한 손에 팔레트를 들고, 머리에는 프랑스식 베레모를 쓰고, 허리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이젤의 캔버스 앞에 선 한 여인을 그렸다. 6학년까지도 그렇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5학년 때 화가라는 꿈이 무너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1년 6개월 살다가 서울 혜화 초등학교에 전학왔습니다. 미술 시간에 수채화로 정물화를 그려야 했습니다. 저는 눈 앞에 보이는 물통과 노란 국화꽃, 컵을 정말 충실하게 그려 색칠을 했습니다. '정말 이보다 더 잘할 수가 없어' 하면서 일어나 친구들 것을 보러 다녔습니다.

우리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기로 소문난 키 큰 윤지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고서... 저는 화가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림그리는 친구가 으레 그렇듯 차분하고 얌전하게 혹은 태연하게 붓놀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그림은... 정말 깊이있는 명암과 붓터치가 어우러진, 객관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수채화 같은 것 배워 본 적 없습니다. 뎃생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술학원이 지겨워 그만 두었습니다. 그렇게 화가라는 꿈과 멀어졌습니다.

그림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림 비슷한 것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정연이를 만나면서부터 였습니다. 고2때 만난 정연이와 단짝이되었는데, 정연이는 그 때 미대 입시 준비를 하면서 미술학원에 다녔습니다. (정연이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사무실 자리에서 잘 보이는 곳에 정연이가 그린 양 그림이 걸려있었습니다. 정연이 동생 상수가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연필로 이렇게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거지.')

문학시간에 한 번은 친구를 캐리커쳐 해보라는 활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연이를 캐리커쳐했는데, 정연이가 처음에는 "야, 이거 뭐야!"하면서 제 그림을 고치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봐도 제 눈에는 정연이랑 똑 닮았는데. 특유의 똥머리, 강렬한 눈, 삼각형 얼굴, 몸매가 드러나는 교복 상의와 약간 도톰한 종아리까지.

며칠 뒤, 정연이 아버지 생신이 왔습니다. 정연이는 아버지와 자기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치, 조종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말하는 어린왕자처럼 단호하고 진지했습니다.

정연: 유채, 우리 아부지랑 영상통화했었잖아. 나랑 우리 아부지 좀 그려줘.

유채: 야, 네가 나보다 더 잘 그리잖아!

정연: 그 때 네가 그린 캐리커쳐가 어이없긴 했었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내 특징을 잘 잡아냈었거든. 부탁해.

그 이후로도 정연이는 자주, 자기 캐리커쳐를 꼭 저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새로 산 연습장의 표지에, 혹은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유인물 뭉치의 표지에.

저는 늘 귀찮다고 하면서도 정연이를 실망시키지 않게끔, 결국은 그려주었습니다. 그 과정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만, 기뻐하는 정연이를 보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



앞으로 1주일에 한 번은 그림을 그리게 될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그리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회사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TECHNODE라는 마크나, 우리 회사 직원들이나. 왜냐하면, 그만큼 제가 회사를 사랑하거든요.

그리고 제 자화상이 그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리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그려가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내가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1 제 생일에 당시 영상고에 다니고 있던 예진이가 뎃생으로 제 초상화를 그려 가운데를 리본으로 묶어 저에게 주었었습니다. 새벽 4시까지 그렸다는 그 그림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2015년 1월 31일입니다. 제가 그림을 그만 두었던 시점은 2001년 9월입니다. 14년이 흐른 뒤 저는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문득, 영화 <노트북>이 생각납니다.

노아의 집에 온 레이첼은 자신을 위해 마련해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이 있는 것을 보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이른 아침, 나체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나무를 그리는 레이첼. 그리고 그 날 오후. 
노아: What do you want?
노아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레이첼에게 묻지만, 레이첼은 대답하지 못하고 차를 타고 그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리고 다음 날, 결국 두 손에 한 가득 짐을 들고 멀리서 부터 걸어오는 레이첼. 그리고 그런 레이첼을 웃으며 바라보는 노아.  

저는 상하이라는, 노아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은 '표현'하는 일이고, 저는 이제 점점 더 이 일들을 잘할 수 있도록 2015년이라는 캔버스에 어렴풋이 그려진 스케치에 열심히 덧칠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서양에서는 레오나드로 다빈치, 한국에서는 세종대왕입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전인적인 업적을 세운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다빈치는 뛰어난 화가, 과학자, 발명가였으며, 세종대왕은 한글 뿐만이 아니라 장영실과 같은 발명가를 등용할 줄 알았고, 경석이라는 악기를 만드는 데도 지원해주었어요. 정말 팔방미인이었던 사람들이지요.

저도 다빈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다양한 분야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가령,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제가 기사를 쓰는 과정에도 반영될 것 같아요. 다만 유나라는 가이드가 제 옆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그런 가이드가 있는 것처럼 제가 스스로를 콕콕 찔러야겠지요.





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1월 마지막 주에 정리하는, 중국에서 배운 것 세 가지

1월 마지막 주에 정리하는, 
중국에서 배운 것 세 가지 


왜 그 동안 사람들은 중국진출을 하는 창업가들에게, 혹은 취업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중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왜 중국 소비자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중국 베이징 1주, 상하이 2주, 지금까지 총 3주를 살면서 제가 느낀 것을 토대로 말씀드릴게요. 겨우 3주 갖고 이런 글을 쓰다니,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첫인상은 이후의 경험과 지식에 좋은 실마리가 되니까요. 또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도넛도 계속 먹으면 한계효용이 체감하듯이, 저에게 새롭고 신기한 중국도 나중에는 너무 일상이 되어버려 다 암묵지로 잠들 수도 있으니, 1월이 지나는 이 시점에서 중국에서 배운 것을 새삼 꺼내어 정리해봅니다.

하나, 중국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라. 중국 사람들과 마주 해서 앉는, 그런 공식적인 관계를 만들지 마시고요. 중국 사람들의 옆에 앉는 친구가 되어보세요.

중국 사람의 옆에 앉을 때 이점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앱을 사용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만 같이 살아서는 이 사람이 어떤 앱을 쓰는지 잘 몰라요. 일주일간 같이 살아보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 사람들이 고민없이 바로 찾는 앱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드러납니다.

지금 묵는 곳이 마음에 안 들어 급하게 묵을 곳을 찾을 때는 취날, 밖에서 맛집을 찾을 땐 디엔핑, 사무실에서 시켜먹고 싶을 땐 으어러머, 급하게 택시 탈 땐 콰이디, 디디, 공유차량을 탈 땐 우버나 AA.

한국의 문화는 강합니다. 비즈니스만 보더라도 술자리 문화, 호칭 그리고 명함을 주고 받는 문화 등. 문화라는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 직원 한 명이 온다고 해서 한국식 문화가 갑자기 중국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상해에 드디어 자리 잡은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님이 한국인 직원 여럿에 중국인 직원을 한 명 채용하고는, 갑자기 중국앱을 깔고, 중국 식당만을 찾아다니면서, 중국어만 쓰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스타트업이 중국 진출을 할 때 중국 직원을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중국인 파트너를 - 대표님과 동등한 의미에서 중국을 대표할 분을 뽑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요, 한국인과 중국인을 동등한 무게의 추로 두고, 그 권한을 늘릴 때마다 추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중국인 직원의 수 그리고 그리고 중국인에게 주는 권한이 한국인에 대한 것보다 더 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둔 미스테리한 스타트업이 있으니, 바로 스테이즈입니다. 스테이즈를 만난 것은 작년 12월 11일 스파크랩스 데모데이에서 였어요.

이 스타트업은 한국인, 중국인 공동 대표가 운영하면서, 외국인이 한국에서 장기간 투숙할 집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어요. 에어비앤비보다 더 길게 2주 ~6개월 간 묵을 집을 찾게 도와주는 서비스인데 9월에 론칭한 이후 발표 일자인 12월 11일까지 무려 5천만원을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60%의 고객을 중국인으로 유치한 결과였습니다.

그 비결이 너무 궁금해서 두 분을 인터뷰하면서 마케팅의 비결등을 여쭤보았는데, 위챗, 웨이보를 말씀하시고 나서는 더 이상의 말씀은 아끼셨습니다. 정말이지, 중국인이기때문에 아는 것들 - 을 그 비밀로 간직하고 계신 듯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짜이서울의 장재영 대표님께서 상해의 푸단대 쪽에 자리를 잡으시면서 6명의 중국인을 채용하시고 전면적으로 중국 스타트업으로서의 둥지를 잡으신 것은 이런 균형을 맞추기 위한 좋은 선택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의 스타트업을 미디어 뉴스를 보면서 파악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중국 친구들과 위챗으로 채팅을 하거나 수다를 떨면서 일상에서 그 사람들이 쓰는 핸드폰은 무엇이며, 서비스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왜 사용하는지 보는 것이 정말 피부에 와닿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위챗으로 통한다. 중국에 와서 위챗으로 이뤄지는 일들의 범위와 그 깊이에 대해서 놀란 적이 많습니다.

하나, 위챗은 대화의 장이다. 매우 기본적으로 위챗은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서비스입니다. 제가 테크노드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을 처음 마주한 계기도 위챗방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 회사에 이 위챗방이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유대화방, 하나는 업무대화방, 하나는 기자들대화방입니다.

이전에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자유대화방은 라인, 업무대화는 스택(Stack)을 사용했었는데, 여기서는 위챗으로 통일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단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둘, 위챗은 돈거래의 통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대표님이 직원들에게 홍빠오(빨간 지갑이라는 뜻으로 보너스) 제비뽑기를 위챗방에 올리셨어요. 이 링크에 접속해서 홍빠오를 클릭하니 랜덤한 금액으로 돈을 받는 방식이더라고요.

또, 이후 제가 중국 은행 계좌가 없어서 아직 위챗 지갑이 없다고 했더니 친구가 그러면 일단 자기가 1위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쉽게 그리고 즉시 돈을 건내받았습니다.

식사 후에 누가 돈을 내고, 어떻게 더치를 하고의 고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나 카드로 계산을 하면 칼같이 1위안 단위까지 1/n을 해서 위챗 지갑으로 돈을 보내거든요.

셋, 위챗은 명함이다. 중국에 와서 아직 명함 인쇄가 안되었습니다만 사실 그 필요성도 많이 느끼지 못했어요. 명함교환 대신 QR코드를 한 사람이 찍어가면 상대방의 정보가 가니까요. 또 링크드인까지 연동할 수 있어서 그 사람의 이력까지도 확인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수고를 더는 셈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만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자주 찍곤 하는데, 이후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면서 인사를 건내기 쉽기 때문에 좋더라고요.

넷, 위챗은 B2C 정보의 장이다. 위챗에는 텐센트 신문, 그리고 테크노드 신문이 있어서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가 깔끔한 뉴스레터의 형태로 소개되거든요. 기사를 읽지는 않더라도 사진을 통해 중요사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지난 번에 체루빔(Cherubim) 파트너스의 파티에 참석했을 때 파트너 분들이 제 위챗 QR코드를 찍어가시면서 앞으로 이리로 뉴스레터를 통해 스타트업 소식을 알려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섯, 밋업의 장이다. 장재영 대표님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위챗채팅방에 책장 같은 것이 있어서 여러 밋업 그룹에 가입할 수 있어요. What's Shanghai? 라는 곳을 알려주셨는데, 그 주에 열리는 중요한 모임 정보가 모두 나왔습니다.

여섯, 위챗은 페이스북 기능을 한다. 위챗의 펑요찬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처럼 그 사람의 근황을 쉽게 올리고 친구들이 댓글을 달 수 있게끔 되어있습니다. 이 펑요찬이 또 하나의 버티컬채널을 형성하기 때문에 사진앱 등이 연동됩니다.

(10:30 이네요 ㅠ 일단 여기까지 쓸게요. 다음 번에 이 글을 보실 때는 링크 & 사진까지 달려있을 거에요.)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베이징 에바노트] 베이징의 교통에 대해 말하다. '베이징의 지하철 미스테리'

베이징의 교통에 대해 말하다
'베이징의 지하철 미스테리'



베이징에서 일주일을 지냈습니다.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온 대표님, 직원들은 왕징의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호텔에서 시내에 내려갈 때마다 무조건 택시를 타시더라고요. 물론 베이징의 공기를 생각할 때, 걷기보다는 낫겠지만 시골도 아니고 도시인데 택시로만 이동하는 것이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베이징 사무실에 출근하는 현지 직원들 예닐곱 명에게 어떻게 출근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베이징출신의 기자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지방 출신이었고, 대체로 혼자 혹은 둘이서 회사 근처의 집에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집이 가깝다보니 다들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지하철을 타는 사람은 없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한 번 타보고 싶은데 여기서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들 갸우뚱하더니 결국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베이징의 공공 교통시설을 꼭 이용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온 제 동료가 베이징에 15번 정도 와본 것 같은데, 상하이와는 달리 교통이 잘 발달되지 않는 베이징에서는 택시만 타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사실은 10분만 걸으면 되는 거리를, 베이징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택시를 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저는 베이징의 지리를 택시기사의 네비게이션이 아니라 제 몸으로 익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저는 호텔 로비에 물었습니다. 천안문에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이죠. 직원은 지하철역이 여기서 매우 멀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까운 전철역까지 꼭 걸어가고 싶다고 말하며 약도를 물었습니다. 직원은 왜 카페에서는 공기밥을 찾을 수 없느냐고 묻는 고객을 대하듯이, 걷는 길을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며 택시를 타고 가기를 권했습니다. 이 지역의 지도도 없는지라 저는 결국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말했습니다.

'베이징의 지하철 미스테리'의 해답을 천안문까지 택시+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택시로는 50위안에 20분이면 간단히 도착할 거리였는데, 20위안에 1시간이 걸려 도착한 것입니다. 분명 베이징 지하철은 돈을 절약하는 면에서는 이득이지만 시간으로나 노력으로나 훨씬 더 소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먼저 택시를 타고 15위안을 낸 뒤 (정말이지 걸어서 50분 정도 걸릴 거리에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네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14호선 - 6호선 - 10호선 - 1호선, 총 12정거장) 상황이 이러니, 다시는 지하철로 시내로 이동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개찰구에 들어서기 전에 마치 공항 검색대에서 하듯, 가방 검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긴 줄을 서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베이징의 교통이 이렇기 때문에 베이징 내에서 교통을 이용할 때는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베이징 시내에 숙소를 잡은 사람이라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베이징 변두리에 숙소를 잡은 사람이라면 다음의 세 가지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하이에서 베이징에 출장을 오는 제 동료가 베이징에서 이동할 때의 두 가지 법칙, 그리고 제가 발견한 세 번째 법칙입니다.

하나, 호텔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는 택시를 탄다. 
우리 호텔이 있는 이 지역은 시내가 아니라 택시가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우버와 같은 공유차량제를 선택하면 그 차가 여기 오기까지 20분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택시앱을 이용해 택시를 부르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택시앱에는 콰이디, 디디가 있습니다. 각각 알리바바 텐센트가 인수한 회사들이지요.

카페 : 가장 널리 쓰이는 택시앱에는 콰이디, 디디가 있어. 각각 알리바바, 텐센트가 인수한 회사인 만큼 마케팅에 많은 돈을 쏟는 회사들이야. 돈이 많은 회사들이니까. 앱으로 5~15위엔을 주면 택시 예약을 할 수 있어. 이 예약금은 결국엔 이 택시앱 회사들에 내는 수수료인 셈이지. 하지만 택시 예약을 하는 것이 탑승객 입장에서 편리하기도 하고 나중에 택시 쿠폰을 받을 수 있도 있으니까 결국엔 이득이라고 생각해. 

둘째,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공유차량제를 이용한다. 
교통이 많은 시내에서 호텔에 돌아갈 때는 우버나 AA를 사용해 돌아오면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이두가 바로 우버에 투자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버, AA를 비교하자면 AA는 우버의 후발주자입니다. 하지만 가입부터 엄격하게 카드번호 기입을 요구하는 우버에 비해서 AA는 비교적 간단하게 가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사용자를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시내에서 택시보다 저렴하고,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철통인력거(?)'를 탄다. 
이 차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을 하자면 인력거를 바람을 막을 수 있게 사방으로 철판을 대고, 차도를 달려야 하므로 엔진을 단 듯한 초미니 자동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단은 제 경험담입니다.

때는 1시 30분, 저는 자금성 출구에 있었고 2시까지 XFounder 밋업이 열리는 '차오창차오지'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택시기사들은 목적지를 듣자 100위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타이꾸이러!' 너무 비싸다고 외치며 20위안으로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기사들은 혀를 내두르며, 미터기도 그렇게는 안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가 그 미니차가 제 앞에 섰습니다. 미니차에서 나오신 할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눈은 선명하게 번득이는 분이셨습니다. 이 미니차에 제 목숨과 시간을 맡길 수 있었던 것도 이 할아버지의 인상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에게 70위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저씨와 40위안으로 흥정을 했습니다.

철판에 문과 창이 달아 나름의 구색을 갖춘 이 미니차 안에 자리를 잡으니, 정말 저 한 사람, 그리고 그 옆에 제 가방을 끼워넣을만한 조그만 자리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1인만 태울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미니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저는 차체와 제가 탄 뒷자석이 분리될 것만 같은 약간의 공포감이 들어 아저씨의 운전석쪽으로 몸을 바싹 기울였습니다. 아저씨의 운전실력은 탄 사람의 편안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떤 사람도 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평할 수 있었습니다. 신호에 멈췄다 다다다 가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거미 같았으며, 자유자재로 차도도 달렸다 자전거도로도 달렸다하는 것이 박쥐와도 같았고,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운전대는 뱀의 요사스런 눈 같았습니다.  그렇게 15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저는 기분좋게 40위안을 꺼냈습니다. 아저씨와 셀카도 한 장 찍었습니다.

상하이에 안착한 지금은 사통팔달 편리한 상하이 지하철 덕분에 3,4위안의 저렴한 비용으로 요기조기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중국인에 녹아가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22일 목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짜이서울 장재영 대표님의 중국 생활 정보 + 고비 파트너스(Gobi Partners) 이야기


고비파트너스 (Gobi Partners) 



업무가 시작되는 아침에 유에팅은 제 책상에 요거트 하나를 놓아줍니다. 
저희 직원들 아침 대용/ 간식이에요. 
오늘은 저희 사무실에 반가운 손님이 두 분 오셨어요.

하나, 장재영 대표님의 중국 생활 정보


오전 11:30 

짜이서울 장재영 대표님께서 저희 사무실에 오셔서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대표님께서 워낙 중국어를 잘 하시다보니, 저희 직원들이 많이 칭찬하시더라고요. 대표님은 이전에도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6개월 하셨지만, 작년 8월에 상하이에 본사를 세우시면서 6개월 동안 많이 늘으셨다고 하셨어요. 저도 장재영 대표님처럼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목표! 대표님께서 상하이에서 그 동안 쌓으신 생활의 노하우들을 몇 가지 알려주셨어요. 위챗으로 그 동안 모아서 공부하시던 기사들 & 유용한 중국 영상등을 모두 포워딩 해주셨어요. 

한국인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다음 - 복단대
네이버 - 두레마을, 상하이저널
을 추천해주셨어요. 

중국인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위챗으로 That's Shanghai를 추천해주셨어요. 밋업이 위챗으로도 형성된다니, 무척 놀랐습니다. 중국은 정말 명함 교환부터, 이런 공식적인 모임까지 위챗으로 다 해결한다니, 위챗의 영향력이 정말 놀랍더라고요. 

워킹 VISA의 경우에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고, 문서를 맡기고 한국에 가는 것까지 생각하면 60 + 40 = 100만원은 든다고 하셨어요. 2,3군데 가보고 바로 맡길 업체를 선정해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절차는 회사에서 초청장을 받아, 한국의 중국 대사관에 낸 뒤에 취업허가증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와 상하이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서류가 5~60만원 정도 든데요. 

장재영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ㅠ



둘, 고비파트너스



오후 3:30

그리고 고비 파트너스의 에이버리(한국어로는 금향) 투자자님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조선족이시기 때문에 한국어를 너무 잘 하시더라고요. 
고비 파트너스.. 고비 사막에서 나온 이름인 것 같은데 회사 웹사이트에는 설명이 없네요. 금향 님이 회사가 푸동 지역에 있다고 하시면서 놀러와도 좋다고 하셨어요. 

*고비 파트너스
2005년 설립. 
하단이 포트폴리오. 이 중에서 상단의 4개만 살펴볼게요. 

8D World : 영어 이러닝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 

AOLIDAY : 외국에 FIT를 위한 온라인 예약 웹사이트. (최근에 투자를 받았다.)
참고로 FIT는 네이버 영어사전의 의미로 추측하건데, Foreign Individual Traveler인 것 같다. 





*FIT 영국식 영국식 발음듣기 단어장추가
(여행) 개인으로 움직이는 여행 및 여행자로서 원래는 개인 또는 소수인으로 탑승원이 함께 앉는 여행에 대한 호칭이었지만, 현재는 외국인 개인 여행자를 말한다.


APPS FOUNDRY :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통해 1백만 출판물을 전송하는 싱가폴 기업. 

BRITE : 반도체 칩을 설계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는 주문형 반도체 기업으로 저비용의 대체제를 제공




*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ASIC 웹수집 웹수집 도움말 단어장추가

주문형 반도체 ASIC
*fabless 미국·영국 [fǽblis] 미국∙영국식 발음듣기 단어장추가





[형용사] 공장을 갖지 않는 ((제조 회사가 대규모의 제조 시설을 갖지 않는)), 반도체 칩을 설계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는





이렇게 한국어를 잘 하시는데, 한국 스타트업 많이 만나셨어요?
아뇨. 거의 못 봐요. 사실상 힘들죠. 중국어를 잘 못하고, 중국 시장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면 아무래도 중국 진출을 하는 것이 어려우니까요.
투자자님께선 혹시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이전에는 컨설팅 회사에 있다가 이제는 VC에서 투자자로 일해요. 
어느 쪽이 더 좋으신가요? 
VC로 일하는 게 더 좋아요. 컨설팅 회사에서는 큰 회사만 상대했었잖아요. 이미 낡은 것에 대해 개선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스타트업들과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즐겁죠. 또, 대기업의 임원들만 상대하다가 6~7명의 스타트업 직원들을 만나니까 더 친밀하니 좋아요.
테크노드에는 언제 투자하셨어요? 
2013년 에요. 테크노드 포함 제가 담당하는 스타트업은 11개에요. 
나머지 10개 회사는 혹시 어떤 분야에 투자하셨어요?   
금융 쪽은 렌딩클럽(Lending Club)과 같은 P2P쪽에 관심있어요. 이 외에 여행, 교육 분야에도 투자해요. 
회사 중에서도 Loujinso 라고 $ 100억 가치 기업이 하나 나올 것 같아요. 금융 그룹 밑에 있구요. 
후광통의 효과는 어떤가요? 
사실상 홍콩에 있는 투자자들만 중국에 관심있지, 중국 내의 투자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테크노드의 슈항 기자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었는데.)
여행 쪽은요? 
여행은 국내, 해외로 나가는 것 다 매우 활발해요. 
교육 쪽은요? 
교육은 2013년에 비해 올해에는 많이 수그러들었어요. 앱/웹으로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효과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구요. 
한국 스타트업에도 투자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셋, 디디따쳐(弟弟打车)


저희 위챗 그룹에 간혹 직원들이 뽑기 링크를 올립니다.
오늘은 샤오슈앙이 디디따쳐 승차권 뽑기를 올렸어요.
저는 15위안 짜리 쿠폰을 받았어요.ㅎ 
(왕량은 18위안을 받은 걸보니 정말 랜덤인듯.)


원래 디디따쳐 앱이 없었기에 바로 설치!


1월 22일 샤오슈앙으로부터 15위안 승차권을 받았다는 메시지 :)
한국에서는 막차가 끊긴 게 아니면 거의 택시를 안 탔었는데, 
중국에서는 택시 탈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기본료는 13위안 입니다. 
아직 택시앱이 하나도 없어서 수동으로 그 동안 손흔들어서 택시 잡았는데, 
택시콜도 하고,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요. 

이제 10:18 a.m.입니다.
오늘 하루 기분 좋게 보내세요!

2015년 1월 21일 수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테크노드 기자들 이야기 & 중국에서 유용한 앱 3가지


테크노드 기자들 이야기 & 
중국에서 유용한 앱 3가지


PART1. 테크노드 기자들 이야기

질문1. 테크노드의 기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테크노드의 본사는 상하이에 있으며, 베이징에 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포함한 건물 한 채가 있는 베이징 사무실이 더 커요. 그 이유는 하단에서 설명할게요.
의 기자들은 베이징, 상하이 그리고 셴젠 지역에 나뉘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기자들끼리 위챗으로 새로 올라온 기사 링크 + 제목을 올려요. 기사를 두고 코멘트를 해주기도 합니다.


테크노드 중국판의 Chief Editor(住编) 뉘치엔이 오전 8:32에 기사를 공유해줍니다. 
뉘치엔의 기사 제목을 하나 보겠습니다.




에바 : 뉘치엔 이 기사 제목 이렇게 번역하는 거 맞아 ?

11시 11분. 캠퍼스 소등을 하고나서 학생들 사이에 무슨 일어나나.

뉘치엔: 음.. 문화적인 문맥을 이해해야 해. 중국에서는 11시가 되면 대학 캠퍼스의 모든 불을 소등하거든. 이 때 와이파이까지도 다 나가기 때문에 중국 대학생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정말 수다를 떠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그런 대학생들을 위한 앱이 나왔어. 그 이야기야. 

(엠마가 우리 둘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질문2. 테크노드의 기자들은 몇 명인가요? 


테크노드 필진들. 영어기사를 맡는 사람은 Tracey(住编), Emma 그리고 저 Eva,
루강 대표님도 영어기사를 쓰셨는데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으시고요. 
중국기사를 맡는 사람은 나머지 7명입니다. 

지역으로는 엠마, 저, 뉘치엔, 루강 대표님이 상하이에, 
나머지 7명은 베이징에 있습니다. 
이런 멤버 구성의 이유는 베이징에 더 많은 스타트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상하이는 외국인이 많아 좀 더 글로벌 지향의 스타트업이 많아요.

재미있는 점은 住编이 각각 다른 도시에 있기 때문에 ( 가령, 영문 기자들은 상하이에 많은데Tracey는 베이징에, 중문 기자들은 베이징에 많은데 뉘치엔은 상하이에 있음)
저희의 위챗/메일로의 소통이 더 중요해진다는 점입니다. 






PART2. 중국에서 유용한 앱 3가지

1. 중국에서 VPN을 통해 페이스북, 구글에 접속하려면? 
터널베어


플래텀 조상래 대표님께서 중국 가기 4일 전 정도에 소개해주신,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아주 중요한 앱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모바일로 VPN 접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터널베어 덕분이에요. 무료 버전을 다 쓰고나서 유료로 업그레이드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30초 이상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터널베어를 무척 좋아하게 된 이유들이 있어요. 

첫째, VPN을 끄고 켜기 매우 쉽다는 것.
제가 해야 하는 건 단지 스위치를 온오프 하는 것 뿐이에요.

둘째, 아름답고 깔끔한 디자인!
이 앱을 열때 전세계 지도가 나오는데 그게 참 좋아요. 간혹 기자들한테 중국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볼 때 이 지도를 가리키기도 하거든요. (지명은 안 나옵니다만.)

그리고 이 곰 캐릭터가 무척 귀여워요. 터널베어 VPN을 다 썼을 때는 이 곰이 눈에서 빨간 광선을 내뿜습니다. 


결국 터널베어의 1년치 $29.99를 신청했습니다. 중국에 1년 이상 살 거니까요. 



 2. 중국의 솔로들을 위한 앱?
모모(陌陌), 탄탄(探探)


점심 시간, 밥을 다 먹고.

엠마: 에바, 너 모모라는 앱 알아? 
에바: 모모
엠마: 응, 솔로들을 위한 서비스야. 

(바로 다운로드)


http://www.immomo.com/



저녁 시간, 밥을 기다리며.

에바: 주어허, 나 오늘 엠마가 알려줘서 모모 다운 받았어.
주어허: 아 진짜? 근데 나는 그거 안 쓰는데.
에바: 그럼?
주어허: 탄탄을 쓰지. 매일 남자들 프로필 사진이 올라오는데 맘에 들면 오른쪽, 맘에 안 들면 왼쪽으로 스윕하면 돼. (직접 시범을 보인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UX
귀여운 아이콘





3. 중국에서 급히 숙박할 곳 찾기?
취날(去哪儿)

'중국에 에어비앤비를 왔는데, 집이 최악이다.
밤 11시 30분인데, 어떻게 집을 찾지?'

라는 상황이 던져졌을 때, 
제가 한 것은, Just Go 중국 여행책의 상하이 - 숙박 쪽을 찾는 것. 
주어허가 한 것은, 간단히 한 앱을 켜서 검색을 한 것.

결국 제가 여행책을 통해 주변에 찾아낸 호텔은 400위안이 넘었고, 
주어허가 앱을 통해 알아낸 호텔은 훨씬 우리 집, 사무실과도 가깝고, 
가격도 280으로 훨씬 저렴했습니다. 
주어허는 바로 그 호텔에 전화해 한 방을 예약했습니다.

저녁 시간. 밥을 기다리며

에바: 주어허, 어제 우리 집 근처의 호텔을 찾을 때 쓴 서비스가 뭐야?
주어허: 요거, Qunar이라는 서비스야. 去哪儿(어디 가?) 라는 뜻이고.


낙타 이미지가 무척 귀여운 서비스. 또 처음 뜨는 글씨체 역시 매우 '나그네' 혹은 '바람' 같은 느낌이 나요 


저희 집 근처 주소를 첫 줄에, 그 다음을 묵을 날짜를 그 다음 줄에 입력하고 나서 찾기를 누르면 됩니다. 



으아.. 오늘은 10:30 a.m.까지 블로깅을 했네요ㅜ
바로 업무에 들어가야지.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에서 은행계좌 열기 그리고 핸드폰 개통하기


중국에서 은행계좌 열기 

그리고 핸드폰 개통하기 


하나, 중국에서 은행계좌를 열려면, 여권, 지금 사는 곳의 주소, 중국 핸드폰 번호를 알고 가면 된다. 

월요일 첫 출근 기념 상하이 사무실 모든 직원들이랑 식사를 하고나서 사무실에 돌아오는 길에 대표님께서 유에팅의 도움을 받아서 은행계좌를 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유에팅: 교통은행에 가자. 여기는 중국에서 무척 오래되고 유명한 은행이야. 

*교통은행??
하나, 중국 교통은행은 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위안화 청산은행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청산은행 업무를 시작했다. 교통은행은 지난 7월 한·중 양국 정부 간 합의에 따라 중국 인민은행이 지정한 한국의 위안화 청산·결제 은행이다. 

둘,  1935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중화민국 중앙은행중국농민은행교통은행과 함께 중화민국의 화폐를 발행하는 발권은행이 되었다.




우리는 그 길로 회사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교통은행(Communication Bank)에 들어갔습니다. 번호표를 뽑고 나서 용지 하나를 작성했고, 그러고나서 사람이 많아 한 15분 정도 기다려야했어요.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둔 채로 은행직원과 마주보고 한 25분은 용지를 왔다갔다 한 것 같아요. 
발급받은 체크카드에 지갑에 있는 200위안을 넣고 나서, 저희는 사무실에 돌아왔습니다. 

무려 1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았어요. 


중국의 ATM은 화장실에 들어가듯 이렇게 문을 잠그고 들어갑니다. 
또 비밀번호도 여섯자리에요.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그 날 저녁, 경영지원팀의 조가 제 12월 한 달 임금을 넣어주었어요. 어찌나 고맙던지. 


첫 임금을 받고나서 회사로 돌아오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바로 가족들에게 카톡을 날렸습니다. 
'저 첫 임금 받았어요! 이제 홀로서기에요!'

둘, 중국에서 핸드폰 개통을 하려면, 여권, 지금 사는 곳의 주소, 개통할 핸드폰이 있으면 된다 .


대표님의 제안대로 China Unicom에서 개통했습니다. 
번호는 제가 좋아하는 숫자 6이 세 번 들어간 것으로 선택했어요. 숫자 6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제가 6월(유월) 생이고, 성이 유씨이다보니 이런 공통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더욱이 중국에서는 liu六 liu劉  
숫자 6과 제 성의 성조만 다를 뿐 병음은 같거든요. 
중국에서도 일반적으로 '물 흐르듯이 순조롭다'의 뜻을 지닌 '利[리]와 비슷한 발음이라 8 다음으로 6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보가 다 담긴 칩을 저에게 건내자, 
저는 그 동안 대표님께서 임시로 쓰라고 주신 칩을 꺼내고 새로운 칩을 꽂았어요. 

요금제는 1년치 계약을 하고, 한 달에 1G인데 보증금으로 240위안을 넣으면 한 달에 20위안씩 되돌려주면서 1G를 더 주는 방식이 있어서 그것으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첫 달치로 낸 돈은 360위안 정도였어요.  

마침내 제 번호가 생겼다고 위챗방에 직원들에게 번호를 보냈습니다 :)


유에팅을 버스정류장으로 바래다 주는 길. 주말에는 이 공원에 꼭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집 가까이 공원이 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오늘 하루 제 은행 계좌 열기, 핸드폰 개통을 도와준 고마운 유에팅. 
또 제가 지금 사는 집도 유에팅이 찾아준 것이고, 침대시트를 사다놓았으며, 집 약도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제 책상에 놓아주었어요. 
저에게 중국생활에 대해 세세하게 조언해주는 점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유에팅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것을 보고 나서 위챗을 보니 대표님의 메시지.


technode를 검색하시다가 발견하신 모양이에요. 제 이야기가 나오니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루강: 이 사람은 누구니? 
에바: 김광현 님은 한국경제신문의 28년차 기자시고, 지금은 디캠프 센터장으로 계세요. 이제는 '광파리의 IT이야기'라는 블로그를 하세요. 

(하나, 이후 대표님께 테크블로그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개인 블로그이지만 Tech를 다루시는 것이라고 정정하였습니다.
둘, Hankook Economy Newspaper이라고 말씀드리면 잘 모르실까봐 Korean Economy Newspaper이라고 썼습니다.)


저도 샤샤삭 네이버 검색해서 얻은 결과. 중국에서는 VPN이 필요한 구글보다 VPN 없이도 접속가능한 네이버가 훨씬 빠르거든요. 


상하이에 처음 도착한 날 지났던 번화가. 
밤에 보니 훨씬 화려했습니다. 


동네 한 바퀴 돌아 집에 오는 길. 
제가 사는 아파트입니다. 


우리동네 공지. 
한국에서 살 때는 A4용지로 된 주민공고가 더 익숙했는데, 
여기 공지는 마치 네온사인 같네요. 


유에팅이 알려준 덕분에 오늘 밤은 온풍기를 틀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온수를 나오게 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방 안에 있는 온풍기 생각에 어제에 비해 냉수로 씻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직면한 문제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훨씬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춥기 때문에 추운 것이 아니라, 추울 것이라고 자꾸만 추위를 재촉하는 저의 마음이 저를 더 추위에 떨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파카를 입고도 추위에 어깨를 잔뜩 움츠려서 어깨가 뻐근할 정도였는데, 
오늘은 온몸을 이완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습니다. 



그 날 밤 우리 가족 카톡방. 
저희 가족은 아빠 광저우(중국), 저 상하이(중국)
엄마(서울), 오빠(춘천) 다 떨어져서 살거든요. 

요즘만큼 저의 가장 시시콜콜한 카톡친구들은 바로 우리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저보다 1년 3개월 먼저 중국 자취 생활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특히 많은 팁을 주고 계세요 :)
인생선배, 아버지가 걸으셨던 길을 저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곤충 아니고 온풍. 이 얄미운 자동 철자 기능이여..


제가 사무실에 컵이 없어서 집에 딱 하나 있는 머그컵을 집 - 사무실에 계속 들고다니고 있었거든요. 유에팅이 사준 컵. 
Oh Mickey가 아닌 Oh My, 중국답네요 ㅎ
오 나의, 
회사 그리고 집. 

상하이 생활 3일차이지만 벌써부터 '오 나의' 애착이 강한 밤입니다. 
지금은 밤 10시 11분이고, 
회사에는 저랑, 어떤 스타트업의 여자 한 분 둘이 있어요.
이제 주어허가 상하이에 도착했데요, 집에 돌아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겠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2015년 1월 9일 금요일

[에바노트] 아픔 그리고 건강

건강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출국을 4일 앞두고 저녁에 먹었던 순대 때문에 급체가 왔습니다. 그 다음 날 약속도 나가고 옐로모바일 인터뷰도 나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는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지 몸을 제대로 못 가눌 정도였습니다.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아 빨리 완치해야 겠다는 생각에 중학교 때 처음 한의원에 갔습니다. 한의사님은 제가 매우 심하게 체했으며, 원래 위와 자궁 쪽이 좋지 않다며 일정 기간 치료와 한약복용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 하나 만큼 묵직한 뜸을 들이고, 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6대 맞았으며, 손도 땄습니다. 오히려 치료를 받으니 더더욱 어지러워져서 집에 와서는 바로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는 뜨거운 추를 달아놓은 것 같아 내일 일어나서 생활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결국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퓨처플레이 포트폴리오 세 대표님의 인터뷰와 비즈니스 모델 포럼 모임을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에어로빅 반장님과 친한 언니들에게도 못 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하게 루강 대표님께 지금 몸상태가 좋지 않지만 베이징에는 꼭 갈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메일을 쓰고 나서 저는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었습니다. 전기장판을 가장 고온으로 해놓으면 평소에는 델 것 같이 뜨거웠는데 오늘은 따뜻한 모래사장 위에 누운 듯 했습니다.

덕분에 이틀 내내 미음과 한약,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1~2주간 이렇게 먹어야 한답니다. 중국에 가서 산해진미를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보기좋게 실패한 셈이죠.

다음 날 아침 메일을 확인해보니 루강 대표님께서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몸상태가 좋지 않다면 베이징에 오는 것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대표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한 동안 미소를 지었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아플 때 제 마음과 아픔이 가시고 나서의 제 마음은 너무도 다릅니다. 아플 때는 그 동안 연락 못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아픈 게 낫고 나서는 언제 아팠냐는 양 또 제 할 일에 매달리니까요.

제가 중국에서 아팠더라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지금은 엄마가 나를 이렇게 지극히 보살펴주시지만 중국에서 아팠더라면 누가 나를 이렇게 해줄까.. 오빠도, 혜진언니도, 주변 사람들도 매번 강조하던 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감한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