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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쉰들러 리스트] 이스라엘 친구가 말해준 유대인의 고난 그리고 쉰들러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리암 니슨, 벤 킹슬리, 랄프 파인즈, 캐롤라인 구돌, 조나단 사갈, 엠베스 데이비츠
개봉
1993 미국
평점





1. 감동

영화를 새벽 2시가 넘어 다 보고서
엄마 알람에 6시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꾼 꿈이 무슨 꿈이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나는 
<쉰들러 리스트>의
흑백 장면들을 다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 잘까 하다가도 
일어나기로 한 것은
이미 다시 자는 것이 오히려 일이라고 생각될 만큼
정신이 맑았고,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서 일부러 다른 일을 하다가
스크린을 마주하는데
책을 펼치고 나서도 <쉰들러 리스트> 
생각 밖에 없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유대인이다. 
그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게 된 것은
그에게 사명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2. 쉰들러
나는 생각했다.
쉰들러는 천사같은 사람이라고.
쉰들러는 1100명의 유대인을 살렸고,
이들은 6천 명이 넘는 자손들을 남겼다.

이스라엘에서 살 때, 
가장 힘들었던 때가 모셰 샤렛에 살 때였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팔고 싶었으나
집이 50일 동안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 브릿이라는 룸메이트랑 살았는데
우리는 같이 살면서 해야 하는 실용적 대화 외에 
그렇게 대화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친구였다.

언젠가 브릿이 내 방으로 왔다.
역시나 실용적인 얘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화제를 꺼내다가 그리 됐을까?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다.

브릿: 너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 봤니?
에바: 아니..
브릿: 오마이갓. 너 진짜 그거 꼭 봐야해.

브릿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때 나치의 항복으로
풀려난 사람들 중 일부였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가
이 두 사람을 이 땅에서 속히 나가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에 왔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모두 수용소에서 돌아가셨고, 
두 사람은 열심히 살았다.
불모지인 나라를 처음부터 일구어 나갔다.

브릿은 할머니의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서 나에게 전해주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긍지가 느껴졌다.

쉰들러...
나는 현재도 쉰들러의 자손이 갖고 있을,
유대인들이 금이빨을 모아 만든
그 반지를 생각했다. 

그 시기에 쉰들러가 한 일은 정말..
너무나도 옳은 일이었다.  

브릿만큼이나 친한 유대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왜, 밤이 되었을 때 
그 친구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하지 않았던 걸까.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로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가 있었으니까.

3. 유대인
유대인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각별하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7개월을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대인들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자기 PR을 사람 혼을 빼놓도록 잘하는 모습, 돈에 한에 정말 쪼잔한 모습, 
무한하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
그러나 그들을 가엷다고 여기거나, 
그들이 애환에 젖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을
영화 <피아니스트>를 통해서 
13살 겨울에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처량하게 그들이 당해야 했던 수모의 잔상들은 그 나이의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로 다시 그 시기의 유대인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새로웠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너무나 꼬장꼬장하다고 느낀 
정통유대교도들이 처음에 비쳐졌고, 
나는 그들이 처음 크라쿠프에 오게 되어 독일군이 그들의 옆머리를 자르며 놀림감이 되고,
독일군 앞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댈 때,
이 상반된 상황에 놀랐다.

이스라엘에 가서 만나는 정통유대교도들은 정말 너무나도 엄격한 인상이다.
율법을 철썩같이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만이 사는 마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그 꼿꼿한 중절모와 체통을 버리고,
다윗의 별이 그려진 토시를 달며 
독일병사의 말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했다니..
이 장면은 처음 유대인 거주지역에 도착한 여자가 방에 들어와서 크게 탄식하고,
그 옆의 남편이 망연자실한 채로 서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4. 빨간 코트의 소녀
이 영화는 칼라영화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음에도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오히려 이 흑백영화라는 설정이 색채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만 몰입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 와중에 영화 중간 부분에서 색깔이 입혀지는 것은
오로지 빨간 코트의 소녀가 나올 때이다. 
쉰들러는 말 위에서 이 소녀를 바라본다. 
이 코트가 눈에 잘 띄는 붉은색이어서, 
그리고 작은 아이라는 점에서 
멀리서도 그녀를 주시하게 되었으리라.


소녀는 유대인들이 거주 지역에서 다 쫓겨나 노동하는 곳으로 이동할 때
혼자 건물의 침대 밑으로 도망가는 모습으로 나온다. 
소녀는 집단거주지역 내 다른 유대인과는 달리 비교적 좋은 옷을 입었고, 
머리칼도 치렁치렁하며 
이목구비도 사랑스럽다.
소녀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침대 밑에 숨는다.

이 소녀가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독일군이 유대인의 시체를 모두 다 태워버릴 때이다.
쉰들러는 보고야 만다.
소녀의 코트의 색깔은 빨갛게  빛나는 채로
얼굴과 하체는 흉칙할 만큼 일그러져 타 버렸다. 
그리고 시체가 쌓인 그 수레는 시야에서 종종 멀어져간다.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 때는 바로 이 때였던 것 같다.
쉰들러는 이 모든 것을
남의 일이라 생각지 않았다. 

5. 쉰들러의 태도 변화
쉰들러의 태도는 변한다.
처음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팔 하나 없는 노인에 대해 
슈테판에게 그가 정말 쓸모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당시 독일에서는 우생학이라 하여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이 그런 유전자를 퍼뜨리기 때문에 더 우월하며
장애인들은 그 반대이므로 열등하다는 선전을 퍼뜨릴 때였다.
그 당시 선전내용을 담은 포스터도 있다.
이 내용은 마이클 샌댈의 <생명의 윤리학에 대하여>에 잘 나와있다.
오늘날까지도 동남아 몇 국가에서도
우생학이 이용되어 못 배운 여자들은 자손을 못 낳도록 불임수술을 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고
여대생들에게는 아이를 더 많이 가지도록 장려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에서 독일병사가 유대인 집에 들이닥쳐
모두 다 일어서! 라고 했을 때
휠체어에 앉아 일어설 수 없었던 남자를 휠체어까지 그대로 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던져버린 장면이 상징적이다.  

그 다음 노동지로 옮겨져 
한 여자가 쉰들러를 찾아와 부모님을 명부에 넣어달라고 하자
자신은 쓸모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고심하던 그는
슈테판에게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명부에 적으라고 말한다.
그도 인간인지라, 머리 속에 자꾸 떠오르는 그 이름들을
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쉰들러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을 적으려고 한다. 
더, 더,
슈테판에게 말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왜 더 많은 사람들을
적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한다.
그런 그를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껴안는다.

이 차를 팔았다면 10명을 더 살렸을텐데
이 핀을 팔았다면 2명을 더 살렸을텐데

6. 헬렌 히르쉬
그들은 말한다. 
몇 유대인 여자들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고. 
몇 독일 병사들도 그 병에 걸렸다고 말이다.

헬렌은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나는 아몬이 헬렌을 탐할 때의 대사가 기억난다.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쥐라고 말이다. 

그녀에게 입맞추려던 그는 
헬렌의 뺨을 세게 때린다. 

반면 쉰들러는 그녀에게 와인을 내민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아닌' 키스를 이마에 해준다.

마지막 한 줄 비운 명부에는 헬렌의 이름이 들어간다. 
엄청난 돈을 걸고 그녀 이름을 적고야 만 것이다.  


7. 여자

그녀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해
머리카락을 깎이고 
샤워실 안에 들여보내졌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다 소름이 돋고 몸이 웅크려졌다. 

이 때 쏟아진 것은 가스가 아닌 물이었다. 

엄마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던 것을 회상하셨다.
그 장면에서 관람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고.

그 장면과 그 감동을 함께 영화를 보던 관람객들과 함께하던 그 때를 엄마는
생생하게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이 영화가 유행이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 영화가 나온 시기를 가늠해보며 잠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일까, 후일까.

정답은 후였다. 1993년 이니까. (나는 1990년 생이다.)

머리가 깎인 여자들이 다시 기차를 타고 쉰들러의 고향으로 가게 되었을 때
꼬마들을 붙잡아 가려는 독일 병사들에게
쉰들러는 이 아이들이 노동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그 작은 손을 독일병사 앞에 들이밀며 말한다..


8.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곧,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입해볼 때 

우리 역시 파티장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인을 마시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춤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의 감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현재 외면하고 있는 시대의 어두운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쉰들러는 사업가였다. 
그 위치에서 자신의 재산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을 했다. 

유대인들이 돈을 악착같이 모은 뒤에
불쌍한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록펠러가 그랬다. 

내가 쉰들러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화려한 아름다운 파티장을 바라볼 수도 있고,
바라보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이 세상에서 하고 가고 싶다. 

쉰들러를 존경한다. 
오히려 그가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들이 있었기에 
더 공감이 갔고 
그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2014년 3월 23일 일요일

[ISUP/ 이스라엘 그녀의 생존기] 친절한 유대인의 도움으로 Couch-surfing 집 찾아가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
때는 밤 11시
35kg의 짐을 들고, 끌고 
Couch-surfing을 받아준 Sar & Oly네 집에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 역동의 시간

이스라엘의 첫 날인 오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Israel 
텔아비브 Tel Aviv


Welcome!!

비행기에서 내리자 날 맞이해준 엘레베이터



밤 10시 30분
하지만 박사님이 지하철이 11시까지 있다고 하셔서
저는 매표기 앞에 섰습니다.

Sar & Oly가 말해준 약도를 보면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 가서 Harsharlom 역에서 내리라고 했거든요.

2 정거장 가는데 23.50세켈,
8200원.. 
정말 무서운 텔아비브 물가..




퉁명스러워 보이던 기차 직원이, 
제가 개찰구로 들어가려 하니까
"기차 시간까지 1시간 남았는데, 승강장이 더우니 공항 안에서 기다려요."

미소가 나왔어요 
"고맙습니다!~"

공항에서 푹 쉬며 기다리다가
11시에 개찰구로 왔어요.



의외로 
너무나 로맨틱한 승강장의 모습에
잠시 그대로 서있었어요.

사람들은 편안히 앉아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밤이라서 더 
차분한 가운데.



기차가 한 대 도착했어요.
놀랍게도 2층 기차!

스위스에서도 2층 기차가 있었는데



 

지하철을 맨 마지막으로 타는 
사진 속 맨 뒤의 검은 티를 입은 남자에게 물었어요.

"이 기차가 Hashalom 역으로 가는 거 맞아요?" 
질문을 시작으로 
나를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Shaii Meiri 입니다.

놀랍게도 제가 2달간 교육을 받을
Tel Aviv 대학교의 
생물학과 교수님이셨어요.


처음에는 제 30kg 상당의 짐을 지하철 2층으로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 후에는 저의 행선지를 물어보면서
제가 그 집에 잘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google maps로 자세히 약도를 알려주고,
저랑 같이 그 역에서 내려서 
반 정도 같이 따라가 주었어요.


처음에는 모르는 남자가 저를 도와주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Tel Aviv 대학의 교수님인데다가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서
저도 그 호의에 고맙게 응했습니다.



여기가 Yehudit 거리
30번지에 Sar & Oly의 집이 있다고 했어요.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샤워한 상태였어요.
30kg 캐리어를 든 손은 굳은 살이 자리잡았고,
으으 ㅠ 그래도 다행..!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돼."
라고 Sar이 알려주어서 이리저리 엘레베이터를 찾았는데 
주택만 있고 
엘레베이터는 없었어요. 

두 층정도 시험삼아 올라가본 후에야 알았죠.



엘레베이터 문이 
집문처럼 
여닫이문이라는 것을!!

지금은 엘레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와, 그런가 보다 하지만
엘레베이터가 다른 층에 있을 때는 정말 겉보기에
그냥 주택집인 줄 알았어요!
옆의 엘레베이터 버튼도 초인종으로 보이고!



드디어 Sar & Oly네 입성!!
두 사람이 저를 꼭 끌어안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어요.

저는 30대 중반의 두 여자라서 
아줌마들을 생각했는데 
두 사람 다 엄청 동안이었어요 ㅎㅎ

둘 중의 한 사람이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집이 어쩜 그리 아기자기하고 예쁘던지.


두 사람과 짧은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의 말버릇을 알 수 있었어요.
"Today is today, and tomorrow is a new day."
새 포도주는 새 포도부대에 담아라
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현입니다.
Nalebe내일비처럼. 


저 한 편에 저를 위한 침대도 펴고,
빨간 수건도 놓아주었어요.
정말 친절한 두 사람 



제가 도착한 건 밤 12시 15분
로봇을 참 좋아하나 봐요!

 

Sar & Oly와 함께 보낼
내일은 금요일로, 
이스라엘의 안식일입니다. 

Sar & Oly와 어떤 안식일을 맞이하게 될지
기대가 큽니다 

아 지급은 새벽 3시 27분,
앞으로 꼭 블로깅/ 일기를 쓰고 자리라 마음을 먹어서
졸면서도 정성스레 한 
이스라엘 첫 포스팅이에요.

이스라엘의 추억을 차곡차곡




그럼, 저의 첫 안식일 포스팅으로 돌아올게요!!
샬롬!

[ISUP/이스라엘 그녀의 생활기] 버스 안 정통유대교도 아가씨와의 대화

그 아가씨는 제가 버스에 타서 자리를 찾자 창가쪽으로 비켜앉았어요.
조금 뒤 책을 꺼내 읽으려 하길래, 
"음,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실래요?"
책을 덮으며 약간의 경계심을 표하던 랄스는, 
10분 뒤 저랑 환하게 웃으며 셀카를 찍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Israel 


때는 오전 9시 40분
텔아비브 대학교 가는 7번 버스 


라리스라는 22살 정통유대인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었어요.
(머리를 감싸고 긴 소매에 긴 치마를 입고 있는 것으로 정통유대교도임을 알 수 있어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요,
라리스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ㄹㄹㅅ
로루스일지도,
롤시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히브리어 자음밖에 읽을 줄 모르거든요 ㅠ








: 이거 무슨 책이에요? 
이 책은 Sidur라고 부르는 책인데, 유대인들이 Mizba기도를 할 때 쓰는 책이에요. 남자는 하루 3번, 여자는 하루 1,2번 해야 하죠. 

: 정통유대인 여자는 왜 머리카락을 가리는 거에요? 
: 결혼한 여자만 가려요. 저는 두 달 전에 결혼했어요. 

: 유대인으로서 무엇이 좋아요? 
: 음, 내 신앙(Faith)인걸요.

제가 바보같은 질문을 한 건지도. 

: 이스라엘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해요?
: 예루살렘에 정통유대교도 중에서도 더 엄격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긴 검은 코트에 털모자를 쓰고 다니죠. 그 사람들과 한 번 얘기해보세요.
좋은 경험이 될걸요?


오후 12:09



다르게 생각하라. 
그래 다르게 생각하려고 해볼게. 
하면서 
제가 엠마와의 세션 Ch6의 2차 수정본을 작성했습니다. 
(10월 9일, 아마 수요일에 IT동아에 올라올거에요!)

엠마와의 세션 Ch5

그 때 앉아 있었던 야외 테이블. 





쏟아지는 햇비
 
를 피해서 버스를 타러 갑니다. 

 

Ginger Software 인터뷰 가는데 
반대로 가는 25번을 타서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내렸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멋진 풍경을 보았어요. 



[ISUP/ 이스라엘 그녀의 생활기] 텔아비브 유대인들과 샤밧 저녁식사 feat 유대인에 대한 궁금증

금요일 해가 지면, 이스라엘은 잠이 듭니다.
교통이 끊기고,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때부터 일을 하면 안 돼요. 
전자기기 버튼을 눌러서도 안 되고,
전화를 받아서도 안 되고,
운전을 해서도 안 되고,
불을 켜서도 안 되고,
요리를 해서도 안 되고,
글을 써서도 안 됩니다. 
토요일 해가 질때까지요. 


샤밧
Shabbat

 

때는 금요일 오후 2 시

여기는 이스라엘 5년차 아나씨가 추천해준, 
텔아비브 내 제일 쾌적한 소파자리를 제공하는 카페, LOVEAT에요. 

아나씨가 맡아준 구석 자리, 
그리고 커피
(고맙습니다!)

이스라엘에 온지 거의 3달이 되어가는데 처음으로 
카페에 와서 작업을 했어요. 



제 옆자리에 참 재미있는 사람이 앉았어요.
아주 깔끔한 인상의 남자분이었는데,
떠난 자리에 놓고 간
풍선인형..

멋진 아저씨다. 



아나씨가 제 자리를 맡아준다고 하셔서
구두를 사러 잠시 거리로 나왔어요.

화요일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는
카멜 마켓 옆으로 이렇게 수공예품 시장이 섭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에 와서 처음으로, 
가 내린 날이었어요. 
그래서 하늘도 우중충






저녁 8



White City Shabbat 행사에 왔어요. 





 
Dinner Details:
What: White City Shabbat Dinner with Catered Kosher Food, Golan Heights Wine, Naked Sea Gourmet Salt, Whiskey, Arak & A Relaxing Shabbat

White City 
텔아비브를 하얀 도시라고 부른데요. 지붕이 하얀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Kosher 
유대인들이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지 않는 것을 뜻해요. 단순한 것 같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고기용 식기, 우유용 식기로 나뉜답니다. 제 아는 사람 중에는 우유를 마시면서 맥도날드에 들어갔다가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고 해요..ㅎㅎ 늘 조심!
Shabbat 
- 금요일이라는 히브리어이면서, 유대인들의 주말, 안식일을 지칭해요. 


 
Who: 20's & 30's Young Professional Tel Aviv Internationals, Lone Soldiers, & Israelis Like You
International이라고 써있기에 그런 것이었구나. 
전부 다 영어권 국가였어요. 제가 앉은 테이블은 한 명 빼고 다 미국인. 
캐나다인, 영국인도 있었고요. 

놀라운 것은 영어권 국가의 이 친구들이 대부분 유대인이었으며
이스라엘에 이민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사회 내에 꼭꼭 숨어있던 유대인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나 사실 유대인이야." 할 때가 떠오르네요 ㅎㅎ

Why: What's better than singing, eating and drinking with friends on Shabbat?
When: October 18th8pm, or come earlier at 6:30pm for Kabbalat Shabbat if you wish


 
How: So simple, RSVP above in advance & pay the 70nis with paypal (cash option available)

RSVP는 참석여부를 알려주는 것.
참석비는 70세켈 (22400원. 1세켈 =320원 기준)

Where: The Goren Shul, 20 Modigliani Street (next to Kikar Rabin)



1. 
+ 호무스 외 dip 3 종류 + 방울토마토 샐러드 + 오이토마토 샐러드 

2. 생선요리
가지와 함께 요리했고, 검붉은 소스로 요리했는데 정말 훌륭했어요. 

3. 닭다리와 스니첼
닭다리는 카레같은 소스를 바른 구운 닭, 
스니첼은 돈가스같은 거에요. 
+ 건포도와 볶은 밥 + 감자요리 + 삶은 야채

4. 후식
지렁이 젤리와 크래커, 통크, 체리젤리, 초콜릿 공 같은 것

5. 음료
Hernan 와인, 위스키



식사시간이 되자,
키파를 쓴 한 유대인이 큰 소리로 식사시작을 알리고, 
다함께 기립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채원: 스타브, 샤밧에 일을 하지 않으면,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아?
스탐: 글쎄. 내 인생동안 계속 해온 것이라 별로.

: 왜 남자들은 키파를 쓰는거야?
: 하나님께서 항상 내 머리 위에 있음을 기억하는 거지. 

: 유대인 남자는 왜 허리춤에 긴 줄을 차고 다니는 거야?
: 옛날에 네 모서리마다 줄을 매달곤 했거든. 요즘에는 하지 않지만. 그것을 기억하기 위함이지. 

: 스탐, 페이스북에 너 친구추가하고 싶어.
: 미안. 나 전자기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어. 오늘은 샤밧이라 일을 하면 안 되거든. 내가 스펠링을 불러줄테니 네가 찾아봐 줄래? 
: 헉.. 응 그래 ㅎㅎ


식사가 끝나갈 무렵
모두의 주목 속에 
한 유대인 할아버지가 걸어나오셨어요. 
이 분께서 말씀하실 때 온 좌석이 잠잠해졌습니다.  

우리 식탁에서 당시에 초콜릿 과자를 두고 나쁜 농담을 하고 있어서 잘 못들었는데
마지막 말씀은 
교황에 관련한 농담이었어요. 

"교황님이 운전사가 너무 느리게 운전하니까
본인이 120km/h를 밟으면서 운전하다가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걸린겁니다. 
경찰청장이 물었습니다.
누구이길래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거야?
시장이냐? 아니요. 더 높습니다.
장관이냐? 아니요. 더 높아요.
대통령이냐? 아니요.
오바마? 아니요. 더 높아요. 
교황이었어요!"

이 썰렁한 농담에 우리 식탁 애들 표정이 안 좋아졌어요.
결국 유대인들은 샤밧에 운전을 하지 않는데
교황은 운전을 하다가 속도위반으로 걸린다는 것을 비꼬는 농담이었네요. 






이 유대교도 샤밧 저녁식사는 앞으로 오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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