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2일 토요일

[에바노트] 너의 코어(Core)가 뭐냐?


너의 코어(Core)가 뭐냐?



부끄럽게도 바로 들켰네요.
장미 한 단에 2000원 하길래,
재원 오빠에게 줄 카네이션(엔젤) 한 단,
엄마께 드릴 장미 한 단을 샀습니다.


당연히 엄마께 카네이션을 드려야지.
라고 생각한다면은,
엄마는 1년에 한 번, 어버이날에만 카네이션을 받으시는 걸요?
오늘은 엄마가 아닌
남춘미 씨라는 '여자'에게 꽃을 선물한다는 의미에서
엄마께 장미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오늘 만나는 재원오빠는
제 멘토이니까 카네이션을 드릴거에요.

분홍을 약간 머금은 두 꽃.
분홍색을 좋아하는 저입니다. :)


오빠의 PPT가 시작되었습니다.

 human
오빠는 키워드에 대한 고찰을 합니다.

정의로 시작.
인간이 영위하는 독특한 삶..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
(제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삶의 증거물 = 자기다움


오빠가 두 번째 읽는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입니다. 
작지만 강한 책.


오빠가 현재 일하고 있는 어메이징8
be yourself를 키워드로 만드는 잡지

오빠가 독서토론 인원 중에 프랑스에서 2년 공부한 친구가 있데요.
프랑스인들은 '까기 위해 학문을 배운다.'라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재: 네가 앞으로 쓸 400페이지가 되는 책을 읽고 나서 독자가 자기 말로 정리를 할 때,
유채원은 ____다. 라고 할 때 무슨 말이 남기를 원하는지,
책 제목은 어떻게 할지, 
그리고 또 목차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
짜깁기하는 책은 쓰지 말고.

네가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독자야.
네 스타트업 인터뷰기도 있지마는, 나는 네 책에서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어.
네가 취업을 해도 그렇지.
이스라엘에 다녀온 '그 아이가 사물을 볼 때 어떻게 볼까.'
(저는 이 대목에서 번개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너의 관점은 무엇인지.

채: 이 질문을 저에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빠, 제가 올해 목표를 책을 쓰는 것으로 잡았을 때,
저는 책을 쓰는 목적은... 그냥 '책을 쓰는 거지', 뭐 이유가 필요해. 
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대해 알려야 하니까.'
'내가 힘들게 스타트업 인터뷰를 한 에피소드들이 있으니까.' 였지,
독자에 대해, 아니 그 전에
제 자신에게 솔직하게 책을 왜 쓰는지 질문해 본 적이 있나 돌아봤습니다.

나는 이 책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유채원, 네 코어Core는 뭐냐."


재원오빠는 제가 이스라엘에 떠나기 전 주었던 커빙 팜플렛을 아직도 갖고 있었습니다. 


재: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터뷰는 어땠어?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채: 제가 스타트업 인터뷰를 하는 데에는 4가지 국면이 있었어요.

첫 번째. 함께 동 (8,9월) 
열정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내일비의 소셜마케팅 매니저, 스타트업 인터뷰, 엠마 부틴 씨와 10by10촬영, 스타타우의 창업수업..
정말 주말을 모르고 일했어요.
저는 이 때 알았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일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히브리어가 너무너무 배우고 싶었던 저는
그 바쁜 와중에 조금 살만해지자 바로
1시간 반에 10만원을 받는 수업을 세 번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돈인데, 
그 때는 그 만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컸습니다.
카우치서핑 (6일 지냄) - 브로뎃스키 (40일 지냄) - 텔아비브 기숙사 (20일 지냄)
제가 살았던 이 모든 집들이 참 좋았습니다.
가격도 저렴했고요. 
하지만 브로뎃스키는 주인이 쫓아내서 (룸메이트 2명을 당신 스스로 더 구할 수 없다면 당신도 나가야 할 것 같은데)
텔아비브 기숙사는 새 학기 시작 전 전부 비워주어야 해서 비워주었습니다. 
이 때는 빵, 샐러드, 시리얼 세 가지만 돌아가면서 먹었어요.
즉 불을 2주에 한 번 켤 정도였습니다.
다 '생식'을 한 것이죠.
이로 인해 저는 창업인턴 15명들에게 '야생'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예린이나 현정언니가 와서 일부러 밥을 해주고, 
'불을 쓴' 요리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괴로울 고 (10, 11월)
정말 힘들었어요. 
10월 말에 내일비에서 이스라엘 시장을 접으면서, 임금을 받지 못했어요.
집값은 너무 비쌌고, 집을 팔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아무도 집을 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일하는 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모셰샤렛에서의 70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단 하루에 3만원을 지출할 만큼 집 값이 비쌌고,
아파트는 정말 낡았습니다.
제 룸메이트는 담배를 피웠고
집에는 바퀴벌레나 콩벌레가 많았습니다.
제 방 한 면에는 남녀의 성교 장면이 테이프로 윤곽선을 그리며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했는데 이게 사람의 기를 빼앗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 책상에서 작업을 하다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지나치게 큰 침대에 픽 쓰러져 자기 일쑤였습니다.
일도 되지 않는 공간..
변화를 위해 머리를 자르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금요일에 시내에 나가다가 자전거에서 앞으로 고꾸라져
배를 심하게 받아 한 동안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저를 도와준 것이 현정언니, 그리고 하나님이었습니다.
저는 언니가 일러주는 대로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은 뒤
밤에 언니와 전화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주말에는 언니가 머무는 선교사님 댁이나 미셸 집, 교회에 갔습니다.
이 때 저의 낙이 된 것은 오로지 텔아비브 대학교의 히브리어 수업이었습니다.
간혹 지각을 하고, 숙제도 안 해오는 학생이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좋은 질문을 많이 한다며 저를 예뻐하셔서 늘 즐겁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로 살이 찌기 시작했고, 피부도 나빠졌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에 온지 2달 반이 지나고 나서부터 밥을 해먹기 시작했습니다.
11월부터는 먹는 것이 형편 없었습니다.
빨리 이 집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장을 일주일치 보지 않고 3일치씩 조금씩 사온 것입니다.


세 번째. 함께 동 (12월) 
전환기
내일비 임준원 대표님을 포함 총 10개의 스타트업이 스타트업 캠프를 위해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 생활 중 가장 즐겁게 일한 시기입니다.
12월 10일.. 드디어 집이 팔렸습니다.
저는 드디어.. 텔아비브 기숙사에 다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2월에는 대개 칼튼호텔의 상미 씨 방에서 외박을 했습니다.
이 때처럼 잘 먹고 다닌 적이 없습니다.
스타트업 캠프에서 제공하는 밥도 아주 훌륭했고,
임준원 대표님은 상미 씨, 저와 일하면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어요.
저는 알고 있는 맛집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일 싼 체인점인 '킹 조지' 이외 별로 가본 곳이 없었으니까요.
카페 역시 가장 저렴한 '아로마 커피' 이외 별로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이 때처럼 많은 이스라엘의 맛집, 카페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때는 아예 장을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침을 굶거나 아주 적게 먹고,
점심, 저녁으로 대표님께서 사주시는 것으로 먹고 다녔으니까요.
호텔에서 외박을 할 때에는 호텔 아침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먹고 다녔습니다.
이 당시에 텔아비브의 자전거도 많이 탔습니다. 

12월 22일
한국 스타트업들을 공항으로 배웅하고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즈음 엄마께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이미 부모님께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스라엘에 1년 동안 머무르고 싶다고 말한 뒤였습니다. 하지만 전화에서 엄마는 '만약 이스라엘에 머물기 위한 절차가 매우 까다로우면 굳이 애쓰지 말고 한국으로 와라.' 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아모스도 실질적으로 제가 이스라엘에서 워킹 비자를 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기에 학생 비자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바엔 한국에서 학교를 마저 졸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 1월에 귀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스타트업 인터뷰는 저에게 부담스럽고 짐 같았습니다.
네 달 동안 겨우 35개 남짓..
1년이면 충분히 100개 채울 수 있어. 라고 생각했었는데
35개 인터뷰로 한국에 돌아가기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이 날을 출발점으로 미친듯이 인터뷰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네 번째. 즐거울 락 (1,2월)
가장 이스라엘 사람 같이 행복하게 살았던 기간입니다.
낮에는 텔아비브 대학교로 4시간 반 짜리 히브리어 수업을 들으러 가고 
오후에는 인터뷰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터뷰가 이 두 달 동안 40개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인터뷰를 하면 그 퀄리티가 낮아지지 않나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장인정신이랄까.
정말 인터뷰가 습관이 되고,
저는 CEO들의 삶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에는 기사를 쓰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주말에는 이스라엘 여행을 다녔습니다.
예루살렘, 갈릴리 호수, 나사렛, 에일랏을 방문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을 볼 수 있고,
샤밧의 의미, 휴식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히브리어도 가장 많이 늘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텔아비브 기숙사는 모셰 샤렛과 비교하면 꿈만 같았습니다.
집 값이 절반 이상 저렴했고,
룸메이트들은 정말 상냥했습니다.
제 히브리어 교제의 글감들을 읽어주기도 하고, 모르는 뜻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히카루라는 이스라엘에 교환학생 온 2살 연하 남자애랑 친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평행선이었습니다. 정말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처럼 지냈습니다.)
새벽에는 기숙사 주변의 공원을 한 바퀴 걸었고,
슈퍼마켓은 가까웠고,
기숙사 내에 그바힘이라는 엑셀레이터도 있고,
헬스장도 있고,
집은 쾌적하고.. 
더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이 때 사실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셰샤렛에 살 때 부모님께서 대주신 돈은 어마어마 했고,
이미 엄마는 당신의 노후자금을, 제 히브리어 수업비 150만원에 내주신 후였으므로. 
저는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을 택했습니다.
밥과 당근으로 일주일을 살아보았습니다.
밥과 양파+샐러리 합친 것 같은 채소로도,
밥과 호박으로도 살아봤습니다.
음식이 다 떨어질 때까지 새로운 음식은 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주말에는 무조건 이스라엘 여행을 떠났습니다. 

유럽 여행. 
유럽 여행을 가기 2주 전인데 통장에는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동유럽에서 홍보할 것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관심 있어할 스타트업에게 메일을 보냈으나 무참히 무시당했습니다.
정말 티켓만 끊고 그 어떤 계획도 없었습니다.
이러다 자전거로 무전 여행을 하게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 정부보조금 두 달치가 나옴에 따라 유럽 여행비가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카우치서핑을 하고 다니고, 동유럽이 물가가 싼지라
13일 동안 30만원 이내를 쓴 것 같습니다.
헝가리 - 오스트리아 - 체코 - 폴란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저는 대답을 못합니다.
나라마다 한 게 다르고 각자 매력이 달랐거든요.

유럽 여행이 저에게 이스라엘에서 일한 것에 대한 큰 보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에 돌아와서
5개 인터뷰를 더 하게 되었고
73개 인터뷰를 끝으로 2월 28일 귀국했습니다. 


채: 저는 혼자 일하는 시간이 사실 두려워요. 제가 완성해야 할 스타트업 인터뷰기는 40개가 넘어요. 영상 작업 - 번역 작업 - 기사화 작업까지..
그런데 저는 저에게 주어진 시간에 일처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어요.
그래서 자꾸 주말이 되면 나 혼자 이거이거이거 다 해야지 하면서
막상 정말 주말이 되면 사람들을 찾고, 정신을 돌릴 영화, 강연을 찾아가요.
스타트업 인터뷰기는 제가 마땅히 끝마쳐야할 저의 숙제인데 말이죠.

재: 네가 스타트업 인터뷰기를 쓰는 의미가 뭐야? 
그게 네 꿈에 다가가는 단계에서 가지는 의미가 뭐야?
아니면 단지 하는 것 뿐이니?

채:...
저는,
기자가 되려던게 아니었어요.
정말 중요한 질문이네요.
"내가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터뷰기를 연재하는 것이
내 꿈에, 내 삶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것은 제가 인터뷰기를 써나가면서 알게 될 것 같아요.  

재: 그리고 혼자 된 외로운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야.
독서토론 시간에 미친 녀석이 하나 있어.
책을 정말 샅샅이 읽고 그것을 다 정리해서 가져오는 거야.
그 시간은 혼자 된 외로운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외롭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


재: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어.
네가 겉멋이 들어 오거나
아니면 더 성숙해서 오거나
내가 보기엔 두 번째인 것 같아.

채: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귀국 후에 강남역에서 현진언니를 만났어요.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한국의 창업가들이란 소리 듣다가 한국에 오니 다시 찬밥신세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저는 언니에게 물었어요.

"언니는 왜 살아?"
언니가 저에게 되물었어요.
"너는 왜 살아?"
"언니, 나 정말 솔직하게 말할게요. 예전에는 누가 이 질문 하면 제 답은 늘,
나는 하루하루 행복에 겨워서 살아.
라고 말했어요. 정말 그랬어요. 사는 게 그저 재밌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솔직하게,
슬픈 대답이지마는,
관심받으려고 살아요.."

언니는 그건 아니야. 하며 같이 슬퍼했다.
하지만 나는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씨앗호떡을 나누어 먹으며
쓴 마음이야기를 씨앗을 씹듯 잘게잘게 파쇄해버렸다. 

채: 저는 아직 답을 못 내렸어요.
아직도 저는 제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질문해요.
왜왜왜왜왜

이스라엘에서 혼자 지내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실은 이스라엘에서 좋은 질문을 하기 시작한 계기도 여기에 있어요.
창업가들에게 인터뷰 할 때 
스타트업에 대한 질문을 한 뒤에는
정말 인생에 대해서 질문했어요.
당신의 인생에 중요한 건 뭐죠?
당신은 행복한가요?
당신이 실패한 경험은 언제였죠?

얀키 마르가리트 인터뷰 때
제가 준비해온 질문에 얽매어서 얀키의 대답에 맞게 인터뷰를 끌어가지 못해
인터뷰 후에 한숨을 쉬며 얀키에게 물었어요.

"얀키씨,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얀키는, 
"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진솔한 질문을 하렴."
이라고 대답했어요. 

이후 창업가들에게 솔직하고, 개인적인 제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메이타르에서 아미 오카비 씨가 발표할 때,
창조경제 포럼 때는,
그것을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내가 지금 연사가 말하는 저게 뭔지 못 알아 듣을 때,
휴.. 똑똑한 누군가는 다 알아듣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후에는 
"연사가 지금 말하는 내용은 내가 듣지 않으면,
아무도 안 듣는 건지도 몰라.
그렇다면, 사실 나만 경청하고 있는거라면,
내가 모르는 것을 질문해도 괜찮은 거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듣는 주체는 '나'이며,
제가 못 알아들었을 때 저는 그것을 되짚어 확인하여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제가 기자로서 처음 소명의식을 느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 철학이나 고전쪽으로 배가 많이 고파요.
오빠 저는 그럴 듯한 껍데기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제 진짜 알맹이는 비었다는 걸 알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한 독서와 사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많이 채우고 싶어요.


재: 너 창업은 안 하냐?
채: 제 자신이 스타트업인걸요.
부트스트래핑 하는. 
(투자고 수익이고 하나도 없다. 다 부모님이 조달.. 제발.. 얼른 시드라운드 가자!)
빨리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터뷰기를 Exit해야 돼요.
그래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새로운 나라에 나갈 수 있죠.

일단 오빠 저는 Self Leader도 안 된 것 같아요.
아직 why라는 질문이 너무 많고,
스스로 채울 점이 너무 많아서
공부하면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다 Self Leader가 되면 그제야 Leader로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창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꿈은 마침내 Global Leader가 되는 거에요.

재: 네가 '글 쓰는 해적'이었지?
채: 아 실은 그 태그라인은 별로 안 쓰고 새로 바꾸었어요.
300Project를 하면서 '세계러너'로 바꾸었죠.
World Runner 세계를 달리고
3개 Learner 무엇을 해도 적어도 세 가지는 배우고
세게(강하게) Runner/Learner 열정으로 달리고, 배운다.
라는 의미로요.
지금은 이스라엘 그녀이지만,
Exit하고 나면 세계러너로서 다시 달려야죠.

정말 좋은 시점에 재원오빠를 만난 것 같다.
책을 쓰는 what에만 집중한 채로
책 준비에 들어갔다면 정말 사상누각이었으리라.



3월 23일, 새벽 2시 31분.
'외롭지만 필요한 혼자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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