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었다.
소리내어 크게 웃은 것도.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친 것도.
음악 속에 빠져본 것도.
아름다움을 본 것도.
Tziporela
World wide
계획없는 주말.
친구 이름을 대고
대학교 기숙사 컴퓨터실에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가
Orly에게서 공연 초대를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쇼 티켓이 있는데,
같이 갈래?"
저는 단번에 OK라고 대답했습니다.
공짜 티켓이라는 말에 저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공연장 입구
Orly가 Funny show라고 말해주었고,
공연장에 붙은 포스터로도
저는 코미디쇼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자리를 안내해준 사람이 건내준 초콜릿.
연극을 보기 전 작은 감동.
그리고 Sar & Orly가 자신이 받은 초콜릿을 건내주었습니다.
공연 시작.
9명의 주인공들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 연극은 옴니버스식이어서
결국 그 모두가 주인공인 셈입니다.
연극은 최고였습니다.
#1
미친 입국심사원과 그 보스.
여기서 상정한 미국인은
비즈니스맨으로서 완벽한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고
처음에는 친근하게 대응하지만
매우 이성적이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지배인을 불러와라!
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 입국심사원은
"Land of Opportunity"라는 말에
"Yea!" 라고 비꼬듯이 대답해 모두 다 빵 터졌습니다.
이런 자국에 대한 풍자적인 태도가 이 연극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 였습니다.
#2
두 흰 티셔츠를 입은 남녀가 나온다.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검은색 마카펜을 들고 있다.
스스로 티셔츠에 원피스를 그려 입고,
남자는 스스로 셔츠를 그려 입는다.
서로의 셔츠에 넥타이,
목걸이를 그려준다.
---
이 연극이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이어지면서
사랑, 이별 그리고 재회를 그리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껴안은 채로
서로의 등에 꽃, 하트를 그릴 때가 인상깊었어요.
퍼포먼스의 창의성은 유기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옷벗는 남녀 이야기 뒤에
게임 캐릭터가 무대 위에 널려있던 옷들을 치우고,
영화를 패러디해 따라하던 두 청소부에
뒤이어 그 자리에 앉는 심사위원 패널이 나오고,
무대의 장소 이동과
이야기의 전개를 영리하게 이용한 것 같아요.
바로 이 자리에 배우들이 앉아
두 지식인 게이커플 연극을 했었는데.
이스라엘 사람 특유의 영어발음이 있거든요,
그걸 심하게 굴리면서 하는데
정말 공감이 갔어요.
관객과의 호흡도 좋았습니다.
특히 제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얼마나 실감나게 웃으시던지,
제가 원래 소리내서 잘 안 웃는데,
저 역시 마음놓고 크게 웃고 호응했습니다.
마지막 무대인사는
처음 번처럼 모노톤 음악과 함께
1초 Black out - Fade In기법을 이용해
사람들이 다시금 옴니버스 이야기들을 끌어모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때
박수를 사람들이 리듬에 맞춰 다같이 친 것도 좋았습니다.
무대가 끝나고,
제 옆 아주머니가 기립박수를 쳤고,
저 역시 뒤따라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사람들이 이 의자를 그저
앉는 용도로만 볼 때
이 사람들은 이 의자를 이혼위기 부부의 소파로,
연극의 객석으로,
심사위원 패널석으로,
네 여자가 수다를 떠는 카페로,
면접자의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이 연극은 재미와 감동 뿐 아니라
영감과 창의성을 주었어요.
연극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데,
배우들이 나와서
주제곡 연주를 하고 있었어요!!
공연을 보고 난 직후
관객들은 이 공연에 팬이 되버립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커튼 뒤에 가려진 머나먼 존재들이죠.
그러나 그들은!
관객에게 다가가
우리를 배웅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 사물놀이처럼
관객과 배우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이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I am your fan!
정말 대단한 배우였어요.
#3
영화관 안의 남녀, 그 경우의 수
한 구석에서 뜨거운 로맨스를 즐기는 커플
너무 큰 챙모자를 쓰고 온 여자와 그로 인해 영화를 볼 수 없는 남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동하는 할머니와 무관심하게 영화를 즐기는 청년
커다란 팝콘을 들고, 영화에 몰입하는 여자와 야구모자를 쓴 남자
캐시미어를 두른 부잣집 사모님과 남자
Black out - Fade In 기법으로 처리하는데
정전됐을 때 들고있던 것을 빨리 내려놓고
반대편으로 이동해 앉아 Fade In이 됐을 때
능청스럽게 다른 인물을 연기하고...
검은 무대와 감각적인 음악이 흐르던 그 장면.
그리고 정전되면 리듬에 맞게 들고있던 물건을 던져놓고
재빨리 Stand by 하던 모습이 그려졌어요.
#4
여자 넷의 수다
이 퍼포먼스의 포인트는 여자 넷의 수다가
비트에 맞춰 외마디 단어로 이뤄진다는 것이었는데
감탄사와 과장된 반응과 몸짓만으로도
이 여자들이 어떤 내용으로 수다를 떨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아마 최근에도 만났을 것 같은데
만나서 호들갑스럽게 몇 번이나 볼키스를 합니다.
다들 주문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모두 물을 시키고,
마지막 여자가 결국 와플을 시킵니다.
한 여자씩
자동차키를,
남자친구의 반지를 자랑하고,
결국 임신을 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도도한 셀카 표정으로 돌아오는 그녀들.
#5
죽은 남친의 무덤 앞
죽은 남자친구의 무덤 앞에서 마주친 두 여자는
서로 울면서 자신이 더 해준 게 많다며 선물공세를 펼친다.
마지막에 게이 남친이 와서 절제된 비트로
흐느끼는 것이 반전.
#6
발인형극
한 여자가 식탁을 차린다.
다부지고 정신없게 헤드뱅잉을 하면서 상을 차리던 여자는 갑자기 식탁위에 누워 잠이 든다.
등을 식탁에 대고 머리는 관객을 향해 누워있던 그녀의 발이 올라온다.
그 발에는 남녀 발(?) 인형 한 쌍이!
식탁은 무대가 되고,
유리잔은 태양과 달이 되고,
포크는 기러기가 된다.
붉은 냅킨은 그들 사랑의 액자가, 그리고 이불이 된다
마지막에는 다시 잠이 든 여자를 다른 배우가 안아 들고 가는 모습이 애틋했습니다.
Sar & Orly 이 연극에 초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연극이 끝난 후에는 또 집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나를 가까운 친구로 여기는
두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서 행복했습니다.
토다라바.
이 연극의 소중한 추억.
제 포스팅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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