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8일 목요일

[ISUP/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Bay Area K-Group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Bay Area K-Group
케이그룹


다음 포스팅은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의 오전 세션을 받아적은 거에요.
비석세스에 기사로 올라가진 못했지만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2014년 3월 25일 ‘Bay Area K-Group 케이그룹이 하이테크와 스타트업을 말하다.’라는 부재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콘퍼런스”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개최했다.
케이그룹(K-Group)은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의 모임으로, 케이그룹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국내 인적 자원 및 기술 교류를 도모하고 있다.



타오스(Taos)의 윤종영 IT 컨설턴트는 “실리콘밸리에 없는 것이 네 가지 있다. 바로 차별, 편견, 권위의식, 혼자 알기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지식이든 경험이든 모두 오픈하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고 말하며, "우리가 언론과 책을 통해 접하는 실리콘밸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항상 숨겨진 이면을 보아야 한다. 반면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연구개발,



벤처캐피탈리스트 낙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표시가 재미있다.


Eric Kim 님



이동일 님



이후 실리콘밸리 한국인의 위상에 대해 윤종영, 진정희, 배정융, 이동일, 임정욱 대표의 패널토의가 있었다.
 
좋은 서비스가 있더라도, 벤처캐피탈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Fantage.com의 V.P of Marketing배정융) 막막할 텐데 벤처캐피탈의 홈페이지에 가면 연락처가 있다. PPT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인터넷 상에도 정보가 많이 있다. 실리콘 밸리에 대한 충분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은 스탠드업 네트워킹 문화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스탠드업 문화에 친숙해져라.  자기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 소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여러 모임에 지원해서 참석하고 그런 모임에서 자기 스토리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지인을 통해서 소개를 받고, 벤처캐피탈을 만날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과정에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맥주 하나 들고 계속해서 영어로 얘기하는 스탠드업 문화가 어려울 수 있다. 나도 미국 생활15년 동안 보스랑 얘기하면서 질문하는 문화, 유머 나누는 문화를 배우게 되었다. 사소한 것부터 질문하면 된다. 고향은 어디인지, 이 영화 봤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또 유머 코드가 있다. 스탠드업 네트워킹을 갈 때는 이 사람이 느긋한 마음으로 온 것인지, 한 가지 목적만으로 온 것인지 바로 파악된다. ‘이것만 하고 가야지’ 라고 2시간만 머무는 것을 생각했더라도, 실제로는 5시간이 걸린다. 미국 사람들은 대화 중 정치, 종교 얘기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유머 3개 정도 유튜브에 최근 유행하는 영상들을 보고 가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해간다. 이런 미국의 네트워킹 문화에 대해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에릭 킴, 김용길) Streamlyzer를 창업하고 최초 11개월을 통해 프로토 타입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본의 문제, 팀원을 모으는 문제가 있었을 텐데. 과거 동료들을 중심으로 한 것인지. 초기 자본 조달은 어떻게 했는지?
초기 자본 문제가 물론 우리도 있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는 무보수로 일하는 봉사자들도 몇 있다. 밤에만 와서 일하는 사람, 지분만 받고 무보수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베타단계 서비스가 나올 때까지는 보수를 주기 어렵다고 말했는데, 지분만 받고 100% 투자해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이런 환경이 도움이 되었다.
토종 한국인이 외국인을 자신의 스타트업에 조인하게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외국 사람이 자신의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 나의 경우 미국 생활이 전무했다. 미국회사 들어가면서부터 영어 시작해서 새벽에 회화반을 다니기도 했다. 원래 성격도 내향적인 편인데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미팅도 이끌다 보니까 조금씩 영어가 늘었다.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토론 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때?” 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대답도 잘 못했다. 영어보다 그런 점이 힘들었다. 하지만 내 의견을 갖고, 표현하는 것도 조금 씩 늘더라.  



(진정희.) 실리콘밸리의 한인 여성. 2008년에 스탠포드에서 MBA를 하고나서 미국에 남는 길을 선택. 과거에 NHN에서 게임 쪽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실리콘밸리의 한인 여성들 “실리콘밸리에는 남자만 있는 거 아니냐고?”
실리콘밸리의 산호세를 맨호세라고 부를 정도로 남자가 많다. 하지만 요즘에는 휴렛 팩커드의 CEO인 맥 휘트만, 야후의 CEO인 마리사 메이어, 스타급 여성 경영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여러가지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 밸리 내에 여성의 힘이 더 필요하다. 이 주제의 발단이 된 것은 트위터 IPO 당시 임원 급에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외부에 밝혀졌을 때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트위터인데 여성 임원은 없다는 것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갈 길이 (더) 멀다. 한국이 이머징 마켓. 전체 기업의 임원수를 다 모았을 때 여성 임원의 수가 100명 중에 두 명이 안 된다는 것. 올라갈 수록 다 떨어져 나간다. 점점 경력이 쌓이면, 여자 수가 줄어든다는 것. 여성 파워가 세다. 여자가 더 잘나간다. 그것은 표면만 본 것. 한인 프로페셔널 커뮤니티 내 여성은 10%도 되지 않는다. 40대 이상, 임원급 여성이 없다. 대외활동 병행에 어려움이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실리콘밸리 내 한인 여성의 진출이 증가했다. 20대/ 30대 연령층에서의 여성 비율 높은데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산업군에서 소모임 등 네트워킹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7,80% 이상이 테크 백그라운드이어서 엔지니어도 많고, 종사하는 분야도 다양해서 음식, 패션 등 분야에서도 많이 일하고 있다. 10년 후를 보며 본인이 장기적으로 꿈꾸는 삶을 살며 롱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해서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게 중요한데 실리콘밸리 내에는 이렇게 숨어있는 알짜배기가 많다. 열심히 재미있게 잘 사는 한인 여성이 많으니 연락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기회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10년 후에는 실리콘밸리 내에 미국에 한인 여성 임원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서부, 동부와의 차이점.
(배정융) 퀴즈. 총각이 제일 많은 곳은 어딜까? 산호세다. 그렇다면 처녀가 제일 많은 곳은 어딜까? 뉴욕이다. 미국은 '이렇다' 라고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다 다르기 때문에 실리콘밸리 역시 정말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두 가지 축,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비교해보자. 일단 동부에서 알아주는 학교는 MIT 공대, 하버드 외 다수, 서부는 UCLA, 스탠포드 등이 있다. 동부는 문화, 관광, 요리, 재정, 미디어의 중심지라면, 실리콘 밸리는 혁신적인 스타트업. 하이테크 파이낸싱, 뉴미디어 방면이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서 창업을 원하면 어느 곳이 나을지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 실리콘 밸리가 전체 투자 금액의 58%를 가져가고, 뉴욕, 보스턴이 그 다음을 잇는다. 뉴욕 근방에 있는 브루클린에서 창업 열풍이 일고 있다. 뉴욕 문화의 심장인 이 곳에서 재미있는 문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동일) 실리콘 밸리에서 한국인 네트워크 활용할 수 있나.
미국 최고의 한인 네트워킹 장소는 교회다. 무작정 미국에 왔는데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휴스턴, 달라스의 교회에 가라. 이외 실리콘 밸리 최고의 한인 네트워킹 장소는 동호회(interest group)다. Kaps, Kaban, Ksea, Bakas, Bay area K group 등이 있다. 한인들과의 창업 (동업) – 득인가 약인가? 에 대해서 나는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사람과 프로토를 내기 위해 같이 김치 먹고, 라면 먹으면서 동업하는 것이 말하자면 더 쉽다. 개인적으로는 약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맞는 곳을 찾아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윤종영 회장님은 인도/ 중국을 비교해주셨다. 
인도 / 중국계를 비교해보자. 수적으로도. 위상으로도 그들은 매우 성장하여 두말 할 것 없이 엄청난 세력과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경우 페이스북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중국은 페이스북이 안 되니까. 중국 인구가 13억, 인도 인구가 12억이다. 인구가 많은 만큼 우수 인력도 많다. 가격 경쟁력. 컨설팅 회사는 우수한 인력을 싸게 공급한다. 1/5 가격으로 같은 퀄리티를 쓴다. 반은 인도 사람이 가져가는. 구매력. 인도, 중국이 그것 때문에 잘 나가느냐. 구매력 중국. 큰 시장 공략하면 그 나라 native를 써야 한다. 두 번째는 역사. 미국의 이민 역사. 중국은 철도 때. 인도는 영국 식민지로. 한국은 6,70년대. 수적, 역사적으로 매우 짧다. 한국인이 아직 위상이 안 되는 것은 역사가 짧아서 그런 본질적인 . 케이긃같은 것이 많이 생겨야. 공항에서 누가 픽업하느냐가 그 사람의 직업을 결정. 이제는 케이그룹. 피어가 형성. Mit에서 나온 것인데 초등학교 5학년. 게임을 하는 코드. 중국이나 인도는 이민 역사가 오래 되서, 하이테크에서 일하는 부모를 보며 자연스레 겪었다. 우리나라도 점점 하이테크계에서 일하면서 더 성과가 있을 것.
질문을 해야 한다. 중국, 인도 사람은 귀찮을 정도로 질문이 많다. 자기가 모르는 거.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들고. 질문 많이 해야 한다. 이 그림은 미국 독립 전쟁 때 뭉치지 않으면 뱀이 동강난다. 벤자민 프랭클린. 뭉치지 않으면 힘이 안 나오고. 새로운 이민세대는 뭉쳐야 힘이 나고. 더 자랑스럽게 중국, 인도와 경쟁할 수 있을 것.


미국 서부, 동부와의 차이점.
퀴즈. 총각이 제일 많은 곳은 산호세. 뉴욕에서는 처녀가 제일 많은 곳이 뉴욕. 미국은 이렇다. 이렇게 다 다르기 때문에 실리콘밸리는 정말 독보적인 존재. 뉴욕의 맨하탄과 보스턴. 동부는 반드시 양복. 실내 스포츠 클럽. 고전적인 미국의 가치와 멋스러움이 살아있다. 실리콘밸리는 날씨가 좋고, 야외활동이 많고, 벤츠, bmw – 서부는 테슬러. Mit, 하버드 – 동부는 UCLA, 스탠포드. 동부는 문화, 관광, 요리, 재정, 미디어. 실리콘 밸리 – 혁신적인 스타트업. 하이테크 파이낸싱, 뉴미디어. 이게 중요한 이유는. 원하는 분야에 창업을 원하면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워낙 땅이 크니까. 실리콘 밸리가 58% 전체 투자 금액. 뉴욕, 보스턴이 그 다음. 동부는 패셔니 스타. 수염 없고, 고가 브랜드 신발. 티셔츠에 수염. 저 차림으로 동부가면 실업자인 줄 안다. 브루클린에 창업 열풍. 뉴욕 문화의 심장. 재미있는 문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까 그 투자. 실리콘밸리에 모든 게 모이는 게 아니라 많은 산업이 텍사스, 뉴욕, 시애틀에. 많은 다양성이 있다.

 휴스턴, 달라스에서 창업을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도매 의류, 액세서리, 음식, 노래방, 학원, 보험, 편의점, 세탁소, 도너츠, 뷰티샵 쪽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세탁소 네트워크가 크다.) 

하이테크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관계는 먼저, 인종, 문화 , 종교 – 지역, 학교 – 취미, 전공, 커리어 구글글래스 내에도 한국인이 많다. 










그 날 예린이랑 먹은 점심 :)





 

 



[에바노트]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

친구
Friend


요즘 저를 무척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 입니다. 
친구들입니다.

왼쪽부터 디아나, 우이, 아리엘, 은혜, 트리스탄, 리셋 그리고 비비아나


123
456
     7
로 하자면
1,4 한국, 
2,3 콜롬비아,
5,6 볼리비아,
7 베트남,

그리고 사진찍은 트리스티앙이 프랑스인이에요.

저는 이 그룹에 포함되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모든 여행도, 
모든 소풍도 최고가 된다는 것을.

우리 중에는 리더가 없어요.
우리 중에는 이 나라 터줏대감이 없어요.
그래서 좋습니다.

돌아가면서 우리는 오거나이저를 하고 있어요.
자기 스타일대로 그 모임을 준비해나가는 겁니다.


사랑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랑합니다. 
웃음을 사랑하고요. 

조합

누구랑 얘기를 하든지
즐겁게 혹은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아요.
분명한 건,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

개인적으로는 언어공부를 할 수 있어 좋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지,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들으며 문화차이를 알아가는 것도 좋아요.

고백

제가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제가 느낀 점을 고백할 수 있어요.
저의 과거를 얘기해주기도 하고,
걸어갈 앞날 이야기를 하며 다짐하기도 합니다.


KREME
사진(K라고 붙인 건, 한국애니까 ㅋㅋ)

버클리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CREME을 먹고 돌아오면서 찍은 사진이거든요.

저랑 은혜가 쿠키고,
가운데 세 사람이 아이스크림이에요.

저는 딸기맛,
은혜는 블루베리맛 하하

유치하지요?
이 사진을 두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우리입니다.

저는 여기서 제 자신이 됩니다.
환호성을 터뜨리고, 즐겁고,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가득찬
제 자신을 만납니다. 

진짜 나다울 수 있게 하는 이 친구들,
만난지 2주 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같은 사람들,

고맙습니다.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ISUP/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실리콘밸리에서 4주째, 느낀 점


아부지, 잘 지내고 계신가요?

실리콘밸리에서 4주간 살면서 느낀 점입니다.

현재 네 사람이서 한 집에 살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제가 친해진 분은 양대표님이었어요. 대표님은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에요. 한국의 근무시간, 미국의 근무시간에도 일하시니까요. 대표님과 깨어있는 시간이 겹치다보니, 같이 먹는 시간도 겹쳐져 종종 식사를 같이 먹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거죠.

하루는,

채: 대표님, 진로상담을 받고 싶어요. 저는 문화, 예술, 역사, 철학이 정말 좋아요. 저는 나중에 꼭 세계여행을 갈 거에요.
양: ...
채: 저는 금방금방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양: ...

그 다음 날 페이스북에 대표님께서 최충엽 님과 댓글로 이야기 나누신 내용을 읽게 되었어요. 그 내용인 즉슨,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만 관심있는 친구들은 점점 잘하게 되고
"내가 누구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못하게 되는 것일수도 있고요;

저는 후자에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못된 버릇인데, 제 링크드인 프로필을 계속 드래그하는 버릇을 들이게 된거에요.

아빠, 개그맨들에게는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
연말시상식에서 개그맨 대상 트로피를 받으면 그 다음 해에 완전히 망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신봉선은 개그맨 대상 트로피를 받자마자
안 보이는 곳에 치워버렸다고 하죠.

알게 모르게, 자기의 현상태에 도취하게 되버린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만 관심을 갖자. 

여기에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에릭 킴: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신경쓰기 보다 당신의 소명을 따라가세요. 저의 소명은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에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명은 무엇인가요?

지원언니: 너랑 나랑은 비슷한 점이 있어. 한 군데 오래 있는 것보다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거지.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생각이 드는 건, 그럼에도 내가 한 분야의 전문가는 되지 못했다는 거야.

저는 항상 제가 좋아하는 것만 탐닉했지, 
제 전문분야라던가
저의 소명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분명, 제가 쓰는 기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다만 저는 부족한 점이 많아요. 
인터뷰를 하고 난 뒤 기사 작성하는 속도도 느리고,
어휘력이나 논리흐름도 부족합니다. 

이제 '전 부족하니까요'라고 숨지 않을거에요. 
적극적으로 고쳐나갈 것입니다.

Adobe에서 일하는 최고의 영상편집가, 쿠시가 해준 말.



쿠시: 너는 나랑 같아. 나도 정규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어. 그냥 스스로 배웠지. 하지만 모든 기업들이 내 포트폴리오를 보면 데려가려고 안달인걸. 정규교육을 배우지 못했다고 주눅들지마. 스스로 배우면 돼. 

제가 받은 소명은
글 쓰는 것
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하고 싶은 길을 하려고 버둥대지 않을 거에요.
 억지로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애의 관심을 돌리려하는 것처럼 헛되고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에게 주어진 길과
제가 하고 있는 일에서
사람들에게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착실하게 걸어나가겠습니다. 




아부지 답장

채원책 제목대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
큰 사업가가 아닌 이상할 일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일 하나고 제대로 못 할 수 있으니.
돈은 불편하게 살지 않을 정도로 벌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부럽지.
아빠로서네가 전문적인 자기 일을 하기 바라는데 그게 글쓰기든 기자든 뭐든 상관 없다.
네 스스로의 자존감자유의지 등이 너의 직업 선택이나 생활방식을 결정하겠지.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자유 직업은 고도의 배타적 재능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네가 좋아 하는 일이라면
정말 프로가 되어야 하지아니면 힘도 들고살기도 팍팍해지니그래도 좋으면 그 길을 가는 거지.
너는 이제 시회에 막 나온 신참자이지주위 다른 친구 보다 좀 다양하고 유별난 경험이 남다른 보람과 자량이겠지만,
아직 너의 가까운 장래조차 보장해 줄 수 없는 거지지금부터 몰입 해 보라네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짜요!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ISUP/ 에바의 이스라엘 스타트업 인터뷰] 상암테크, 스마트한 도시를 만들자

상암테크
Sangam Tech

https://www.youtube.com/watch?v=4vASlh1SqGA&feature=youtu.be

이 인터뷰기는 비석세스에 올리려다가
이미 프로덕트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
여기에 번역본을 덧붙입니다.

CEO인 에란 알로니씨에게 연락드리니
현재는 하단의 웹사이트,
http://leanciti.com/를 하고 계시데요.



상암테크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도시와 도시와 연결. 데이터를 모아서 사용자에게 도시 정보를 전달합니다. 가령 물, 전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요. 

그 일환으로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시던데요?

린시티라는 플랫폼이 있어요. 소셜 데이터 공유 플랫폼이죠. 큰 동네든 작은 동네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거에요. 이 정보를 나눌 수 있으면 동네, 지역, 더 나아가 전 도시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힘쓸 수 있죠. 가령 전기가 평균에 비해 10%보다 더 나오면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알고, 소비 좀 줄여야 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지요. 또 부모님이 사시는 집의 전기세가 평균 가정보다 더 많이 나오면 더 줄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죠. 이렇게 우리가 정보를 더 얻으면 더 줄일 수 있어요. 도시 차원에서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게 되잖아요.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트레이드 쇼는 무엇인가요?

우리 서비스의 proof of concept을 보여주는거죠. 스마트 빌딩은 유럽에서 특히 관심이 많거든요. 유럽에서는 빌딩과 빌딩을 비교해서 더 나은 빌딩이 이기는 식으로 게임처럼 진행하거든요. 이렇게 레지던스 간의 전기소모량을 비교해서 소비를 줄이는 거죠. 다른 프로젝트는 85개의 유치원에 각 멘토가 있어서 가스, 전기 등에서 조언을 해줍니다. 이런 식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요. 

표적시장은 어느 쪽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가입하길 바랍니다. 도시 프로젝트의 예를 들면 주자 공간이 남는지, 전기가 줄어들었는지 비교할 수 있죠. 지금은 데이터에 대한 통제가 없어요. 어쩌면 사생활 문제가 불거질 수 있겠지만 저희는 서비스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프로덕트는 대중에게 오픈되어 있나요? 
현재 저희는 베타 버전이고요, 사용자도 적습니다. 다음 단계에서 사용자들을 더 늘릴 계획입니다. 

이름을 어떻게 상암테크라고 짓게 되었나요?

창업가가 인도인이었는데, 인도에 상암이라는 안쪽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데요. 우리가 하는 게 다 모아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잖아요. 

투자단계는 어떤가요?

시드 단계에서 엔젤에게서 돈을 받았어요. 다른 R&D 프로그램을 통해 VC에게서 돈을 모으려 한다.

비즈니스모델은 무엇인가요? 

(시청, 구청)에서 일반 대중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 데이터 양에 따라.결정되겠지요.

아시아, 한국 시장에 대한 진출 계획은 무엇인가요?

스마트 시티에서 그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의 흐름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 중 한국이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 먼저 우리 서비스를 구축하고 나서 아시아로 본격 진출할 계획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도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함께 협업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시스템을 린시티를 통해 연결하고 싶어요.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에바노트/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웰스파고(WELLS FARGO) 샌프란시스코 박물관에 방문하다


WELLS FARGO 
웰스파고 




하루 전.
오전 8:18

양주동 대표님과 저는 로켓스페이스에서 준다고 공지한 아침밥을 먹기 위해 
일찍 출근했습니다. 

양대표님: 저기 알아요? 웰스파고 박물관이에요.

채: 아 정말요?

양대표님: 네, 웰스파고하면 인재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죠.
마치 한국의 대우증권처럼.
대우증권은 새벽 6시까지 술마시고 새벽 6시 반에 칼같이 출근해야되거든요.
그래서 대우증권을 나왔다는 건 거의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죠. 

채: 아 그렇군요.
대표님, 그런데 웰스파고 말이에요. 그 이름은 어디서 나온걸까요?


양대표님: 웰스와 파고가 만들었어요.
웰스파고가 아주 대단한 은행이에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를 제치고 1위를 했어요. 
워렌 버핏이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그리고 오늘 오전 10시 50분
무료인가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봤어요.

친절한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무료가 맞데요.
게다가 무거운 제 가방도 맡아준다고 해서 안경을 끼고 박물관 1층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마차 그리고 웰스파고

당시에 마차는 굉장히 인기있는 교통수단이었어요.
그리고 웰스파고 - 마차 = 0
라 할만큼 지금도 웰스파고의 이미지에 마차 로고가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1920년대에 유행했던 이 교통수단은 영화에도 곧잘 출현했어요.
3,40년대부터 서부 영화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아예 

WELLS FARGO
그 다음엔 

THE TALE OF WELLS FARGO
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와서 크게 흥행했습니다. 

당시 서부영화는 무조건적으로 검은 모자가 악당
흰 모자가 착한 사람이었어요.

(지난 겨울 예루살렘 이강목 목사님 댁에서 
보안관, 무법자 놀이를 한 것이 생각나 미소가 떠올랐어요.)


덩달아 장난감도 크게 유행했습니다. 
동화책, 보드게임 등등.
웰스파고 자체가 큰 하나의 상품이었던 거죠.

마치 해리포터처럼요.


보면서 너무 재미있었던 것.
세계2차대전 이후에 빠른 은행업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창구를 만들었데요.
거울을 통해 지하에 있는 은행원과 은행업무를 보는거죠.
이걸 보면서 현재 미국의 For Here or To Go 문화가 
이 때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어요.


그 옛날의 PC
저 디스크가 너무 귀여워서.

고등학교 때까지만해도 저 디스크를 썼었는데 말이죠.


너무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차용한 박물관이었어요.

1. 마차 체험
이 마차를 타면, 웰스파고에 관련한 인물들이 영상으로 비치면서
마치 정말 마차를 타고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2. 짐 싸기 게임
웰스파고 마차에 타기 전 내 suitcase에 어떤 짐을 쌀까 하는 놀이가 있는데
내 성별, 편한 옷/ 스타일링, 소지품 선택 등을 해나가는데
그 시대 물건들을 볼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어요.

3. Please touch
이 박물관은 다 해보라고 해요.
사진도 찍으라고 하고, 만져보라고 하고. 
그래서 정말 좋았어요.
게다가 공짜였거든요. 


맨날 바깥에서 보던 그 마차. 
오늘에서야 안에서 이렇게 가까이 보네요.


오전 11시 24분

박한진 대표님이 로켓스페이스에 오시기로 한 시각이라 저는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사거리의 4개 신호등이 한꺼번에 켜지는 그 순간.


웰스파고 박물관을 나온 뒤 마주친
웰스 파고 은행이 사뭇 달라보입니다.
정말 대단한 은행이로군요.

미국 시민들의 돈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역사, 게다가 그 문화까지도 함께 저축해온 은행.


웰스 파고 앤드 컴퍼니(Wells Fargo & CompanyNYSEWFC)
1. 웰스 파고는 자산 기준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은행이다. 
2. 시가총액으로는 최대 기업이다.[1] 
3. 웰스 파고의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해 있다.
4. 2007년에 웰스 파고는 S&P가 AAA 등급을 매긴 미국 내 유일한 은행이었으나[4] 2007~2011년 금융 위기에 들어서면서 AA-로 하향되었다[5] 
5. 웰스 파고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시티그룹JP모간 체이스와 더불어 미국의 4대 은행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ISUP/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어도비 (Adobe) 샌프란시스코 지사를 방문하다


Adobe
어도비



어도비 시스템즈(Adobe Systems)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본사를 둔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2013년 5월 6일, 포토샵 등이 포함된 패키지 소프트웨어인 크리에이티브 제품군(CS)의 개발 및 판매를 중단하고,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쿠시가 어도비 건물이 Townsend & 7th St.에 있다고 말하기 전에도
저는 어도비 건물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진가 건물을 방문할 때 버스 창문 너머로 
어도비 건물을 보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으로, 
구글맵을 사용하지 않고 목적지로 걸어갔습니다. 


로비에서 제가 쿠시를 만나러 왔다고 알려주고
쿠시의 연락처를 보여주자
직원이 쿠시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로비에 있던 영상들



Adobe (i/əˈdoʊbi/UK /əˈdoʊb/,[1] Spanish pronunciation: [aˈðoβe]; Arabic: الطوب) is the Spanish word for mud brick, usually shaped into bricks using molds and dried in the sun. Adobe buildings are similar to cob and rammed earth buildings, but cob and rammed earth are directly made into walls rather than bricks. 

어도비는 원래 스페인어로 진흙으로 된 벽돌이래요.
하지만 위키피디아를 보니,


"어도비"(Adobe)라는 회사 이름은 회사 창립자 존 워녹의 집 뒤에 있는 
어도비 크릭(Adobe Creek)에서 따온 것이다.



이윽고 쿠시가 와서 제 이름표를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제 이름을 

아바

라고...
원래 에바인데...
신선하네요.

아도비

라고 읽어버릴까보다


쿠시의 사무실로 들어와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이제껏 본 개인사무실 중 가장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기 때문이죠.

잔잔한 음악이 흘렀습니다. 


쿠시는 여인을 소재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어요.



해파리도.


쿠시가 그 동안 했던 영상작업들을 보면서 저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ISUP/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Zynga(징가) 서준용 님 인터뷰 뒷이야기 feat. 샌프란시스코, 내가 걷는 길


Zynga
징가





서준용 님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사실 인터뷰 후에 서준용 님의 유학 얘기를 들을 때 였다. 준용 님이 유학을 오시기 까지 큰 영향을 미친 세 분이 있었다고 한다. 선배, 친구 그리고 한 후배. 2010년 말부터 현재까지 미국 유학에 있어서 모든 길을 닦아준 분이라고. 공대 하면 제일 이름 높은 곳이 스탠포드, MIT, 버클리 그리고 카네기 멜론이다. 준용님이 여기랑 더 낮은 곳들의 어드미션을 받으셨는데 고민하셧다고 한다. 프로페셔널 (수업만 듣고 1년만에 졸업)과 아카데미 (논문 쓰는 것) 중에 후자가 더 좋았던 것이다. 결국 둘 다 박사 과정까지 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가신 한 분의 전화를 받고 나서 준용님은 그렇게 결정을 하셨다고 한다. 

정말 대단했다. 서강대 졸업한 선배들이 이렇게 줄줄이 계속해서 후배들이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비즈니스 쪽으로 하시는 분들은 또 런던 대학교나 아니면 스페인 비즈니스스쿨로 가셨다고 한다. 



징가 사무실은 정말 멋있었다. 또 어찌나 큰 지 6층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시멘트 계단 쪽은 좀 게임 던전같은 느낌이 들어서 예전에 지수오빠가 하던 1인칭 총게임의 한 장면들이 생각났다. 총을 장전하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요괴나 좀비를 쓰러뜨릴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던전 말이다. 







징가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오는 길이 또 압권이었다. 코스코가 있는 10th St.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대략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거리로는 2.5마일 정도 걸은 것 같다. 킬로미터로 하면 4km 정도 걸은 것이다. 오오 정말 내 자신이 대견하다. 가면서 얼마나 많은, 멋진 것들을 보았나! 게다가 해질녘이라서 그 아름다움이 더했다. 


10th St.의 이름모를 아름다운 성당. 


Market St.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Bay Bridge 쪽으로 보이는 해질녘 풍경에 경의를 표하며
빨간 불로 바뀌기 전 재빨리 찍었건만 결국 흔들리고 말았다. 
왼편에 보이는 하얀 글씨는 사실 스타벅스이다.


시청사 앞에서는 사진을 너무나 많이 찍었는데 그만큼 너무 아름다웠다. 



그 다음 Ellis 거리로 향하는 길에 곡선을 그리는 건물을 보았는데 그 곡선이 또 정말 유연했다. 하늘을 바라보자 간간히 보이는 단풍이 또 정말 아름다웠다. Ellis를 걸었는데 한 블록 더 가기에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Ellis에는 호스텔과 저가호텔들이 참 많았다. 길현이가 저번에 머무르던 곳이 이중 하나였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쭉 걷다가 드디어 존스 거리와 테일러 거리가 나왔다. 하지만 차마 그 길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위로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 다음은 메이슨. 힐튼 호텔이 나오고 그 다음은 포웰. 거리가 무척 환한 데다가 포웰은 전차가 다니는 거리니까 믿음직했다. 나는 파웰을 따라 걸어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광장이 나오는데… 아… 파란 도시에 우뚝 솟은 그 천사상… 그 주변을 감싸는 건물들… 참 낭만적이었다. 파웰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고풍스러운 아파트가 많았다. 마치, 어거스트 러시에서 남자가 라일라를 찾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 집들 같았다. 경사진 거리에 자리한 집들이라서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깎아지르게 지은 건물들이 재미있었다. 파웰의 꼭대기에 오르고 나니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참 재미있는 지형이었다. 두 블록 떨어진 테일러는 가파른 M자인데, 파웰은 비교적 완만한 언덕이라니.. 파웰의 전차길이 메이슨으로 넘어가는 지점 이후에는 차이나타운이 또 나타났다. 내가 몰랐던 거리의 이면을 보자 이 도시의 낯선 얼굴을 마주한 것 같았다. 파웰에서 만나는 Pine, Bush, Jackson, Broadway.. 느낌이 묘했다. 내가 가는 길의 평행선에 있던 이 길. 저 너머에 내 생활터전이 있는데. 우리 동네에 살면서 너무나 옆길인 이 파웰을 2주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렇게 다 걸어보다니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결국 파웰은 콜럼버스 거리와 키스를 하면서 나를 성당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콜럼버스에 다시 선 나를 맞이한 것은 금발의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내가 지나가자 키가 2인치 정도 더 큰 형이 더 작은 동생을 거리 한 켠으로 비켜주게끔 했다. 

아아 낯설고도 친숙한 나의 동네여. 나는 샌프란시스코가 정말 좋다. 지도가 있다면 내가 걸어 본 길들에 한 번 형광펜을 칠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거리를 샅샅이 알고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똑같은 길을 피하려는 사람이다. 모험을 하려는 사람. 

오늘 선배들이 알려준 길을 걸은 준용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서 그 길을 걸은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말이다. 사실은 남들이 알려주는 대로 살기 싫은 게 아닐까. 남들이 알려주는 맛집에 가는 것보다 내가 가는 바로 그 집이 맛집인거고, 남이 어떻게 멋진 곳에 갔던, 내가 만난 사람과 있었던 아무 보잘 것 없는 방 한 켠이 나에게는 더 낭만적인 이야기가 피어난 동화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맛집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 맛 보다는 못 할 거라 생각이 든다. 같이 있는 사람과 즐거워야 음식도 더 맛있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 리니가 나에게 사준 그 저녁식사가 더 없이 맛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