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9일 일요일

[ISUP/이스라엘 그녀의 생존기] 하이파에 사는 하얀 그녀의 집

하얀 그녀의 집
Miss.Ha in Haifa


채원: 지연씨 방에 들어와있어요 ㅎ
덕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지연: 도착하셨어요? :)
책상 근처에 블라인드 스위치. 
올리시면 발코니에서 하이파 야경을 보실 수 있어요 :)


블라인드가 기계음을 내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뜻밖의 널찍한 발코니가 나왔고, 발코니 밖으로 나와섰을 때...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야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지연씨의 마음이 참 예뻤다. 작은 것이지만 나에게는 낭만적인 이벤트였다.



이어지는 지연씨의 카톡.

먹을 건 많이 없지만 전자렌지 바로 밑에 있는 찬장이 제꺼에요 ㅎ 안에 신라면 우동 불닭볶음면 소스 등등 있어요 :)

밥은 식탁에 분홍색 밥솥이 제껀데 그릇 말리는 곳에 밥통이 있어요. 찬장에 쌀 있는데 거기 보면 작은 계량컵 같은 게 있어요. 

그걸 두 컵 반 밥통에 넣고 물은 250ml 숫자 중간쯤까지 넣고 밥하시면 되여. 

냉장고 왼쪽 맨밑에 김치 보이는 칸이 제꺼에요. 

김치 있고 그 밑에 보면 콩잎도 있고 오징어젓갈도 있어요.

무말랭이랑 장아찌(플라스틱 포장) 있을텐데 찬장에 플라스틱 타파웨어에 담아서 드시면 돼요.

냉장고 옆칸에 보면 계란 상자에 있는 계란 드시면 되고

우와 지연씨 친절한 요정같아요! 고맙습니다 ㅜ

냉동실은 중간 칸 중간부터 오른쪽으로 다 제꺼라서 아무거나 드시면 되요 ㅎ 김이랑 소세지랑 또 냉동피자랑 감자튀김 등등 있는데 드시면 돼요. 

야채는 아마 당근 감자 양파 토마토 오이 등등 있을거에요.

찬장에 보면 참치도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꺼내드세요 ㅎㅎ 문제는 찬장이 좀 엉망이라는게 (겁에 질린 표정 두 개)

정보가 너무 많죠? ㅠㅠㅋ 아 냉동실에 마늘이랑 다진 소고기도 있어요. ㅎㅎ

떡국떡도 있을 거에요 ㅎ

파스타 면은 찬장에 있어요.ㅎ

커피랑 설탕 녹차 차 등등은 찬장에 있어요.ㅎ

우와 그걸 다 알려주시는 게 대단해요!ㅜ 지연씨는 언제오세요? 

뭔가 더 먹을 게 많이 있음 좋겠는데 아침에 너무 정신없이 떠나는 바람에 ㅠㅠ
전 일요일 아침에 도착해요 ㅎ


내가 상단에 지연씨가 말해주는 것을 다 나열하는 이유는 내가 지연씨가 말해준 것의 대부분을 진짜 다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연씨가 대단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에게 내가 없는 동안 내 방을 내어준다고 생각할 때 나는 지연씨처럼 친절하게 다 설명줄 수 있었을까. 일단 나는 그걸 다 전화로 말해줬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지연씨가 더 대단하다.) 또 내 방을 내어줄 때 내 방의 정리상태나, 집의 먹을 거나, 참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이것은 호텔보다도 어떤 호스텔보다도,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카우치서핑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사람에게 집보다 편한 곳이 있을까. 
하물며 그 집을 내어주는 것이랴

학창시절, 나는 모두에게 잘 하고 싶었다. 그 사람에 대한 모든 내 경험, 좋은 생각, 느낌들을 그 사람의 생일이 되면 모두 한 선물이나 편지에 담아 그 사람에게 전하곤 했다. 스무살이 되어 정작 내 생일이 되었을 때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부터 였다. '내 사람'만 챙기게 된 것이. 그리고 점차점차 친절을 베푸는 데 인색해졌던 것 같다. 
지연씨는 그것을 뒤집어 주었다. 단지 아는 사람이었던 내게 :)



책상에 있는 초콜렛이랑 귤이랑 사탕 등등 다 드시면 돼요.

그리고 정말로 나는 다 먹었다. 한 봉지 안에 묵직하게 들어있던 귤도, 상자 안에 있던 Matchmaker 였던가? 그 민트초콜릿도, 물도...

내가 섭취한 달달함, 그 빈 자리에 편지와 짜파게티를 올려놓았다.



Serendipity 위키피디아 - 영어
Serendipity means a "happy accident" or "pleasant surprise"; a fortunate mistake. Specifically, the accident of finding something good or useful while not specifically searching for it. 

Serendipity 뜻밖의 재미라.. 멋진 말이다. 계속해서 내가 사랑하는 일에서 재미, 설렘을 유지한다는 것.
그것이 지연씨에게는 스타트업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지연씨는 스타트업도 하고 있다. Dev4Dev Cleanweb Hackathon에서 2등을 할 정도로 제대로인! - 윗윗사진을 보면 그 상장이 빼꼼히 보인다 ;)


밤에 추울 수 있는데 침대에 전기장판 깔아놨거든요 ㅎ 그거 켜고 자면 돼요 ㅎㅎ

아아 어찌나 고맙던지. 내 기숙사에는 전기장판이 없어서 밤에 추워서 잠을 설치곤 하는데 이 침대 위가 어찌나 포근하고 천국 같았는지 모른다. 서양에서는 온풍기를 틀거나 벽난로에 불을 떼는 식으로(사실 한 번도 못 봤다.) 공기를 따뜻하게 만드는데 뭐니뭐니해도 한국의 온돌처럼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게 최고. 잠도 금방 오니까 :)



내가 지연씨에게 제일 감사한 것은 바로 이 책.
한글로 쓰여진 종이책이 너무나 그리웠던 나는 지연씨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아 어찌나 좋던지.. 금요일 밤도, 토요일도 나는 하이파의 그 어떤 아름다운 것보다 이 책 속에 든 지식보다 탐스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밤 지연씨에게 보낸 카톡.

지연씨 야경을 보고서 정말 탄성을 질렀어요. 그렇게 예쁠 수가. 그 다음 밥을 해서 한 술 먹는데 그렇게 밥이 달 수가 없네요. 거기다 반찬까지 먹으니 정말 한국에 온 것 같았어요. 전기장판 위에서 책을 읽으며 귤을 까먹는데 참 행복합니다. 지연씨도 그 곳에서 편안한 밤 보내세요. (잠자는 달)

반찬도 몇 가지 없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워요 :) 담에 제가 있을 때 오시면 같이 맛있는 거 해먹어요! 야경 이쁘죠? (부끄) 지금은 춥지만 봄되면 밤내음 맡으면서 야경을 보면 끝내준답니다. (엄지) 푹 쉬고 가세요 :)


식탁 위에 놓고 간, 
지연씨가 룸메들에게 쓴 편지.

이 편지 덕분에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나는 한 룸메의 환영을 받았다. 나는 늘 부족하게 했다가 일이 터지면 수습하는 성격인데, 참 세심한 그녀. 정말 배울 게 많다. 


얼마 뒤 :)
우와.. 이 포스팅을 보고 내가 다 감동했다 ㅜ 지연씨는 제대로 산타였다. 내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가장 좋은 선물 - 그녀의 집을 안겨주었으니까. 
정말로 내 마음과 몸의 양식이 되었다. 

지연씨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조만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