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인문고전강의>
나는 세계러너 혹은 세개러너니까
오늘 알게 된 것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하나, 다윈의 <종의 기원>의 핵심은 '더 뛰어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 중에서 우연히' 환경에 적합했던 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책에서 강유원 님이 제시한 사례에서 무서운 나비효과를 보았다. <종의 기원>에 대해 '더 뛰어난 자가 살아남는다'고 잘못 내린 결론은 홉스의 '전쟁상태로서의 자연상태'와 맞물려 각자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사회진화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진화론이 강조하는 '경쟁을 통한 진화'는 이후 많은 폐해를 낳았다. 우리나라 근대의 윤치호와 같은 지식인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은 '센 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찍이 서구화한 일본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의 핵심은 '더 뛰어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 중에서 우연히' 환경에 적합했던 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스티븐 J. 굴드라는 학자의 <풀하우스>라는 책의 표지에 있는 말을 빌리면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둘, 그 시대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 당시의 정치, 경제, 기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그 시대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에게 적용하자면, 나는 내가 왜 스타트업 기자가 된 것인지 궁금했다. 나의 인문학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내가 다루는 IT분야에 연결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기술의 발달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결과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떤 큰 흐름들을 만들어내는지 볼 수 있었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인쇄술의 발달로서 책이 출판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지식이 깨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시민혁명을 일으키는 토대가 되었다. 책의 사례를 따면 로크의 <통치론>의 사상 - 즉, 인민은 계약을 위반한 통치자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상이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 특히 토머스 제퍼슨에게 영향을 미친 것을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셋, 강유원 님의 글쓰기에 감명을 받았다. 강유원 저자님의 문체가 정말 마음에 든다. 당대의 역사, 원문 언어에 대한 이해,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생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강유원 님은 자유자재로 이 어려운 고전들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우리가 그의 책을 낭독하면서 킥킥대며 웃을 정도이니까. 진정한 그 분야의 전문가는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려운 개념도 아주 쉽게 남에게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글 쓰는 게 두려운 기자이다. (세상에 이런 무서운!) 친구말을 빌리면 나는 한국말을 포함해 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도 없으면서 또 새로운 언어(중국어)를 배운다. 내 25년 인생 중에서 외국체류기간은 3년 8개월 정도 밖에 안 되면서 한국말을 못한다니 정말 우스운 노릇이다. 그런 내가 내년에는 중국에서 한국스타트업과의 한국말 인터뷰를 영어기사로 쓰는 일을 한다. 이 막중한 임무를 지고 다른 기자님들의 논리적인 흐름에 적절한 어휘로 쓰인 기사들을 읽으면서 긴장할 때가 많다.
그렇게 내 실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 - 언어, 인문학, 역사, 영화, 예술 분야를 놓지 못한다. IT기술에 대한 지식적 배경이나 전문기자로서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무한 내가 어떻게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인터뷰하고, 그 기사를 쓰고 있는지 스스로도 정말 알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적도 많다.
하지만, 나 역시 후대에서 보면 2014년 당대의 기술, 정치, 경제의 흐름을 타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리2014년 현재의 창조경제 정책으로 인해 태동하기 시작한 스타트업의 흐름을 타고, 새로운 생각이 사람들에게 자리잡을 것이고, 그것이 가까운 미래의 역사를 뒤바꾸어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티브 잡스만 해도, 그가 만든 아이폰을 시작으로 한 스마트폰의 발달이 얼마나 많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낳았나. 현재에는 매우 혁신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술이나 지식도 후대에 가서는 고전이 될 수 있다. 책의 표지처럼 IT기업의 혁신이 '오래된 지식'이 되고, '새로운 지혜'로 후손들을 일깨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성론자보다는 경험론자에 더 가깝고, 정량적이기보다는 정성적인 사람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서비스 하나를 샅샅이 파헤치기 보다 이 서비스를 만든 사람을 직접 만나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위해 굳이 내 발로 방문인터뷰를 다닌다. 나의 그 무미건조함에도 꿋꿋이 1년 6개월 넘게 연재하는 인터뷰 동영상을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면 공감하겠지만 내 인터뷰기는 간혹 정말 산으로 간다. '창업하신 스타트업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로 시작해서 '당신 인생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로 끝맺는 인터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 중에 '이 기자는 대체 이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거야, 이 창업가에 더 관심이 있는거야'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스타트업 기자'라기보다는 '창업가 어록 수집가'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잇지 못하던 점들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이 왜 이 스타트업을 창업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스타트업을 해나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 그 스타트업의 껍데기만 알고, 알맹이는 모르는 것이 되어버린다. 기술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기술과 회사에 담긴 사람의 생각을 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시드단계에 투자하는 VC들에 물었을 때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서비스가 검증이 안 된 스타트업에 어떻게 투자하느냐고요? 바로 그 팀을 봅니다. 또 '왜 스타트업을 하느냐'고 물어요."
박근혜 정권(정치)의 창조(경제), 그 안에서 태동하는 수많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그 (기술), 그 생태계 안에서 수많은 창업가들이 오늘도 머리를 굴리고 있다. 종의 기원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 혹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메시지를 남겨준다. 뛰어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종 중에 우연히 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그렇다. 당신의 스타트업이 소위 센 놈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도 좋다. 남들과 동일한 metoo 서비스를 내놓지 않는 것이 그 좋은 시작이다. 다양성의, 미지의 배에 올라타라. 운이 좋으면 '우연히' 그 배가 망망대해를 방황하다가 해외로 나갈 수도 있으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Eve가 Eva에게 영감을 주다니. 고맙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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