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4일 일요일

[에바노트] 조관희 - 이야기 중국사 후기



이야기 중국사 후기

조관희, 이야기 중국사: 중국의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읽는다, 경기 파주시: 청아출판사, 2004 





이 책을 읽고나서 알 것 같았다. 왜 장위안이 비정상회담 내에서 타쿠야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친구들에게까지 예민하게 굴었는지, 
중국의 근현대사에 들어오면서 느낀 것은, 1842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영국과 불평등조약인 남경조약을 맺으면서부터 일본이 세계2차대전에서 항복하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가엷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정말 굴욕의 연속이었다. 
최근 부상하기 시작한 중국은 정말 젊게 느껴졌다. 복수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거척이 와신상담을 하며 그 역사를 잊지 않으며 실력을 다시며 준비해나간 것처럼, 중국도 지금 그 동안 갈고 있던 칼을 드러낸 것 같다. 

또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면서 왜 자유주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아,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 알았다. 상하이에서 처음 13명으로 시작된 공산당 모임.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무척 힘든 과정을 거쳤는데, 그 많은 중국 인민들의 동의를 구하려면 알맞는 명분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공산당은 모택동의 신민주주의론을 바탕으로 해방구를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는 신중국의 모델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후 공산당이 장악한 해방구에서는 토지개혁이 이루어져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가질 수 있었고 부패한 관리들에게 착취당하는 일이 없었다. (472 ~ 473p) 중국의 국민당은 바로 그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대만 쪽으로 철수해야 했다. 

중국은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중화사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 필사적으로 개혁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중국이 필사적으로 발전하려고 하는 모습이 여기 보였다. 

오히려 중국은 ‘중국 것을 잘 지키면서, 배울 것은 배운다’라는 면을 더 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시진핑의 말 중에서 ‘중국의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서구의 제도와 양식을 모방하고 옮겨 온다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는 격이 돼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들 수 있다. (기사 인용 : 이는 서구식 민주나 다당제 도입 등에 대해선 절대 불가의 입장임을 알 수 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373091&cloc=olink%7Carticle%7Cdefault

중국의 발전. 

첫 부분에서 중국 신화가 나오는데, 중학교 2,3학년 때 매우 인상깊게 읽었던 동양고전신화 책의 이야기와 겹쳐졌다. 당시 동방신기를 좋아했던 나는 동양신화에 나오는 5인의 신을 각 멤버들에게 대입해보며 혼자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또 처음에 땅을 디디고 하늘을 떠받들고 있던 신이 죽고나서, 그의 몸이 세상의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이루게 된다는 내용을 그 때 무척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이 대목을 다시 만나게 되어 좋았다. 구체적으로, 그의 입김이 바람이 되었고, 그의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었다. 그의 살은 대륙이 되었고, 피는 강물이 되었으며, 그의 솜털은 잔디가 되고, 혈관은 길이 되었다. 그의 뼈는 바위가 되었다. 이는 유기적으로 전대와 후대가 연결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와 대비된다. 그 첫부분을 보면 처음 권력을 쥐었던 우라노스를, 그 아들인 크로노스가 그 남근을 잘라냄으로서 권력을 장악하고, 그 다음엔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타르타로스에 가둠으로서 기존의 권력이 이후의 세력에 의해 정복되는 양상이다.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몽고족의 활약이었다. 일개민족에 지나지 않았던 몽고족이 칭기즈칸의 활약을 선두로 중국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세운 것이 원나라라고. 이 때 세력을 러시아, 동유럽까지 확장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헝가리어가 우리나라와 같은 알타이어가 된 것은 이 때 몽고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한 왕조가 유지됨에 있어 그 사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한나라는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잘 유지되었으나, 진시황때의 분서갱유를 거치면서 당나라때는 의미파악에만 몰두하게 되고, 그 이후에야 성리학이나 양명학으로 발전하고, 그 뒤에 고증학으로서 실사구시를 도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명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흥미롭게도, 중국사람들이 좀 더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유교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때 공자의 제사나 조상숭배 등도 인정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을 로마 교황청에서 금지했고, 이후 청 때에는 기독교 자체를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뒤 중국에서 기독교 활동의 자유가 인정된 것은 제 2차 아편전쟁에서 청이 영국과 프랑스에 패한 이후 베이징조약을 맺은 이후부터이다. 하지만 마테오 리치가 편찬한 천주실의는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433~ 435p)

홍콩의 배경도 정말 흥미로웠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국과 불평등하게 맺은 조약의 결과로 영국에 귀속된 것이라니. 그리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것이 1997년이 되어서라니. 

또 흥미로운 것은 왕조가 처음 세워질 때, 문왕 - 무왕이 꼭 등장하는데, 이 사람들의 특징도 이에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령 문왕이라고 이름이 붙은 왕은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무왕이라고 이름이 붙은 왕은 대내외적으로 무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선왕이 아꼈던 신하들이 대체로 즉위한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간언하는 신하들이라면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충신의 경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직언하는 신하들은 주변에 두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유씨 가문의 조상님들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었다. 유방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등장하는 우리 가문의 유씨를 볼 때마다 나는 집중력이 높아졌다. 우리 조상님들은 어떤 특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자랑스러웠던 것은 서민 출신인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마침내 황제에 오르는 대목이었다. 이 때 유방이 한 말이 인상깊었다. 자신이 위대해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현명한 세 명의 신하를 곁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나라의 마르코 폴로의 대목과 유사한데, 당시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도착해 일단 아주 빨리 몽고어를 배웠다. 원 세조는 조정의 사자를 각지에 보내어 풍속과 세태를 관찰하고 파악하게 하였는데 마르코는 파견된 사자가 원 세조에게 전달하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파견되는 곳마다 그곳의 풍속과 세태를 잘 고찰한 내용을 그에게 보고 했다. (398p) 그렇게 17년을 원나라에서 살다가 베니스로 귀국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친 놈 취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쓴 <동방견문록>을 바탕으로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이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국서를 휴대하고 동방 행해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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