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쉰들러 리스트] 이스라엘 친구가 말해준 유대인의 고난 그리고 쉰들러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리암 니슨, 벤 킹슬리, 랄프 파인즈, 캐롤라인 구돌, 조나단 사갈, 엠베스 데이비츠
개봉
1993 미국
평점





1. 감동

영화를 새벽 2시가 넘어 다 보고서
엄마 알람에 6시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꾼 꿈이 무슨 꿈이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나는 
<쉰들러 리스트>의
흑백 장면들을 다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 잘까 하다가도 
일어나기로 한 것은
이미 다시 자는 것이 오히려 일이라고 생각될 만큼
정신이 맑았고,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서 일부러 다른 일을 하다가
스크린을 마주하는데
책을 펼치고 나서도 <쉰들러 리스트> 
생각 밖에 없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유대인이다. 
그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게 된 것은
그에게 사명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2. 쉰들러
나는 생각했다.
쉰들러는 천사같은 사람이라고.
쉰들러는 1100명의 유대인을 살렸고,
이들은 6천 명이 넘는 자손들을 남겼다.

이스라엘에서 살 때, 
가장 힘들었던 때가 모셰 샤렛에 살 때였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팔고 싶었으나
집이 50일 동안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 브릿이라는 룸메이트랑 살았는데
우리는 같이 살면서 해야 하는 실용적 대화 외에 
그렇게 대화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친구였다.

언젠가 브릿이 내 방으로 왔다.
역시나 실용적인 얘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화제를 꺼내다가 그리 됐을까?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다.

브릿: 너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 봤니?
에바: 아니..
브릿: 오마이갓. 너 진짜 그거 꼭 봐야해.

브릿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때 나치의 항복으로
풀려난 사람들 중 일부였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가
이 두 사람을 이 땅에서 속히 나가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에 왔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모두 수용소에서 돌아가셨고, 
두 사람은 열심히 살았다.
불모지인 나라를 처음부터 일구어 나갔다.

브릿은 할머니의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서 나에게 전해주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긍지가 느껴졌다.

쉰들러...
나는 현재도 쉰들러의 자손이 갖고 있을,
유대인들이 금이빨을 모아 만든
그 반지를 생각했다. 

그 시기에 쉰들러가 한 일은 정말..
너무나도 옳은 일이었다.  

브릿만큼이나 친한 유대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왜, 밤이 되었을 때 
그 친구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하지 않았던 걸까.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로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가 있었으니까.

3. 유대인
유대인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각별하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7개월을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대인들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자기 PR을 사람 혼을 빼놓도록 잘하는 모습, 돈에 한에 정말 쪼잔한 모습, 
무한하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
그러나 그들을 가엷다고 여기거나, 
그들이 애환에 젖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을
영화 <피아니스트>를 통해서 
13살 겨울에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처량하게 그들이 당해야 했던 수모의 잔상들은 그 나이의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로 다시 그 시기의 유대인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새로웠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너무나 꼬장꼬장하다고 느낀 
정통유대교도들이 처음에 비쳐졌고, 
나는 그들이 처음 크라쿠프에 오게 되어 독일군이 그들의 옆머리를 자르며 놀림감이 되고,
독일군 앞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댈 때,
이 상반된 상황에 놀랐다.

이스라엘에 가서 만나는 정통유대교도들은 정말 너무나도 엄격한 인상이다.
율법을 철썩같이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만이 사는 마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그 꼿꼿한 중절모와 체통을 버리고,
다윗의 별이 그려진 토시를 달며 
독일병사의 말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했다니..
이 장면은 처음 유대인 거주지역에 도착한 여자가 방에 들어와서 크게 탄식하고,
그 옆의 남편이 망연자실한 채로 서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4. 빨간 코트의 소녀
이 영화는 칼라영화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음에도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오히려 이 흑백영화라는 설정이 색채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만 몰입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 와중에 영화 중간 부분에서 색깔이 입혀지는 것은
오로지 빨간 코트의 소녀가 나올 때이다. 
쉰들러는 말 위에서 이 소녀를 바라본다. 
이 코트가 눈에 잘 띄는 붉은색이어서, 
그리고 작은 아이라는 점에서 
멀리서도 그녀를 주시하게 되었으리라.


소녀는 유대인들이 거주 지역에서 다 쫓겨나 노동하는 곳으로 이동할 때
혼자 건물의 침대 밑으로 도망가는 모습으로 나온다. 
소녀는 집단거주지역 내 다른 유대인과는 달리 비교적 좋은 옷을 입었고, 
머리칼도 치렁치렁하며 
이목구비도 사랑스럽다.
소녀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침대 밑에 숨는다.

이 소녀가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독일군이 유대인의 시체를 모두 다 태워버릴 때이다.
쉰들러는 보고야 만다.
소녀의 코트의 색깔은 빨갛게  빛나는 채로
얼굴과 하체는 흉칙할 만큼 일그러져 타 버렸다. 
그리고 시체가 쌓인 그 수레는 시야에서 종종 멀어져간다.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 때는 바로 이 때였던 것 같다.
쉰들러는 이 모든 것을
남의 일이라 생각지 않았다. 

5. 쉰들러의 태도 변화
쉰들러의 태도는 변한다.
처음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팔 하나 없는 노인에 대해 
슈테판에게 그가 정말 쓸모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당시 독일에서는 우생학이라 하여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이 그런 유전자를 퍼뜨리기 때문에 더 우월하며
장애인들은 그 반대이므로 열등하다는 선전을 퍼뜨릴 때였다.
그 당시 선전내용을 담은 포스터도 있다.
이 내용은 마이클 샌댈의 <생명의 윤리학에 대하여>에 잘 나와있다.
오늘날까지도 동남아 몇 국가에서도
우생학이 이용되어 못 배운 여자들은 자손을 못 낳도록 불임수술을 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고
여대생들에게는 아이를 더 많이 가지도록 장려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에서 독일병사가 유대인 집에 들이닥쳐
모두 다 일어서! 라고 했을 때
휠체어에 앉아 일어설 수 없었던 남자를 휠체어까지 그대로 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던져버린 장면이 상징적이다.  

그 다음 노동지로 옮겨져 
한 여자가 쉰들러를 찾아와 부모님을 명부에 넣어달라고 하자
자신은 쓸모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고심하던 그는
슈테판에게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명부에 적으라고 말한다.
그도 인간인지라, 머리 속에 자꾸 떠오르는 그 이름들을
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쉰들러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을 적으려고 한다. 
더, 더,
슈테판에게 말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왜 더 많은 사람들을
적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한다.
그런 그를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껴안는다.

이 차를 팔았다면 10명을 더 살렸을텐데
이 핀을 팔았다면 2명을 더 살렸을텐데

6. 헬렌 히르쉬
그들은 말한다. 
몇 유대인 여자들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고. 
몇 독일 병사들도 그 병에 걸렸다고 말이다.

헬렌은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나는 아몬이 헬렌을 탐할 때의 대사가 기억난다.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쥐라고 말이다. 

그녀에게 입맞추려던 그는 
헬렌의 뺨을 세게 때린다. 

반면 쉰들러는 그녀에게 와인을 내민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아닌' 키스를 이마에 해준다.

마지막 한 줄 비운 명부에는 헬렌의 이름이 들어간다. 
엄청난 돈을 걸고 그녀 이름을 적고야 만 것이다.  


7. 여자

그녀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해
머리카락을 깎이고 
샤워실 안에 들여보내졌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다 소름이 돋고 몸이 웅크려졌다. 

이 때 쏟아진 것은 가스가 아닌 물이었다. 

엄마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던 것을 회상하셨다.
그 장면에서 관람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고.

그 장면과 그 감동을 함께 영화를 보던 관람객들과 함께하던 그 때를 엄마는
생생하게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이 영화가 유행이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 영화가 나온 시기를 가늠해보며 잠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일까, 후일까.

정답은 후였다. 1993년 이니까. (나는 1990년 생이다.)

머리가 깎인 여자들이 다시 기차를 타고 쉰들러의 고향으로 가게 되었을 때
꼬마들을 붙잡아 가려는 독일 병사들에게
쉰들러는 이 아이들이 노동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그 작은 손을 독일병사 앞에 들이밀며 말한다..


8.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곧,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입해볼 때 

우리 역시 파티장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인을 마시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춤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의 감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현재 외면하고 있는 시대의 어두운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쉰들러는 사업가였다. 
그 위치에서 자신의 재산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을 했다. 

유대인들이 돈을 악착같이 모은 뒤에
불쌍한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록펠러가 그랬다. 

내가 쉰들러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화려한 아름다운 파티장을 바라볼 수도 있고,
바라보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이 세상에서 하고 가고 싶다. 

쉰들러를 존경한다. 
오히려 그가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들이 있었기에 
더 공감이 갔고 
그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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