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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 온지 한 달. 유럽 배경의 중국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네 가지 (중국의 문화대혁명,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중국의 멜로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세 가지

有一个地方只有我们知道

이제 중국에 온지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어요. 
저는 1월 10일 토요일 오후 4시에 베이징에 도착했고, 
2월 10일 화요일 오후 4시에는 상하이 사무실에서 
한창 비트윈 기사 작업을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었지요.


상하이 사무실.
햇빛이 쏘는 저 자리에서 일합니다. 



"잠자기 밥먹기 움직이기 등, 생활에 규칙적 리듬이 있어야
몸과 맘의 감기가 안 걸린다." 

감기가 걸린 것은 맞습니다만
생활에 규칙적인 리듬은 나름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규칙적인 리듬을 깨는 일이 있었어요. 
퇴근하고 문화센터에 갔는데, 오늘 수업이 없다고 하는 거에요. 
제가 지난 번 중국어를 잘 못 알아들은 탓이지요, 뭐. 

그 길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지난 주에 봐두었던 영화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때는 6:10 p.m.

에바: 저기, 제가 제일 금방 볼 수 있는 영화가 뭐에요? 
종업원: 이거에요. 嘲笑鸟.
에바: 음.. 중국영화인가요? 포스터 좀 보고 싶은데.
종업원: 포스터 없어요. 미국영화에요. 
에바: 네... 이걸로 주세요.

저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일단 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이 영화 관람.

아.. 내가 중국 멜로 영화를 골랐었네. 하면서요.

집에 와서 표에 적힌 제목을 찾아보니...
嘲笑鸟는 Mockingjay


어라.. 내가 본 영화는 이게 아닌데..

제가 본 영화는



이 멜로영화 였거든요. 
아... 내가 상영관을 잘못 들어갔구나...
그제야 알았습니다.
어쩐지.. 영화가 90분만에 끝나더라구요..ㅋㅋ

그래도 이 중국 영화를 본 게 원래 봤어야 했을 미국 액션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이번 달 계획 중 하나였던 '중국 영화 보기'도 달성했으니까요. 

중국 멜로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세 가지

하나, 영어, 중국어 자막을 둘 다 깔아주는구나. 

지난 번 <호빗>은 영어니까 당연히 중국어 자막이 들어갔는데, 오늘 중국 영화는 배경이 프라하인만큼 영어, 중국어가 다 나오는 영화였고, 영어, 중국어 자막을 다 깔아주더라고요. 
덕분에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영화가 수많은 중국어 학습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서로 추천할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둘, 멜로 영화에도 중국인 특유의 웃음 코드가 들어가는구나. 

중국인의 호탕한 성격 때문에 멜로 영화에서 나름의 슬프거나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가도 대사에 웃음코드를 넣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들과 대화에서
"아빠는 더이상 엄마한테 돌아오지 않으실거에요."
"뭐?"
"그러니 엄마도 남자친구를 사귀세요!"

라던가

의도인지 아닌지 모를, 연인을 붙잡기 위해 뛰어가는 남자의 바지가
반바지라던가. 

또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NG장면들을 모아서 보여주는데, 방청객 웃음을 효과로 넣더라구요. 그 방청객 웃음이 이 영화 전체의 옥에 티라고 생각될 만큼 매우 낯설었습니다. 


셋, 중국 그리고 체코 공산주의의 과거와 지금.

영화 내용과 공산주의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중국공산당, 그리고 작년 프라하에 갔을 때 방문했던 프라하의 공산주의 박물관이 묘하게 겹쳐지더라고요. 1989년은 중국과 체코 두 국가에게 매우 중요한 해였는데요, 중국의 민주화 운동의 대표로 꼽히는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났고요. (정확히 1년 후 제가 태어납니다.) 체코의 경우는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붕괴하였고,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거든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제가 프라하 공산주의 박물관 포스팅을 해놓은 게 있었네요. 
2014년 2월 22일 작성한 것입니다. 

[에바노트 / 유럽 거닐기 ] 체코 프라하 - 체코의 암흑기를 보여주는 공산주의 박물관


포스팅 중에서.

'벨벳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벨벳혁명 [Velvet Revolution]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벨벳혁명에서 정말 국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까.
내가 이 박물관의 상영관에서 본 영상에서는
구타 장면과 폭력적으로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 가득했는데.

영상에서 한 밴드가 노래를 부른다.
영상으로는 체코 시민들이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피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프라하. 지금 내가 관광하는 이 도시가 25년 전에는 시민들의 데모와 자유화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가득했던 곳이라니.
노래는 놀랍게도, 그 가사를 모르고 들었더라면
편안한 곡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분노, 적개심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고마워요.
내 약함을 알려주어서. 힘을 길러야 함을 알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추함을 주어서.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쓴 맛을 보여줘서. 잠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어요.
..

라는 식의 가사로 이어지는 이 노래를,
가슴 아프게 들었다.
오히려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에
프라하 시민들이 갈구하는 자유화가 더 간절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넷, 중국의 유럽 사랑 그리고 안타까움

정말이지 요즘에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영화촬영지의 꽃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도영화 <Bang Bang>을 봤었는데요, 거기서 킬러인 주인공과 여주가 세계여행을 언급하면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서 프라하에 가거든요. (황당무게한 줄거리에 수억의 돈을 어떻게 쏟아부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인도의 매력적인 영상미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아예 전체 배경이 프라하였습니다. 심지어 영화 줄거리 배경에도 체코 - 중국의 국제 연애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950년대에 프라하의 의사와 만나 사랑에 빠진 란신. 60여년이 흐른 후 란신의 손녀인 진티엔이 프라하에 사는 중국인 남자와 만나 사랑하면서, 할머니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중국인 남주는 또 프라하 여자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 딸이 있거든요. 

중국인들의 최근 결혼사진 촬영 트렌드가 유럽의 유명한 건물들 앞에서 야외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주어허랑 CNN으로 뉴스를 보는데, 앵커가 '중국인들의 유럽 사랑'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도하더라고요. 중국인들이 추운 겨울날 턱시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던의 빅벤, 국회의사당 앞에서 로맨틱한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보는데 정말 중국인들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난 주 처음 알게된 독일친구 스테이시와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스테이시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년 역사로 중국이 쌓아두었던 그 모든 소중한 문화와 지식들을 모두 불태워버린 것을 안타깝게 말하더라고요. "역사를 알면, 후손들도 그 나라의 미래를 어떤 정신으로 이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영향 중 두 가지를 발췌해보았습니다.

전통 도덕의 붕괴[편집]

홍위병에 가담한 청소년이 자신의 부모나 스승을 반혁명세력이라고 고발하거나 또는 구타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문혁 지도부는 사람들이 문화적 전통들을 비판하고,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것은 "비림비공" 운동때 더욱 강조되었다.마오쩌둥의 사상은 전통 도덕과 관습을 제치고 중국에서 모든 것들을 이끄는 중심논리가 되었다. 홍위병의 권한은 군, 공안, 그리고 사법기관을 넘어섰다. 중국의 전통 예술과 사상은 무시되었고, 그 자리에 마오쩌둥 사상이 차지하게 되었다.

문화 유적과 전통 유산의 파괴[편집]

문혁 기간 동안 건물, 공예, 서적 등의 중국의 많은 역사적 유산들이 "구시대적 산물"로 간주되어 파괴되었다. 공예품들은 각 가정에서 탈취되거나 혹은 즉석에서 파괴되었다.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산출하기 어렵다. 서양의 목격자들은 중국 역사의 수천년의 문화유산들이 단 10년간의 문혁기간동안 파괴되었다고 추산한다. 또한 이런 파괴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행위였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역사가들은 문화 대혁명을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하기도 한다.


저역시 한국인의 정체성 위에 세계의 지식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후기 쓰려다 삼천포에 빠진 포스팅
지금은 11시 30분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p.s. 매월 10일은 월급날. 오늘 영화표 이외에 지른 것들. 




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에바노트] 프리다 후기

프리다



나는 이 영화에 5점을 준다. 이 영화는 일단 색채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가령 프리다가 사고를 당할 때 그녀에게 흩뿌려지는 금가루와 파랑새처럼 원색들의 강렬한 상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또 감독인 줄리 테이머가 프리다의 아픔을 눈살이 찌뿌려지는 심파전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 프리다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를 사고와 여성편력이 심한 남편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프리다가 좋다. 그녀의 솔직함이 좋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말한 대로 '떳떳한 불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말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내 몸을 직쏘퍼즐로 맞추는 것처럼요.' '마치, 버스에 치인 기분이야.' 양성애자였던 그녀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도 자주 외롭고 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

그녀가 떳떳한 불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자기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민영샘도 지목하신 것인데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리다는 아픈 몸으로도 항상 아름다운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다녔다. 옷차림은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할 때, 프리다는 옷차림으로서 아주 효과적으로 자기 자신의 매력을 드러냈다. 특히 결혼식에서 하얀 드레스 대신 붉은 드레스에 초록색 숄을 선택한 그녀. 한 분의 말대로 '모두가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드러내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 같다.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쉰들러 리스트] 이스라엘 친구가 말해준 유대인의 고난 그리고 쉰들러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리암 니슨, 벤 킹슬리, 랄프 파인즈, 캐롤라인 구돌, 조나단 사갈, 엠베스 데이비츠
개봉
1993 미국
평점





1. 감동

영화를 새벽 2시가 넘어 다 보고서
엄마 알람에 6시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꾼 꿈이 무슨 꿈이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나는 
<쉰들러 리스트>의
흑백 장면들을 다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 잘까 하다가도 
일어나기로 한 것은
이미 다시 자는 것이 오히려 일이라고 생각될 만큼
정신이 맑았고,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서 일부러 다른 일을 하다가
스크린을 마주하는데
책을 펼치고 나서도 <쉰들러 리스트> 
생각 밖에 없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유대인이다. 
그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게 된 것은
그에게 사명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2. 쉰들러
나는 생각했다.
쉰들러는 천사같은 사람이라고.
쉰들러는 1100명의 유대인을 살렸고,
이들은 6천 명이 넘는 자손들을 남겼다.

이스라엘에서 살 때, 
가장 힘들었던 때가 모셰 샤렛에 살 때였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팔고 싶었으나
집이 50일 동안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 브릿이라는 룸메이트랑 살았는데
우리는 같이 살면서 해야 하는 실용적 대화 외에 
그렇게 대화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친구였다.

언젠가 브릿이 내 방으로 왔다.
역시나 실용적인 얘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화제를 꺼내다가 그리 됐을까?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던 것 같다.

브릿: 너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 봤니?
에바: 아니..
브릿: 오마이갓. 너 진짜 그거 꼭 봐야해.

브릿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때 나치의 항복으로
풀려난 사람들 중 일부였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가
이 두 사람을 이 땅에서 속히 나가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에 왔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모두 수용소에서 돌아가셨고, 
두 사람은 열심히 살았다.
불모지인 나라를 처음부터 일구어 나갔다.

브릿은 할머니의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서 나에게 전해주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긍지가 느껴졌다.

쉰들러...
나는 현재도 쉰들러의 자손이 갖고 있을,
유대인들이 금이빨을 모아 만든
그 반지를 생각했다. 

그 시기에 쉰들러가 한 일은 정말..
너무나도 옳은 일이었다.  

브릿만큼이나 친한 유대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왜, 밤이 되었을 때 
그 친구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하지 않았던 걸까.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로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가 있었으니까.

3. 유대인
유대인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각별하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7개월을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대인들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자기 PR을 사람 혼을 빼놓도록 잘하는 모습, 돈에 한에 정말 쪼잔한 모습, 
무한하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
그러나 그들을 가엷다고 여기거나, 
그들이 애환에 젖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을
영화 <피아니스트>를 통해서 
13살 겨울에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처량하게 그들이 당해야 했던 수모의 잔상들은 그 나이의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로 다시 그 시기의 유대인들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새로웠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너무나 꼬장꼬장하다고 느낀 
정통유대교도들이 처음에 비쳐졌고, 
나는 그들이 처음 크라쿠프에 오게 되어 독일군이 그들의 옆머리를 자르며 놀림감이 되고,
독일군 앞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댈 때,
이 상반된 상황에 놀랐다.

이스라엘에 가서 만나는 정통유대교도들은 정말 너무나도 엄격한 인상이다.
율법을 철썩같이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만이 사는 마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그 꼿꼿한 중절모와 체통을 버리고,
다윗의 별이 그려진 토시를 달며 
독일병사의 말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했다니..
이 장면은 처음 유대인 거주지역에 도착한 여자가 방에 들어와서 크게 탄식하고,
그 옆의 남편이 망연자실한 채로 서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4. 빨간 코트의 소녀
이 영화는 칼라영화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음에도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오히려 이 흑백영화라는 설정이 색채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만 몰입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 와중에 영화 중간 부분에서 색깔이 입혀지는 것은
오로지 빨간 코트의 소녀가 나올 때이다. 
쉰들러는 말 위에서 이 소녀를 바라본다. 
이 코트가 눈에 잘 띄는 붉은색이어서, 
그리고 작은 아이라는 점에서 
멀리서도 그녀를 주시하게 되었으리라.


소녀는 유대인들이 거주 지역에서 다 쫓겨나 노동하는 곳으로 이동할 때
혼자 건물의 침대 밑으로 도망가는 모습으로 나온다. 
소녀는 집단거주지역 내 다른 유대인과는 달리 비교적 좋은 옷을 입었고, 
머리칼도 치렁치렁하며 
이목구비도 사랑스럽다.
소녀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침대 밑에 숨는다.

이 소녀가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독일군이 유대인의 시체를 모두 다 태워버릴 때이다.
쉰들러는 보고야 만다.
소녀의 코트의 색깔은 빨갛게  빛나는 채로
얼굴과 하체는 흉칙할 만큼 일그러져 타 버렸다. 
그리고 시체가 쌓인 그 수레는 시야에서 종종 멀어져간다.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 때는 바로 이 때였던 것 같다.
쉰들러는 이 모든 것을
남의 일이라 생각지 않았다. 

5. 쉰들러의 태도 변화
쉰들러의 태도는 변한다.
처음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팔 하나 없는 노인에 대해 
슈테판에게 그가 정말 쓸모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당시 독일에서는 우생학이라 하여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이 그런 유전자를 퍼뜨리기 때문에 더 우월하며
장애인들은 그 반대이므로 열등하다는 선전을 퍼뜨릴 때였다.
그 당시 선전내용을 담은 포스터도 있다.
이 내용은 마이클 샌댈의 <생명의 윤리학에 대하여>에 잘 나와있다.
오늘날까지도 동남아 몇 국가에서도
우생학이 이용되어 못 배운 여자들은 자손을 못 낳도록 불임수술을 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고
여대생들에게는 아이를 더 많이 가지도록 장려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에서 독일병사가 유대인 집에 들이닥쳐
모두 다 일어서! 라고 했을 때
휠체어에 앉아 일어설 수 없었던 남자를 휠체어까지 그대로 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던져버린 장면이 상징적이다.  

그 다음 노동지로 옮겨져 
한 여자가 쉰들러를 찾아와 부모님을 명부에 넣어달라고 하자
자신은 쓸모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고심하던 그는
슈테판에게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명부에 적으라고 말한다.
그도 인간인지라, 머리 속에 자꾸 떠오르는 그 이름들을
적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쉰들러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을 적으려고 한다. 
더, 더,
슈테판에게 말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왜 더 많은 사람들을
적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한다.
그런 그를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껴안는다.

이 차를 팔았다면 10명을 더 살렸을텐데
이 핀을 팔았다면 2명을 더 살렸을텐데

6. 헬렌 히르쉬
그들은 말한다. 
몇 유대인 여자들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고. 
몇 독일 병사들도 그 병에 걸렸다고 말이다.

헬렌은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나는 아몬이 헬렌을 탐할 때의 대사가 기억난다.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쥐라고 말이다. 

그녀에게 입맞추려던 그는 
헬렌의 뺨을 세게 때린다. 

반면 쉰들러는 그녀에게 와인을 내민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아닌' 키스를 이마에 해준다.

마지막 한 줄 비운 명부에는 헬렌의 이름이 들어간다. 
엄청난 돈을 걸고 그녀 이름을 적고야 만 것이다.  


7. 여자

그녀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해
머리카락을 깎이고 
샤워실 안에 들여보내졌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다 소름이 돋고 몸이 웅크려졌다. 

이 때 쏟아진 것은 가스가 아닌 물이었다. 

엄마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던 것을 회상하셨다.
그 장면에서 관람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고.

그 장면과 그 감동을 함께 영화를 보던 관람객들과 함께하던 그 때를 엄마는
생생하게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이 영화가 유행이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 영화가 나온 시기를 가늠해보며 잠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일까, 후일까.

정답은 후였다. 1993년 이니까. (나는 1990년 생이다.)

머리가 깎인 여자들이 다시 기차를 타고 쉰들러의 고향으로 가게 되었을 때
꼬마들을 붙잡아 가려는 독일 병사들에게
쉰들러는 이 아이들이 노동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그 작은 손을 독일병사 앞에 들이밀며 말한다..


8.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곧,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입해볼 때 

우리 역시 파티장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인을 마시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춤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의 감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현재 외면하고 있는 시대의 어두운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 

쉰들러는 사업가였다. 
그 위치에서 자신의 재산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을 했다. 

유대인들이 돈을 악착같이 모은 뒤에
불쌍한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록펠러가 그랬다. 

내가 쉰들러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화려한 아름다운 파티장을 바라볼 수도 있고,
바라보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이 세상에서 하고 가고 싶다. 

쉰들러를 존경한다. 
오히려 그가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들이 있었기에 
더 공감이 갔고 
그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2014년 4월 6일 일요일

[에바노트] <노예 12년> 영화 & 원작 책 비교, 생존하다 & 산다 비교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1.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251쪽.
이런 잔인무도한 행동이 노예 소유주들의 가정에 미치는 효과는 분명하다...어린 소년은 그 노인을 혼내면서, 어린 마음에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특정 횟수의 채찍질을 선언하고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채찍질을 가했다...그걸 보고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철두철미한 녀석이라고 칭찬했다.

아아 정말 이 대목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을지로 3가에서 내리면서 이 대목을 읽었는데 내가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이 대목을 생각하며 인상을 썼는데 지하철에 타던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정도였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인 것인지.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이 말이 맞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어린이가 성장하면 어른이 될 것이고, 자신이 자라온 환경의 영향으로 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또 자신의 아이를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대로 이 말을 받아들여보자. 가령 내가 우리 엄마의 엄마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더 생각을 해보아야 겠다.)





2. 배스

253쪽.


온갖 지역 문제에서 그가 인기 없는 측을 옹호한다는 건 당연히 여겨지는 듯했고, 그가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재치 있고 독특한 방식을 듣는 것이 사람들에게 불쾌함보다는 재미로 다가갔다. 

솔로몬의, 배스(브래드 피트 역)에 대한 묘사.
이 묘사를 통해서 나는 그 이전에 내가 배스에 대해 썼던 말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베스는 노예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극 중에서 상당히 이상적인 인물로 비쳐진다.
그 다음 만남에서 플랫이 사실대로 털어놓았을 때도
그는 그저 들어주는 사람일 뿐이었으며,
플랫의 손을 잡아주며 '내 꼭 그리하리다.'라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오히려 영화 속에서 더 자연스러웠다.

참고로 오늘 토론 때는 이 장면이 옥의 티라고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정말이지 
배스 역이 얼마나 축소되고, 그 연기가 절제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배스가 실로 플랫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한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스는 3명에게 편지를 쓰고, 이를 위해 플랫과 여러 날 밤 함께 만났다. 6주 후에는 다시 나타나 만약 봄까지 자신의 목숨이 붙어있다면 자신이 직접 샌드힐에 가겠다고 까지 말한다. 
정말 그의 목숨을 걸고 한 일이었다. 

솔로몬은 배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62쪽.
자기 삶은 자신에게는 별 가치가 없으며, 그렇기에 내가 자유를 찾도록 노력하고, 그리고 노예제라는 가증스러운 제도에 맞서 계속 싸워 나갈 거라고 했다. 

자기 삶이 가치가 없다니! 160년이 지난 이후에 내가 영화 <노예12년>을 보고 감동하고, 책 <노예 12년>을 보며 감동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배스의 도움으로 솔로몬이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기 때문 아닌가.
배스의 삶은 참으로 가치있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브래드 피트가 배스의 역할을 맡은 것이, 브래드 피트 자신과 좋은 비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브래드 피트는 노예 12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이 영화의 감독을 섭외하기 위해 직접 영국에 갔고, 미국에서 큰 논쟁거리인 노예의 문제를 소재로 영화화하기로 다짐한다고. 이것은 마치 장동건이 해외의 감독을 섭외하여 우리나라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브래드 피트의 이 결정은, 배스가 목숨을 걸고 한 행동에 비할 수는 없지만 분명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3. 패치

솔로몬은 패치를 다음과 같이, 애정을 담아 묘사한다. 그의 묘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패치라는 인물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책 속에서도 패치의 고통에 내가 더 민감했던 것은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185쪽.
패치는 호리호리하고 허리가 곧았다. 그녀는 인간의 몸이 직립이 가능하다는 듯 꼿꼿이 몸을 펴고 섰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노동이나 피로, 심지어 채찍질로도 파괴할 수 없는 어떤 고고한 분위기가 있었다...자연히 그녀는 기쁨의 존재,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명랑한 처녀였다.  

패치가 엡슨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영화 속에서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는 사실, 이 장면이 브래드 피트가 여러 장면을 결합하여 넣은 장면인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책 속 내용 - 즉 진실 그 자체였다.

패치는 정말로, 비누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외출했다는 이유로 
정말 잔인한 채찍질을 당한다. 



248~249쪽
사실 그때부터 패치는 예전의 그 처녀가 아니었다...예의 그 활기와 탄력 넘치는 걸음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천상의 기쁨이란 단순히 쉬는 것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애절한 가사 속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

천상의 낙원은 바라지 않아,
지상에서 근심에 허덕이는 내가
그리는 유일한 천국이 있다면
휴식, 영원한 휴식이라네.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4. 전체적인 느낌.

영화와 책을 비교하자면, 영화는 백인의 눈에서 그려진 것이라면 책은 보다 흑인들의 생각까지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을 생각하면 백인 감독관이 멀뚱히 서있는 흑인 노예 6명에게 사탕수수를 어떻게 자르면 되는지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노예들은 그리 똘똘하거나 잘생긴 것도 아니다. 백인 감독관 입장에서 '노예'라고 부를 만큼 타성에 젖은 모습이다. 또 영화 전반적으로 노예들끼리 많은 대화를 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책에는 노예들의 삶을 인간미 넘치게 그린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솔로몬이 책에서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대해 설명했을 때였다. 노예들은 일 년 중 오로지 3일간, 크리스마스 동안에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지역의 노예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밤새도록 춤 추는 축제를 벌인다. 
또 솔로몬이 노예 개개인에 대한 기억을 애정 넘치게 묘사한다. 영화 상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플랫은 몰이꾼으로서 같은 흑인들에게 채찍질을 해야 했다. 이 때 플랫이 패치나 에이브라함에게 채찍질을 하는 척하고, 그들이 실감나게 연기를 하는 장면이 책에는 나온다. 멀리서 백인들은 눈치 못채도록 말이다. 

말하자면 영화 속에서는 슬픔이 두드러진다면, 원작에는 빛과 어둠을 같이 보여준다.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 농사일에 대한 설명도 구체적이어서 정말 읽는 내내 계속 장면이 그려졌다. 

5. 생존하다 VS 산다의 비교


솔로몬 노섭에게 무척 감사한다. 이 글을 남겨주어서.
그는 개인의 경험을 책에 담았으나,
그것이 동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미국 역사에, 
더 나아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민영씨가 말했다. 
즉 개인의 문제가,
너의 문제,
우리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수요일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내 내 문제가 
아주 작은 것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솔로몬 노섭처럼 생의 고백이 되는 책을.
그러려면 
그처럼 정말 열심히 인생을 살아내야겠지.


그는 참 살아있길 잘 했다.
다른 노예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노예로 죽 사느니
죽는 것이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로 통한다. 

하지만 솔로몬은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마침내 노예의 시기를 견디어낸 보람을 얻게 된다. 

이 순간도 지나가리라.

솔로몬은 말했다.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생존은 무엇을 말하는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서 최소의 조건들, 이를테면 의식주로 생명을 부지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생존은 당연히 하는 것으며 그것을 넘어서
삶 속의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사는 것 아닐까.

생존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 어울리고,
삶이라는 말은 사람에 어울린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이 
노예 12년을 생존했다,
가 아닌
노예 12년을 살았다.
라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1. 그는 취미이자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바이올린을 켜는 것.  

솔로몬은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영화 속에서 바이올린을 켤 때의 그의 모습은 매우 슬프지만 책에서 그는

아마 바이올린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그 12년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행복을 표현하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었으며,
때로는 수익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한다. 

2. 솔로몬은 글을 쓸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는 글을 아주 잘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삶이 너무 바빠 글 쓰는 일 없이 그저 '사는' 사람 혹은 시기도 있고,
글을 쓰며 '사는' 사람 혹은 시기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하나, 적음으로서
일단 내가 그 시기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알 수 있고,

둘, 적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 시기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떤 것이 의미있는 삶인지,
읽혀질 만한 글인지는
내 스스로도 많이 고민해볼 문제인 것 같다. 





p.s. 


삼청동 코코브루니에서
4월 5일 토요일, 5시에 열린 모임.


숭례문학당 가족들과 :)

숭례문학당에게 정말 고맙다.
이번이 두 번째 모임인데,
이 모임에 나가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게 만들어주니까.

요즘 나의 30%는 다 여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에너지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사화작업에
쏟아야 하는데..
화이팅!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