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6일 수요일

[ISUP/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존기] 말이 씨가 되다

생존
Survival



어젯밤에도 가방을 모두 헤집고,
오늘 아침에도 가방을 뒤집었습니다.
지갑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말 이것이,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존기가 되었음을.
이것은 마치, 제가 이 프로젝트명을 그렇게 지었을 때부터 생존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진 동전은 13.7세켈. (4300원. 1세켈 = 320원 기준)
제가 오늘 가야 할 인터뷰 3개, 내일 가야 할 인터뷰 3개.
버스 차비는 6.9세켈. (2200원)

첫 인터뷰 갈 차비는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당장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돈을 꾸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자고 있는 저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도 돈을 꾸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스타트업 창업가, 당신을 인터뷰하러 당신의 스타트업 사무실에 방문한 것이니 그들에게 돌아가는 여비를 달라고 할 거다.
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동안 인색하다고 생각했던 스타트업들.
그들에게서 차비를 받을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대가를 바라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웬 한국인 여자애가 당돌하게 부탁한 인터뷰에 응해준 것이 고마워서
한국기념품을 꼭 전달합니다. 

다만, 저는 인터뷰와 기사 작성이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차비, 원고료를 주거나, 식비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저는 일하는 사무실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없는데,
이 외길을 걷는 것이 
가끔씩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대체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차나 커피를 으레 대접 받았습니다. 
인터뷰 후에 밥을 사준 스타트업은 스탠즈포, 진저 소프트웨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할 때 커피를 사준 스타트업은 많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주말에 택시를 타고 한인교회까지 온 건 프레스캇.
인터뷰를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 구글캠퍼스까지 온 건 밥 로젠샤인 씨.
가 기억납니다. 

단, 최고의 인터뷰를 할 것이며, 
돌아가기 직전에 이 말을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을 위해 최고의 인터뷰를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제 지갑은
오빠가 안 쓰는 검은 남자지갑이었습니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그 지갑을 여기 가져온 건
가볍고 부피가 작다는 그 이유 하나였습니다. 
정말 임시방편의 그런 지갑.

그 지갑 안에 든 것은
50$를 환전해서 나온 154세켈.
주민등록증
국민은행카드
이스라엘 Discount bank 카드

제 명함 12장 정도
제 증명사진 한 장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뭐 그리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현금, 카드가 없을 뿐이지,
여권은 제 가방 안에 있으니,
오로지 2박 3일만 잘 ‘생존’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여행을 가기 전 모아 둔
세켈 동전들이 있었습니다. 
13.7세켈.
왕복 13.8세켈이 드는데 0.1세켈이 부족했습니다. 
첫 스타트업 인터뷰 부터 부탁해야 겠군요. 



저는 인터뷰 장소로 향했습니다. 
8시 45분에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상태.
스타트업 현관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제 백을 내려놓고,
여자가 찬 바닥에 앉을 수 없으니,
코트를 포개어 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기를 씁니다. 



이렇게 지갑을 잃어버리고나서 생각이 든 것은,
그 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샀더라면. 생각이 든 것입니다.
다시 만날 친구들에게 줄 선물.
저는 정말 엽서 이외에는 어떤 기념품도 사지 않았거든요.
또 이래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점심을 먹은 이후로 먹은 게 없습니다.
물 몇 컵과 차 두 잔.
그래도 그 동안 참 잘 먹어두었으니 괜찮습니다. 

제 장점은 위기에 대한 내성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기가 닥치는 순간, 오히려 이상한 쾌감이 올라오는 것은
그래서 일까요? 
저는 똘끼 있는 인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 일을 허락하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의지하라고. 기도하라고. 

참 자비로운 분입니다. 
제가 6개월 이스라엘 사는동안,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은
그러시지 않다가,

집의 품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주에,
당신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그리고 제게 이미 친숙한 텔아비브에서
이렇게 이끄신 것이니까요. 

인터뷰 후에 저는 집에 돌아가서,
제일 말쑥한 정장을 입고, 단정한 구두를 신고 
그 다음 인터뷰에 가리라 다짐했습니다. 

제가 늘 지적하는 제 스스로의 단점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적당히 하는 버릇.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른 데 세는 버릇. 

최선을 다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저에게 이 일을 허락하신 게 분명합니다. 
정말 너의 그 다음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지금 이 단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순간,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로이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걸걸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인터뷰 후에 정말로 저는
마음먹은 대로 했습니다.
Eva: Roi,
Roi: Yes?

Actually, I want to ask you a favor.

What is it?
I lost my wallet yesterday.
Can you lend me 10 shekels?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다만 Sorry about that. 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거지가 아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오로지 다음 약속장소로 발을 옮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그리고 그에게는 작은 호의인 것을 부탁한 것이니까요.

 그 역시 태연하게 10세켈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10세켈을 받아쥐고
나와서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기숙사에 가서 묵직한 짐도 풀고,
옷도 정장으로 갈아입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버스 좌석에 앉아
대낮의 햇살을 받으며 의자 손잡이에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13:00

구글캠퍼스에 도착해서 
밥 로젠샤인씨를 기다리며 인터뷰 준비를 하는데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 검은 지갑을 식탁 아래에서 찾았다고. 

:)

좋은 교훈이었구나. 
감사하다. 


밥 로젠샤인 씨가 오셨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밥: 작년에 심장발작이 왔었어요.
제 목 아래에 호스를 넣더군요.
이게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채: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밥: 하루하루가 감사합니다.
가족들이 소중하게 생각되고, 더 시간을 많이 보내려합니다.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요.

저는 그와 비할 것이 전혀 못되지만
몇 시간 전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이야기,
그 과정 속에서 생각 난 것들을 그에게 얘기해주었습니다. 

한 번 잃었다가 되찾는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기 하루 전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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