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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9일 월요일

[난알아요 프로젝트 3일] 샌프란시스코 지진 & 화재 걷기 여행

샌프란시스코 지진 & 화재 걷기 여행



캐서린이 오늘의 가이드였다. 
그녀는 페리빌딩에서 바게트를 사오던 참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설명을 하는 사이,
노숙자가 우리와 그녀를 향해 알아들을 수 없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We respect him.
그녀가 자리를 옮기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 그녀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캐서린의 가이드에 감명을 받은 것은, 
아주 스토리텔링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지진이 나고나서 온 가족과 함께 집을 나온 여성의 이야기, 
지진으로 자기 집에 자고 있는 아내를 구하고나서 자신은 순직한 소방관의 이야기, 
엄마들이 아기들에게 줄 우유가 없어서 
버클리에서 매일아침 신선한 우유를 실어다주었다는 이야기,
지진을 처음 알아차린 것은 매일 아침과 밤에 
바다수영을 하는 저스틴이라는 남자였다는 이야기.






당시 Bank of America 건물이 불에 휩싸여 모든 돈이 다 타버렸다고 한다. 
당시 이태리에 있었던 은행 주인은
돈의 일부를 야채 수레 밑에 묻어두었다. 
그로 인해서 일부 돈은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은 이 건물


과거에는 이 구조물이 아주 중요하게 쓰였다. 
말에게 물을 먹이는 곳이었고, 
지진 때에는 이 자리에 와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기 가족의 이름을 부르곤 했단다. 


유니온 스퀘어에 지진 당시 적십자에서 밥을 배급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보석 세공업자, 미용사, 재단사, 교사 등의 사람들이 모두 직업을 잃었고, 
그 자리에 목수와 벽돌쟁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지진/화재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의 90%의 천장이 모두 폭삭 내려앉은 것이다. 



I know that I Kathryn Bourre, after visiting SF on business I had the opportunity to live anywhere. I chose SF - used city Guides to know the city, then decided to become one. 

캐서린은 오늘이 첫 시티 투어라고 했다. 
몇 번이나 조사하고, 또 연습했다고 한다. 

캐서린은 원래 여행 수필가였다.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 그녀는, 
나중에 어느 곳에든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여기 살기로 결심했단다.
그리고 자신도 이 여행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두가 그녀가 처음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전문적이었다.




I know that I 'm an engineer so that I can make the world a little more sustainable.

프레드릭. 
프레드릭과 걷기 여행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Industrial Engineering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가운데
4주간의 시간이 남아서 미국에 여행왔다고 말했다.
그 중 2주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르고 있다고. 

우리의 대화는 5분 동안 걸으면서 이어지다가
다시 캐서린이 설명을 시작하면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2014년 9월 4일 목요일

[에바노트] 추석을 코 앞에 두고 쓰는 편지

엄마, 아빠, 오빠 저 무지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한테 편지 쓸 때가 참 행복한 것 같아요.
말도 아주 술술 잘 나옵니다.

첫 월급이 들어온 것도 그렇고, 요즘 진정성있게 사람을 대하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제 룸메이트언니도 저에게 "요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니?" 물어볼 정도입니다.
일도 아주 열심히 해요. 어젯밤에는 그 날 만난 사람들에게 모두 메일을 보내고
페이스북으로 오늘 알게 된 것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 새벽 2시에 잤습니다.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았던 건, 
3주 전 월요일에 장봐왔던 모든 야채를 오늘 다 먹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하나도 남김없이, 그것도 거의 다 요리해서 먹었답니다.
오늘은 마늘, 보라색 양파, 가지를 넣고 볶다가 토마토 소스, 페스토 소스를 넣은 뒤
밥을 넣어 볶아 먹었습니다. 
예전처럼, 친구들이 걱정하게끔, 생야채를 밥이랑 그냥 먹지 않아요.
요리에 재미들려서 이것저것 요리합니다.

오늘 아침 목대표님과 대화하면서 추측하기로는, 
가스렌지가 아닌 전기식이어서 좋고, 
요리할 공간이 주어져서 좋고, 
후라이팬이 꼭 주방장이 쓰는 것 같아서 
요리할 때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봐요. 

요즘에는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아요.
대신 아침에, 마치 저녁식사 요리일 것 같은 요리를 맛있게 해가지고는,
샌프란시스코 아침, 항구 경치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습니다.
밥을 맛있게 먹느라 경치는 그저 저랑 마주한 오래된 편한 친구같아요.


오늘 아침에는 안개가 짙게 꼈는데
저 멀리 보이는 소살리토 부근에는 태양이 비치고 있었어요.


점심에는 콘플레이크를 먹어요.
저녁에도 콘플레이크를 먹어요.
왜냐하면, 제가 일하는 사무실은 밥은 안 주는데 음료는 무제한이라,
우유가 무려 세 종류거든요.
그냥 우유, 반반우유(저지방인듯) 그리고 아몬드우유
가끔 로켓스페이스 로비 앞에 놓인 과일을 먹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 맞은 편에 앉은 윤모언니랑 친해졌거든요. 
이제 언니에게 여러가지 잔소리(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를 들을 만큼 친해졌어요. 

오늘 저녁에는 뭔가 기분이 뒤숭숭해서
늘 출근하던 길에 있던 알록달록한 가게들에 발을 들였습니다.





두 번째 들른 가게에서는 나뭇잎으로 만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을 것 같은 전화번호부를 샀습니다. 

그 다음엔 베수비오라는 아름다운 카페에 들어갔어요. 
세상에..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어요. 
정말 앉은 손님마다 개성보다도,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전등이 이 공간을 한층 더 환상적이게 만들었습니다.

고민하다, 이 카페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는 말을 꺼냈어요.
"여기 와이파이 있나요?"
여자는 없다고 친절하게 말하며,
"두 블럭 더 올라가면 있는 그레코 카페에 가세요."라고 말해주더군요.
기분 좋게 베수비오를 나와 언덕을 오릅니다. 


그레코 카페에 들어가서, 
안 먹을거지만 디저트를 한 번 다 눈으로 훑은 뒤에
제 자신에게 '너는 이거 안 먹어도 되겠다.'라고 일일히 납득시키고는
계산대 위의 메뉴판을 바라보고 섭니다. 
그 동안 아저씨들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눠요. 

문득 저는, 이렇게 계산대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소비의 즐거움에 포함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추천메뉴인 카푸치노 그레코 그란데를 시킵니다.
늘 저는 서툴게 계산해요. 
그만큼 소비를 가능한한 자제하는 거라 여기는지, 
저는 서툴게 동전이며 지폐를 꺼내는 제 자신을 많이 나무라진 않습니다.

어렵게 3.75$를 만들어 놓으니
계산원 아저씨가 지루했는지,
"씨에 씨에"라고 합니다.
한국인이라고 말한 뒤에 스페인어로 말을 거니
저를 대하는 태도가 친근해졌어요.

저는 바깥이 바라다보이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아 항상 내가 걷던 그 길을 바라보며 앉아있노라니
참 기분이 좋네요. 
누군가, 내가 걸어가는 모습을, 여러각도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금의 나처럼 바라보고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날씨가 무척 좋은 요즘입니다. 
제 주변사람들과의 날씨도 무척 좋은 요즘입니다.

저는 요즘 글을 잘 쓰지 못해요. 
우러나오는 게 없어서 쓰지 못한다는 핑계를 댑니다. 
제 안의 병에 물이 어느정도 채워지면 제 안의 생각을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레 받아적게 되겠지요. 

추석이라니. 
추석을 못 지낸지 3년입니다. 
2012년에는 에콰도르에서, 안드레스 부모님을 대접하는 음식을 준비했던 것 같고,
2013년에는 사막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2014년에는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라는 큰 컨퍼런스를 취재하게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바깥을 보니, 
붉은 관광버스가 크게 눈에 들어오네요. 
한국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나요?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10월에 돌아가기 전까지 저는 간절함을 배우고 싶어요. 

오늘 페이스북에서 새로 알게 된 분에게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 라는 말을 들었는데 무척 기분이 이상했어요. 지난 번에 목대표님과 집에 오며 말씀드린 게 생각났어요. 
"목대표님, 이송이 님을 만났는데요, 월드비전에서 일하시고, 지금은 비트코인일 하시고, 독일어도 하시고. 와 너무 멋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채원아, 멋진 일을 하려고 따라가지말고, 간절한 일을 하려고 따라가." 
저는 속으로 아니 '멋진 게' 왜 안 돼요?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하면 할 수록, 멋지다는 말이 주는 그 겉의 느낌이 떨떠름해요. 간절함이 주는 그 떨림을 몸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고, 
저는 여기서, 하루하루 길게 살아가도록 할게요. 

딸 씀. 




아부지 답장

난 지금 광조우 공항 라운지에서 와인을 홀짝거리며 휴가를 달쿔하게 시작했다
이재 몇 시간 후면 4개월만에 귀가하는 설레임이 귀소 본능 이상의 각별한 의미로 느껴지지
아빠의 유헉시절이나 미국 일본 중국에서 일하며 
홀로 명절을 맞을 때의 가슴시림을 이제 녀도 느끼는 나이가 되었구나, 
아빠는 가장이라 가슴 저림의 무게가 무거웠다만 넌 가벼운 homesick 이길 바란다
가족의 소중함을 교감할 수 있는 카톡이 고맙기도 하고
너의 감수성 외국어 능력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맘에 드는 것에 대한 몰입, 이 모든 것이 너의 소중한 자산이지 
너무 탐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염려가 되긴 하지만 
마음껏 오늘 이 순간 살아 있음, 건강함, 할 일이 많음, 그리고 가족이 있음을 감사하며 살자꾸나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에바노트/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웰스파고(WELLS FARGO) 샌프란시스코 박물관에 방문하다


WELLS FARGO 
웰스파고 




하루 전.
오전 8:18

양주동 대표님과 저는 로켓스페이스에서 준다고 공지한 아침밥을 먹기 위해 
일찍 출근했습니다. 

양대표님: 저기 알아요? 웰스파고 박물관이에요.

채: 아 정말요?

양대표님: 네, 웰스파고하면 인재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죠.
마치 한국의 대우증권처럼.
대우증권은 새벽 6시까지 술마시고 새벽 6시 반에 칼같이 출근해야되거든요.
그래서 대우증권을 나왔다는 건 거의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죠. 

채: 아 그렇군요.
대표님, 그런데 웰스파고 말이에요. 그 이름은 어디서 나온걸까요?


양대표님: 웰스와 파고가 만들었어요.
웰스파고가 아주 대단한 은행이에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를 제치고 1위를 했어요. 
워렌 버핏이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그리고 오늘 오전 10시 50분
무료인가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봤어요.

친절한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무료가 맞데요.
게다가 무거운 제 가방도 맡아준다고 해서 안경을 끼고 박물관 1층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마차 그리고 웰스파고

당시에 마차는 굉장히 인기있는 교통수단이었어요.
그리고 웰스파고 - 마차 = 0
라 할만큼 지금도 웰스파고의 이미지에 마차 로고가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1920년대에 유행했던 이 교통수단은 영화에도 곧잘 출현했어요.
3,40년대부터 서부 영화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아예 

WELLS FARGO
그 다음엔 

THE TALE OF WELLS FARGO
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와서 크게 흥행했습니다. 

당시 서부영화는 무조건적으로 검은 모자가 악당
흰 모자가 착한 사람이었어요.

(지난 겨울 예루살렘 이강목 목사님 댁에서 
보안관, 무법자 놀이를 한 것이 생각나 미소가 떠올랐어요.)


덩달아 장난감도 크게 유행했습니다. 
동화책, 보드게임 등등.
웰스파고 자체가 큰 하나의 상품이었던 거죠.

마치 해리포터처럼요.


보면서 너무 재미있었던 것.
세계2차대전 이후에 빠른 은행업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창구를 만들었데요.
거울을 통해 지하에 있는 은행원과 은행업무를 보는거죠.
이걸 보면서 현재 미국의 For Here or To Go 문화가 
이 때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어요.


그 옛날의 PC
저 디스크가 너무 귀여워서.

고등학교 때까지만해도 저 디스크를 썼었는데 말이죠.


너무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차용한 박물관이었어요.

1. 마차 체험
이 마차를 타면, 웰스파고에 관련한 인물들이 영상으로 비치면서
마치 정말 마차를 타고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2. 짐 싸기 게임
웰스파고 마차에 타기 전 내 suitcase에 어떤 짐을 쌀까 하는 놀이가 있는데
내 성별, 편한 옷/ 스타일링, 소지품 선택 등을 해나가는데
그 시대 물건들을 볼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어요.

3. Please touch
이 박물관은 다 해보라고 해요.
사진도 찍으라고 하고, 만져보라고 하고. 
그래서 정말 좋았어요.
게다가 공짜였거든요. 


맨날 바깥에서 보던 그 마차. 
오늘에서야 안에서 이렇게 가까이 보네요.


오전 11시 24분

박한진 대표님이 로켓스페이스에 오시기로 한 시각이라 저는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사거리의 4개 신호등이 한꺼번에 켜지는 그 순간.


웰스파고 박물관을 나온 뒤 마주친
웰스 파고 은행이 사뭇 달라보입니다.
정말 대단한 은행이로군요.

미국 시민들의 돈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역사, 게다가 그 문화까지도 함께 저축해온 은행.


웰스 파고 앤드 컴퍼니(Wells Fargo & Company, NYSE: WFC)
1. 웰스 파고는 자산 기준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은행이다. 
2. 시가총액으로는 최대 기업이다.[1] 
3. 웰스 파고의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해 있다.
4. 2007년에 웰스 파고는 S&P가 AAA 등급을 매긴 미국 내 유일한 은행이었으나[4] 2007~2011년 금융 위기에 들어서면서 AA-로 하향되었다[5] 
5. 웰스 파고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그룹, JP모간 체이스와 더불어 미국의 4대 은행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ISUP/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Zynga(징가) 서준용 님 인터뷰 뒷이야기 feat. 샌프란시스코, 내가 걷는 길


Zynga
징가





서준용 님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사실 인터뷰 후에 서준용 님의 유학 얘기를 들을 때 였다. 준용 님이 유학을 오시기 까지 큰 영향을 미친 세 분이 있었다고 한다. 선배, 친구 그리고 한 후배. 2010년 말부터 현재까지 미국 유학에 있어서 모든 길을 닦아준 분이라고. 공대 하면 제일 이름 높은 곳이 스탠포드, MIT, 버클리 그리고 카네기 멜론이다. 준용님이 여기랑 더 낮은 곳들의 어드미션을 받으셨는데 고민하셧다고 한다. 프로페셔널 (수업만 듣고 1년만에 졸업)과 아카데미 (논문 쓰는 것) 중에 후자가 더 좋았던 것이다. 결국 둘 다 박사 과정까지 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가신 한 분의 전화를 받고 나서 준용님은 그렇게 결정을 하셨다고 한다. 

정말 대단했다. 서강대 졸업한 선배들이 이렇게 줄줄이 계속해서 후배들이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비즈니스 쪽으로 하시는 분들은 또 런던 대학교나 아니면 스페인 비즈니스스쿨로 가셨다고 한다. 



징가 사무실은 정말 멋있었다. 또 어찌나 큰 지 6층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시멘트 계단 쪽은 좀 게임 던전같은 느낌이 들어서 예전에 지수오빠가 하던 1인칭 총게임의 한 장면들이 생각났다. 총을 장전하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요괴나 좀비를 쓰러뜨릴 준비를 해야 하는 그런 던전 말이다. 







징가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오는 길이 또 압권이었다. 코스코가 있는 10th St.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대략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거리로는 2.5마일 정도 걸은 것 같다. 킬로미터로 하면 4km 정도 걸은 것이다. 오오 정말 내 자신이 대견하다. 가면서 얼마나 많은, 멋진 것들을 보았나! 게다가 해질녘이라서 그 아름다움이 더했다. 


10th St.의 이름모를 아름다운 성당. ​


Market St.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Bay Bridge 쪽으로 보이는 해질녘 풍경에 경의를 표하며
빨간 불로 바뀌기 전 재빨리 찍었건만 결국 흔들리고 말았다. 
왼편에 보이는 하얀 글씨는 사실 스타벅스이다.


시청사 앞에서는 사진을 너무나 많이 찍었는데 그만큼 너무 아름다웠다. ​



그 다음 Ellis 거리로 향하는 길에 곡선을 그리는 건물을 보았는데 그 곡선이 또 정말 유연했다. 하늘을 바라보자 간간히 보이는 단풍이 또 정말 아름다웠다. Ellis를 걸었는데 한 블록 더 가기에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Ellis에는 호스텔과 저가호텔들이 참 많았다. 길현이가 저번에 머무르던 곳이 이중 하나였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쭉 걷다가 드디어 존스 거리와 테일러 거리가 나왔다. 하지만 차마 그 길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위로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 다음은 메이슨. 힐튼 호텔이 나오고 그 다음은 포웰. 거리가 무척 환한 데다가 포웰은 전차가 다니는 거리니까 믿음직했다. 나는 파웰을 따라 걸어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광장이 나오는데… 아… 파란 도시에 우뚝 솟은 그 천사상… 그 주변을 감싸는 건물들… 참 낭만적이었다. 파웰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고풍스러운 아파트가 많았다. 마치, 어거스트 러시에서 남자가 라일라를 찾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 집들 같았다. 경사진 거리에 자리한 집들이라서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깎아지르게 지은 건물들이 재미있었다. 파웰의 꼭대기에 오르고 나니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참 재미있는 지형이었다. 두 블록 떨어진 테일러는 가파른 M자인데, 파웰은 비교적 완만한 언덕이라니.. 파웰의 전차길이 메이슨으로 넘어가는 지점 이후에는 차이나타운이 또 나타났다. 내가 몰랐던 거리의 이면을 보자 이 도시의 낯선 얼굴을 마주한 것 같았다. 파웰에서 만나는 Pine, Bush, Jackson, Broadway.. 느낌이 묘했다. 내가 가는 길의 평행선에 있던 이 길. 저 너머에 내 생활터전이 있는데. 우리 동네에 살면서 너무나 옆길인 이 파웰을 2주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렇게 다 걸어보다니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결국 파웰은 콜럼버스 거리와 키스를 하면서 나를 성당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콜럼버스에 다시 선 나를 맞이한 것은 금발의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내가 지나가자 키가 2인치 정도 더 큰 형이 더 작은 동생을 거리 한 켠으로 비켜주게끔 했다. 

아아 낯설고도 친숙한 나의 동네여. 나는 샌프란시스코가 정말 좋다. 지도가 있다면 내가 걸어 본 길들에 한 번 형광펜을 칠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거리를 샅샅이 알고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똑같은 길을 피하려는 사람이다. 모험을 하려는 사람. 

오늘 선배들이 알려준 길을 걸은 준용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서 그 길을 걸은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말이다. 사실은 남들이 알려주는 대로 살기 싫은 게 아닐까. 남들이 알려주는 맛집에 가는 것보다 내가 가는 바로 그 집이 맛집인거고, 남이 어떻게 멋진 곳에 갔던, 내가 만난 사람과 있었던 아무 보잘 것 없는 방 한 켠이 나에게는 더 낭만적인 이야기가 피어난 동화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맛집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 맛 보다는 못 할 거라 생각이 든다. 같이 있는 사람과 즐거워야 음식도 더 맛있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 리니가 나에게 사준 그 저녁식사가 더 없이 맛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2014년 8월 2일 토요일

[ISUP/ 에바의 실리콘밸리 생존기] 구인구직 회사, Recruitloop의 채드를 찾아가다 & SOMA에서의 점심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채드가 일하는 구인구직 회사, Recruitloop(http://recruitloop.com/blog/)에 다녀왔어요. 
너무나 인상깊었습니다. 
11시 47분이 되면 8명 남짓 되는 직원들이 모두 한 방에 모여서 스탠딩 미팅을 합니다. 
한 사람 씩 돌어가며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자신이 한 일을 발표하거든요. 
가령 제일 먼저 발표한 사람은
“나는 이제껏 42통의 전화를 걸었고, 37개의 이메일을 보냈어. 그 중에서 답장이 온 건 3 곳뿐이었어.”
전화를 통해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경우에는 팀원들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그렇게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또 진행하면서 힘든 일, 성취한 일들을 함께 나누면서 
일을 해나가는 것이 대단했어요. 

이 미팅에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채드가 말했습니다. 
“우리 회사를 시작한지는 1년 반 정도 되었고, 나는 1달 전에 들어왔어. 
다른 구인구직 회사는 첫 수입의 2-30%를 가져가는데 
우리는 첫 수입의 4%만 가져가거든. 이런 비용 상의 이점으로 진입하려고 해.”

드디어 점심 시간.
채드가 여러 선택권을 주어서 저는 버마 음식점에 가자고 했어요. 
“Hustle Con이 내일 열려.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아닌 사람들이 이룩한 스타트업의 놀라운 성과, 그 비법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거야.
거기에 내 친구 두 사람이 오거든.
타일러와 존. 이 두 친구를 만난 건 2년 전이었어. 그 당시에 스타트업을 시작한 친구들은
자기네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가 아주 명확했어. 
그런데 이번 컨퍼런스에서 키노트로 설 만큼 그 스타트업이 성공한 거야. 
정말 감동적이더라구.”

그 말을 하는 채드는 정말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는 이 친구가 하는 일을 두고 나는 뭐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을 너무나도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감동을 느끼는 일들에 싸여 있는데 
오히려 제가 배운 것이 더 많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장인정신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채드는 점심을 먹은 뒤
급히 또 일을 하러 먼저 들어갔습니다. 
채드랑 갔었던 SOMA 근처의 Food Truck 사진들이에요. 






저는 과테말라 푸드트럭에서 한 접시 골랐습니다. 


Toastada랑
새우가 곁들여진 샐러드
에콰도르 별미인 Ceviche같은 맛이 났어요.


이 친구가 Chad
채드는 제가 자기소개를 할 때 표현이 맞지 않다며
지적을 해주었어요.
무지 고마웠습니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는 45번 버스를 찾는데
버스정류장 찾는 것을
한 싱가폴 남자가 도와주었어요.

그는 미국태생인데
지금은 싱가폴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어요.
저랑 이것저것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꼭 해야 할 일 리스트도 적어서
이메일로 보내주었어요.




다음은 

# 도시 속의 사람








그렇게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저녁 7시에 집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지원언니가 해준 고추장찌개랑
밥이랑 해서 맛있게 먹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