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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3월 마지막 날. 중국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



3월 마지막 날 
중국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


상하이에 온지 2개월 하고도 2주가 지났습니다. 상하이에서의 직장생활도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저에게 있었던 변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로, 졸지 않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점심을 먹으면 당연히 졸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하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버릇인데, 중국에 와서 그 버릇을 고쳤습니다.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포장문화 덕분입니다. 예전에는 밥을 남기기가 아까워서 배가 불러도 꼭 다먹었었는데, 이제는 점심을 먹으면 반드시 조금은 남겨서 싸간 다음 저녁으로 먹고 있어요. 덕분에 맑은 정신으로 점심 먹은 후에도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테크노드 메인. 캡스톤파트너스 기사와 마이리얼트립 기사가 보입니다^^

둘째, 기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어요.
작년에는 정말이지 변비걸린 사람처럼 기사 하나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 처음 와서도 하루에 기사 한 편을 쓰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시간, 영어 실력에 대한 욕심을 버린 덕분입니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욕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다 넣으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기사도 길어지고,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지고 질질끌게 되었어요. 그런데 테크노드 전사회의 때 영어 기사의 길이를 줄여달라는 위팅의 발표를 듣고, 기사량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요즘에는 word카운트의 350자 ~ 400자에 맞게 쓰고 있어요. 정보 제공 욕심 때문에 더 길어지면 600자가 넘을 때도 있지만요.

제가 처음으로 쓴 영어기사는 2013년 12월 31일에 Geektime에 쓴 것이고, 두 번째 기사는 2014년 11월 30일에 TechNode에 쓴 것입니다. 써본 기사량이 적은 만큼 제가 쓰는 어휘나 어법에 대해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다른 기사들의 세련되고 깔끔한 표현들을 보면서 뒷골이 서늘해지거나 마음이 풀썩 가라앉는 경험을 종종 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표현들을 돌려가면서 짜깁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조각보옷을 깁는 양 문장문장에 욕심을 내다보니 속도도 느려졌습니다. 그런데 스피드가 더 중요함을 많이 느끼게 되면서부터,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제가 인터뷰이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제 입으로, 제 목소리로 편하게 풀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 창업가와 이야기할 때 감동을 받은 부분, 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느낌표를 가져간 부분이 어디였는지 기억합니다. 제 방법은, 그 감동 그 마음 그대로 일단 다 적어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쓰고 싶은 글의 뼈대를 잡은 다음, 회사 홈페이지의 올바른 표현이나 다른 기사들을 참고하며 제 표현을 바로 잡습니다.

여기다 회사의 PR담당 분들, 마지막에는 영국의 Mike Cormack이 검토를 해주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런웨이에 올릴 만한 글이 나오게 됩니다. 마이크가 수정한 부분과 제 원본 기사를 비교하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제 글이 테크크런치 기자의 수준이 될 만큼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제는 개방적인 테크블로그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기사 하단에는 제 이메일이 있어서 스타트업이나 관련 조직에서부터 저에게 기사 의뢰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은 저를 친근하게 Eva라고 부르며 제 기사에 대한 평을 해주고, 자기 회사 서비스 링크를 달아 제 코멘트를 부탁하거나, 흥미로운 기사 제안, 산업 전반적인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의뢰합니다. 상하이에 있는 경우에는 아예 그 회사에 방문하기도 해요.

완성된 기사 한 편을 레스토랑의 요리라고 비유하면요, 이런 이메일 문의는 마치 장을 보면서 야채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입니다. "조금 덜 익은 것 같은데, 나중에 좀 더 무르익으면 사갈게요."라고 말이죠. 물론 제철이 된 채소의 경우에는 오오오!를 연발하며 요리를 시작합니다. 아예 저한테 요리를 해서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보도기사 전달) 이 경우에는 저희 쉐프님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 쉐프님이나 다른 요리사들의 추천이 있을 때에만 요리로 내놓고 있어요. (다음카카오 케이큐브 벤처스 합병 기사, 비네이티브 투자 유치 기사가 그 경우입니다.)



셋째, 중국어가 조금씩 늘고 있어요.
중국어는 아직도 제가 많이 반성을 하면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말하기 전에 영어로 할 수 있는 말과 중국어로 할 수 있는 말을 구분해서 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어로 말을 그냥 막 던지고 있어요.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중국에 온지 2주만에 아이폰6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 핸드폰인 Meizu를 사게 되었는데, 한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카카오톡도 안 쓰고, 네이버 사전을 대체할 영한사전을 찾게 되었어요. 영어, 중국어만 쓸 수 있는 가운데, 일기도 중국어로 쓰기 시작했어요.

가령 둔황에 혼자 여행하다가 제 여권을 보고는 중국인이 아니면 민박집에 묵을 수 없다며 밤 10시에 경찰서에 간 적이 있어요. 결국 외국인을 숙박할 수 있는 4성급 호텔에 더 비싼 돈을 내고 묵어야 했습니다. 그 때의 섭섭한 마음을, 여기는 중국이니 중국인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로에서 뺨맞았으면 종로에서 눈 흘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 덤덤하게 경찰서에 간 일기를 썼습니다. 이렇게 일기를 써서 위챗으로 보내면 제 과외선생님인 세실리아가 글을 교정해줍니다. 중국어 블로그 LOFT에 올렸습니다만, 괜스레 경찰서에 갔다는 얘기를 해서 다들 제 걱정을 할까봐 위챗 모멘트에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에 간 바로 다음 날. 사막을 보러 둔황에 왔고, 마침내 사막을 보았습니다. 고진감래.

오늘 친구 둘 앞에서, "케이트가 내 왼손에 헤나를 그려주었는데, 한국인들이 모이는 독서토론 모임 뒤풀이에서 어른들이 내 헤나를 보지 않도록 하면서 술을 마시느라 아주 혼났어." 라는 말을 제스처와 함께 설명하는데, 친구들이 알아듣고는 하하 웃었습니다.

중국어를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친구들이 제 말을 알아듣고, 제 개그에 웃어줄 때에요. 제 동갑인 남자애가 저한테 영어로 말하면 제가 도도하게 "중국어로 말해줄래?" 하면 친구들이 제 말투 듣고 킥킥 웃거든요. 회사에서 분위기메이커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넷째, 규칙적인 생활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외로움 병에 빠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정말 잘 빠지는 병인데, 이 때 시계가 9시 이내라면 어김없이 술친구인 정연이에게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럴 일이 없어요. 아니,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규칙적인 팻말들을 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퇴근하고 나서 바로 댄스수업에 가거나, 중국어 수업을 잡아두어서 외롭다는 감정에 쏟을 에너지를 활동으로 발산하고 있어요. 한 번도 제 선택사항에 없었던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가 생기면서 정말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었어요.

기분이 몹시 안좋을 때, 그나마 글을 써서 좋은 글이 나오면 좀 나은데, 그것도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거든요. 그림을 그리면 생각이 없어지고, 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외로울 때는 외로운 소녀 그림, 애정이나 관심에 목마를 때는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여자의 그림, 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을 때는 원색의 강렬한, 자신감이 넘치는 여인 그림을 선택합니다. 이 그림을 똑같이 캔버스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못 그리고 잘 그리고는 안중에 없어요. 제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에 있어서 밉고 고운 것이 있을리 없으니까요.



다섯째, 혼자 재미있게 사는 법.
집에 혼자 살고, 또 출장이 자주 있다보니 집이 허하게 느껴지는 적이 많았습니다. 침대가 좀 큰 편인데, 저는 그 침대의 구석 1/3에 방석 두 개만한 전기장판을 깔고, 최대한 전기장판에 밀착하여 차렷해서 자거든요. 이런 환경이라면 혼자 공부를 하고, 일을 더 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만, 사람은 무척 다채로운 무지개색깔 같은 존재라서 일이나 공부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그 능률도 매번 100%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중국은 제가 네 번째로 혼자 사는 나라입니다. 영국 3개월, 이스라엘 7개월, 미국 3개월, 그리고 중국. 이스라엘에서 일만 하면서 살아봤는데 정말 인간이 피폐해진다는 것, 일의 능률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반대로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잘 쉬면, 월요일에 더 일에 잘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한 가운데 혼자 놀기도 물론 할 수 있지만,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저만의 보증수표 3종이 있어요. 에어비앤비 (Airbnb), 카우치서핑 (Couch Surfing), 그리고 밋업(Meetup)입니다. 회사에 절친도 위팅, 카페 -가 있긴 하지만, 그 친구들은 상하이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제가 놀러가자고 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카우치서핑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이미 중국에서 세 번 해보았어요. )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왕카이, 레이나, 로렌스) 밋업은 주말의 빈 칸, 평일에 빈 칸에 종종 채워넣습니다. 그림 그리기 밋업, 근교여행 밋업, 연극 밋업에 갔었고 좋은 친구들도 덩달아 사귀게 되었어요.



지난 주말에는 케이트, 세게이 - 러시아 커플을 집에 묵게 해주었어요. 알고보니 세게이가 러시아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더라고요.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어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Laoshi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엑셀러레이팅도 받았답니다. 이 친구들에게서 러시아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고, 같이 등산도 나갔으며, 케이트는 제 손등에 헤나도 그려주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정말이지 주변에 구차하게 신세를 사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호스팅을 하니, 베푸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아, 이제 내가 베풀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섯째, 제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당황하셨죠.)
작년에 윤모언니와 대화가 생각나요. "언니 저는 제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매력은 말야, 계속해서 노력을 쌓아가면 자연스레 생기는거야."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년 12월부터 1.5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고 있어요. 오늘은 최고의 날이니까,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고, 거울을 보았을 때 씩 웃을 수 있는 것에서 멋진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제 스타일이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 회사 안에서도 저만의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 같아요. 아직 일적인 부분이나 중국어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아 엠마, 위팅, 카페에게 질문하는 적도 많은데, 고마움을 표현할 뿐 질문을 한다고 해서 눈치를 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항상 제가 갖고 싶어하던 '당당함'이라는 단어를 갖게 되었어요.



이 글에 다루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댄스수업, 여행, 독서토론 이야기 들인데, 종종 하게 되겠지요. 이제 밤 10시가 되었으니 집에 가야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시안 에바노트] 중국 시안의 베이커리 빠담(Padam) 제빵, 손님맞이 일일체험




시안의 베이커리 일일체험




제 친구 레이는 Padam이라는 베이커리를 시안에 창업했어요. 이 친구는 싱가폴계 중국인인데, 부자집에서 자랐습니다. 7년 동안 아무 일을 하지 않다가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14년 12월 28일에 영업을 시작했다는 액자가 걸린 것으로 보아 2달이 되었습니다만 그 인기는 엄청납니다. 이미 여러 투자들에게 콜을 받고 있는 그는 한창 바쁘게 사업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창업가였습니다. 

베이커리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에게? 고작 요만한 거였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파리바게트에 익숙한 저에게는 고객이 앉을 테이블은 하나, ㄱ자 유리진열대가 전부인 이 베이커리가 너무 작게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2층의 사무실 겸 제빵실에 들어가니 제법 규모가 컸습니다. 저는 6명의 직원들이 빵을 만드는 모습을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에게 빵도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1 소시지빵




처음 먹은 빵은 소시지빵이었습니다. 짜거나 달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빵인데, 소시지가 짜지도 않고, 나머지 빵부분도 은근한 달달함이 있어 먹기 좋았습니다. 나중에 이름을 보니 '핫도그'로 되어있더라구요^^

#2 찹쌀빵



그 다음으로 반으로 잘려서 제 손에 놓인 빵은 신작이라고 하는 찹쌀빵이었습니다. 겉에는 참깨가 아낌없이 투여되고, 안에는 팥이 들어간 이 빵은 어르신들도 참 맛있게 드실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 제가 카운터를 볼 때의 일입니다.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빵이라 진열대에 놓였을 때 손님들이 잘 사가지 않았습니다.

손님 : 이 빵은 뭐죠? 안에 뭐가 들었어요?
일란 : 신제품이라 실은 잘 모르겠어요.
에바 : 아 이 빵 오늘 제가 먹어봤어요. 안에 팥이 들어가 있는데 아주 맛이 있어요.
손님 : 그래요? 그럼 이 빵 하나 주세요.

저는 일란에게 찡긋해보였습니다.

#3 일편단심 빵



그 다음으로 먹은 빵은 '일편단심'이라는 케이크였습니다. 실은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를 위해 보숭보숭하고 동그란 순수한 자태로 놓은 케이크와 스테인레스 포크로 착각할 만한 플라스틱 포크와 함께 예쁘게 식탁에 놓아준 것을 보고 다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에는 체리가 든 것 같았는데, 전혀 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케이크 자체도 별로 달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원래 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하기에 그냥 그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케이크는 이 가게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케이크였습니다.

따뜻한 빵을 실컷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저로서는 좀 안타까웠습니다.

원래는 바로 카페에서 기사를 쓰려고 했던 저는 제빵사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레이가 제빵사 한 명이 나가서 빵굽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말을 하자 저는 대뜸 오늘 하루만 여기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닥청소, 설거지 등 어떤 잡일이라도 좋으니 허락해달라고 말입니다. 레이는 친구인 저에게 일을 시키는 게 미안한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레이: 임금은 어떡하지?
에바: 에이, 점심, 저녁만 해결해주면 그걸로 돼.
레이: 하하 당연하지. 알았어. 한 번 물어볼게.

레이는 징징을 불러 설명을 했습니다. 징징은 제가 제빵을 많이 배우지 못할텐데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저는 어떤 잡일이든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레이는 저에게 앞치마와 요리사 모자를 건내주었습니다. 빨간 셔츠 위에 짙은 회색빛의 앞치마를 두르니 정말 쉐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징징과 칭진 옆에 다가가서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녹차반죽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제가 하니,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녹차반죽에 노른자, 그 다음 흰자, 우유를 넣은 다음, 칭진이 젓는데 그 힘이 엄청났습니다. 그 다음 완성된 생크림 한 통과 그 녹차반죽을 젓는 것을 보고 저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칭진은 처음에는 손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저에게 팔을 걷어달라고 하더니 팔꿈치까지 생크림통에 넣고 함께 젓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절대로 이 빵은 먹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반죽은 족히 4개의 트레이에 넓게 펴졌습니다. 과연 이게 어떤 빵으로 변신할까 궁금했습니다.

#1 샌드위치

한편 진팡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달걀을 어쩜 저렇게 동그랗고 예쁘게 부쳐서 샌드위치 안에다가 넣는 것일까, 게다가 빵을 4단으로 쌓다니.. 어떤 모양이 나올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완성적을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삼각으로 잘린 샌드위치는 정성스런 4층, 그 겉은 달걀로 맛있게 구위진데다, 위에는 햄과 격자 마요네즈로 한껏 치장한 모습이었습니다.



#2 Seasons Cake

케이크들은 전부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과일케이크를 꺼내서 ㄱ자 자로 가로 18cm, 18cm로 재서는 네모진 칼로 잘랐습니다.

칭진은 그 위에 오렌지, 키위, 빨간 과일, 딸기, 복숭아, 파인애플, 체리를 먹음직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다 되었다 싶은데도 계속해서 올리더니 정말 과일더미가 된 후에야 초콜릿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름하여 Seasons Cake였는데, 4계절이라니, 귀여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이 케이크를 고르실 때 오늘 만든 것이라 무척 신선하다고 말씀드리는데,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옆에서 열심히 지켜보고, 그 분들이 저에게 관심있게 질문하는 것들에 재미있게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트레이에 머핀도 올리고, 머핀 포장도 하고, 케이크도 옮기고, 유선지도 벗기고, 바나나 껍질도 벗기고 간간히 일을 도왔습니다.

무척 신기했던 것은 식빵을 만들때였습니다. 처음에는 크루아상을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반죽을 똑같은 무게로 재서 덩어리를 아름다운 동그라미들도 줄새우더니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돌돌 마는 것이었습니다. '롤케익인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예쁘게 만게 의미없을 만치 무심히 5개 반죽을 깊은 틀에 옮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야 알았습니다. 열심히 부풀어오른 그 빵은 정확한 직사각형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식빵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식빵을 뜯어먹을 때 동글동글하게 말려서 뜯어지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오빠가 좋아하는 빠리바게트의 모닝브레드가 생각났습니다.

그 이후의 반죽에는 말린라즈베리, 건포도, 팥이 들어갔는데 제빵사님이 그 재료들을 아낌없이 반죽 위에 흩뿌리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좁은 반죽위에 얼어있던 재료들이 승차하듯 제빨리 올라타고, 다시 이불말듯 돌돌 말려 탐스러운 원통형 반죽이 되는 식이었습니다.



진팡, 칭진, 에바 그리고 징징

징징은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런닝맨, 아빠 어디가 등등의 예능프로그램을 다 좋아하고, 시안에는 이니스프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그녀는 바나나를 채썰어 자르더니 그것을 한 프라이팬씩 버터에 튀겨내었습니다. 나중에 이 바나나에 초콜릿을 입히는 것을 보니 케이크 재료가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드디어 점심 시간. 우리는 앞치마를 벗고, 코트를 챙겨입었습니다. 요리사복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평상복을 입은 모습을 처음 보니 다들 멋쟁이들이었습니다. 칭진은 저를 무척 마음에 들어해서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참치가 들어간 동그란 빵, 맵고 뜨거운 탕에 든 국수, 그리고 맵고 차가운 국수를 푸짐하게 시켜주어서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런 음식을 패스트푸드처럼 판매하는 것도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오후에는 트레이시가 Brite Semiconductor 시리즈 C펀딩 기사를 부탁해서 사무실에서 기사 작성을 했습니다. 4시에는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는데, 도심 속 5차선 도로의 3차선에 공원이 조성된 곳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쌀쌀하고 하늘은 흐렸습니다만 저는 이미 시안에 다시 봐도 반가울 여러 얼굴들이 생긴 후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한 사람씩 곱씹으며 저는 공원 한 바퀴를 돌고 베이커리로 돌아왔습니다.

러시아인인 리나가 집에 갈 참이었습니다. 리나는 중국어를 정말 잘합니다. 유학생으로 3년을 여기서 산 그녀는 제가 이전에 만난 러시아 사람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아주 상냥했습니다. 제가 어떤 빵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 되려 저에게 좋아하는 빵을 골라보라고 말하며, 우각 모양의 빵을 손수 싸서 건내주었습니다.

날렵한 모양의 우각 빵은 겉보기에 더 이상의 형용사를 붙을 것 없는 그저 빵일 뿐인데, 그 맛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겉테두리를 먼저 살살 뜯어내서 바삭하고 달달하게 먹고나서 그 순수한 속살을 입에 넣으면 정말 그 쫄깃함이 느껴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베이커리 안에 리나, 앤드류 그리고 조조 세 사람이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저도 같이 일손을 돕기로 했습니다. 제가 중국어가 서툴어서 미리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한 손님이,

손님: 우와, 이 베이커리는 정말 인터내셔널하네요.

하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사실 러시아인 리나, 우간다인 앤드류를 채용한 것이 저역시 신기하던 참이었습니다. 사실 중국어를 못하고, 흑인인 앤드류를 채용한 레이가 내심 대단해보이기도 했습니다. 일란은 신장 사람인데, 집에서 플랜테이션을 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배가 아주 맛이있다며 내일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베이커리에서 손님들을 맞는데, 이 베이커리, 정말 대단했습니다. 케이크를 포장 그 상자가 편리하게도 위에 뚜껑이 있는 종이상자인데다, 손잡이를 쇼핑백의 넓고 편리한 손잡이로 감아주었고, 개별 상자에 나무손잡이에 스테인레스 손잡이가 있는 케이크 조각용 도구, 묵직한 스테인레스 포크와 숫자 초, 모든 케이크가 아름다운 샷으로 (실물과 똑같이) 펼쳐지는 팸플릿을 함께 주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생일자를 위한 왕관은 그 종이재질이 무척 훌륭하고 고풍스러운 금색이었으며, 멋진 필기체로 생일문구가 영어로 적혀있었습니다.

레이는 파담 웹사이트도 만들고 본격 위챗 마케팅에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가장 맛있는 빵집이 이곳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 온지 한 달. 유럽 배경의 중국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네 가지 (중국의 문화대혁명,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중국의 멜로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세 가지

有一个地方只有我们知道

이제 중국에 온지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어요. 
저는 1월 10일 토요일 오후 4시에 베이징에 도착했고, 
2월 10일 화요일 오후 4시에는 상하이 사무실에서 
한창 비트윈 기사 작업을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었지요.


상하이 사무실.
햇빛이 쏘는 저 자리에서 일합니다. 



"잠자기 밥먹기 움직이기 등, 생활에 규칙적 리듬이 있어야
몸과 맘의 감기가 안 걸린다." 

감기가 걸린 것은 맞습니다만
생활에 규칙적인 리듬은 나름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규칙적인 리듬을 깨는 일이 있었어요. 
퇴근하고 문화센터에 갔는데, 오늘 수업이 없다고 하는 거에요. 
제가 지난 번 중국어를 잘 못 알아들은 탓이지요, 뭐. 

그 길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지난 주에 봐두었던 영화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때는 6:10 p.m.

에바: 저기, 제가 제일 금방 볼 수 있는 영화가 뭐에요? 
종업원: 이거에요. 嘲笑鸟.
에바: 음.. 중국영화인가요? 포스터 좀 보고 싶은데.
종업원: 포스터 없어요. 미국영화에요. 
에바: 네... 이걸로 주세요.

저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일단 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이 영화 관람.

아.. 내가 중국 멜로 영화를 골랐었네. 하면서요.

집에 와서 표에 적힌 제목을 찾아보니...
嘲笑鸟는 Mockingjay


어라.. 내가 본 영화는 이게 아닌데..

제가 본 영화는



이 멜로영화 였거든요. 
아... 내가 상영관을 잘못 들어갔구나...
그제야 알았습니다.
어쩐지.. 영화가 90분만에 끝나더라구요..ㅋㅋ

그래도 이 중국 영화를 본 게 원래 봤어야 했을 미국 액션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이번 달 계획 중 하나였던 '중국 영화 보기'도 달성했으니까요. 

중국 멜로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세 가지

하나, 영어, 중국어 자막을 둘 다 깔아주는구나. 

지난 번 <호빗>은 영어니까 당연히 중국어 자막이 들어갔는데, 오늘 중국 영화는 배경이 프라하인만큼 영어, 중국어가 다 나오는 영화였고, 영어, 중국어 자막을 다 깔아주더라고요. 
덕분에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영화가 수많은 중국어 학습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서로 추천할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둘, 멜로 영화에도 중국인 특유의 웃음 코드가 들어가는구나. 

중국인의 호탕한 성격 때문에 멜로 영화에서 나름의 슬프거나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가도 대사에 웃음코드를 넣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들과 대화에서
"아빠는 더이상 엄마한테 돌아오지 않으실거에요."
"뭐?"
"그러니 엄마도 남자친구를 사귀세요!"

라던가

의도인지 아닌지 모를, 연인을 붙잡기 위해 뛰어가는 남자의 바지가
반바지라던가. 

또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NG장면들을 모아서 보여주는데, 방청객 웃음을 효과로 넣더라구요. 그 방청객 웃음이 이 영화 전체의 옥에 티라고 생각될 만큼 매우 낯설었습니다. 


셋, 중국 그리고 체코 공산주의의 과거와 지금.

영화 내용과 공산주의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중국공산당, 그리고 작년 프라하에 갔을 때 방문했던 프라하의 공산주의 박물관이 묘하게 겹쳐지더라고요. 1989년은 중국과 체코 두 국가에게 매우 중요한 해였는데요, 중국의 민주화 운동의 대표로 꼽히는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났고요. (정확히 1년 후 제가 태어납니다.) 체코의 경우는 1989년 벨벳 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붕괴하였고,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거든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제가 프라하 공산주의 박물관 포스팅을 해놓은 게 있었네요. 
2014년 2월 22일 작성한 것입니다. 

[에바노트 / 유럽 거닐기 ] 체코 프라하 - 체코의 암흑기를 보여주는 공산주의 박물관


포스팅 중에서.

'벨벳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벨벳혁명 [Velvet Revolution]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벨벳혁명에서 정말 국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까.
내가 이 박물관의 상영관에서 본 영상에서는
구타 장면과 폭력적으로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 가득했는데.

영상에서 한 밴드가 노래를 부른다.
영상으로는 체코 시민들이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피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프라하. 지금 내가 관광하는 이 도시가 25년 전에는 시민들의 데모와 자유화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가득했던 곳이라니.
노래는 놀랍게도, 그 가사를 모르고 들었더라면
편안한 곡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분노, 적개심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고마워요.
내 약함을 알려주어서. 힘을 길러야 함을 알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추함을 주어서.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쓴 맛을 보여줘서. 잠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어요.
..

라는 식의 가사로 이어지는 이 노래를,
가슴 아프게 들었다.
오히려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에
프라하 시민들이 갈구하는 자유화가 더 간절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넷, 중국의 유럽 사랑 그리고 안타까움

정말이지 요즘에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영화촬영지의 꽃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도영화 <Bang Bang>을 봤었는데요, 거기서 킬러인 주인공과 여주가 세계여행을 언급하면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서 프라하에 가거든요. (황당무게한 줄거리에 수억의 돈을 어떻게 쏟아부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인도의 매력적인 영상미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아예 전체 배경이 프라하였습니다. 심지어 영화 줄거리 배경에도 체코 - 중국의 국제 연애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950년대에 프라하의 의사와 만나 사랑에 빠진 란신. 60여년이 흐른 후 란신의 손녀인 진티엔이 프라하에 사는 중국인 남자와 만나 사랑하면서, 할머니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중국인 남주는 또 프라하 여자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 딸이 있거든요. 

중국인들의 최근 결혼사진 촬영 트렌드가 유럽의 유명한 건물들 앞에서 야외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주어허랑 CNN으로 뉴스를 보는데, 앵커가 '중국인들의 유럽 사랑'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도하더라고요. 중국인들이 추운 겨울날 턱시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던의 빅벤, 국회의사당 앞에서 로맨틱한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보는데 정말 중국인들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난 주 처음 알게된 독일친구 스테이시와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스테이시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으로 수천년 역사로 중국이 쌓아두었던 그 모든 소중한 문화와 지식들을 모두 불태워버린 것을 안타깝게 말하더라고요. "역사를 알면, 후손들도 그 나라의 미래를 어떤 정신으로 이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영향 중 두 가지를 발췌해보았습니다.

전통 도덕의 붕괴[편집]

홍위병에 가담한 청소년이 자신의 부모나 스승을 반혁명세력이라고 고발하거나 또는 구타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문혁 지도부는 사람들이 문화적 전통들을 비판하고,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것은 "비림비공" 운동때 더욱 강조되었다.마오쩌둥의 사상은 전통 도덕과 관습을 제치고 중국에서 모든 것들을 이끄는 중심논리가 되었다. 홍위병의 권한은 군, 공안, 그리고 사법기관을 넘어섰다. 중국의 전통 예술과 사상은 무시되었고, 그 자리에 마오쩌둥 사상이 차지하게 되었다.

문화 유적과 전통 유산의 파괴[편집]

문혁 기간 동안 건물, 공예, 서적 등의 중국의 많은 역사적 유산들이 "구시대적 산물"로 간주되어 파괴되었다. 공예품들은 각 가정에서 탈취되거나 혹은 즉석에서 파괴되었다.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산출하기 어렵다. 서양의 목격자들은 중국 역사의 수천년의 문화유산들이 단 10년간의 문혁기간동안 파괴되었다고 추산한다. 또한 이런 파괴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행위였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역사가들은 문화 대혁명을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하기도 한다.


저역시 한국인의 정체성 위에 세계의 지식을 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후기 쓰려다 삼천포에 빠진 포스팅
지금은 11시 30분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p.s. 매월 10일은 월급날. 오늘 영화표 이외에 지른 것들. 




2015년 2월 6일 금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의 데모데이에 가서 깨달은 것 세 가지 : 차이나방, 핀테크, 중국 스타트업


중국의 데모데이에 가서 깨달은 것 세 가지





차이나방(ChinaBang)은?

테크노드에서 매년 주최하는 연간 시상식 이름이다. 차이나방은 2012년에 시작해 올해로 3년이 되었다. 2012년에는 베이징에서 14개의 스타트업 중 최고의 스타트업을 가리는 방식이었으나, 2015년 현재는 중국의 다섯 개 도시에서 각각 지역단위의 데모데이를 거친 뒤 최종적으로 최고의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 되었다. 누리꾼의 인터넷 투표가 60% + 심사위원의 평가가 40%이다. 참고로 차이나'방'은 돕는다 帮는 뜻이다. 

ChinaBang conference, an annual two-day event with a focus on local startups,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was held last weekend in Beijing.


하나, 차이나방의 영향력, 그 범위와 그 깊이에서 놀랐다.


우선 그 범위로는, 올해 베이징, 상하이, 홍콩, 항저우, 그리고 청두에서 차이나방을 개최한 것. (빨간 동그라미 5개) 올해 혹은 내년에 차이나방이 열릴 5개 도시도 이미 선정되었다.  (주황색 동그라미 5개)

그 깊이는 오늘 원활하게 진행된 이벤트,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것을 뛰어넘는 높은 관심과 참여에서 느낄 수 있었다. 60개 정도의 의자를 설치해서 대략 100명 정도가 모인 것 같다. 그래, 많지는 않지만 이게 지역별 예선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이미 3년 째 이 이벤트를 해온 사람들의 노련함이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우리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발표자, 이 이벤트를 보러온 보통 사람들까지. 다들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찾아왔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고 왔으며, 그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호기심의 눈으로 이 이벤트를 지켜본 건 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 이벤트의 한국인은 3명이었다. 나 그리고 한화에서 오신 두 분. 

오늘 데모데이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최소 무게와 부피와 걸맞게 최소의 편안함을 주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심사위원부터 관람객들이 모두 채워앉았고, 의자가 없는 사람들은 주변에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전문업체가 와서 정성스럽게 케이터링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설마 이걸 다 먹을까 의심했었는데, 커피, 케이크, 파이, 과자 등등이 이후 거의 다 깨끗하게 비워졌다. 뿌듯했다. 뭐랄까. 우리가 준비한 그릇보다 더 넘치게 사람들이 참여하고 열정을 보여준 이벤트여서. 


둘, 상하이 그리고 핀테크

오늘 피칭한 10개의 스타트업 중에서

HW / SW : 2명이 하드웨어, 8명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첫 번째는 색깔이 변하는 스탠드, 두 번째는 배터리 충전용 스쿠터였다.

8명의 아이템 = Fintech 5 + 크라우드펀딩 1 + 모바일 광고 최적화 1 + 여행 1 

역시 상하이는 핀테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데모데이 심사위원 중에도 Startup Bootcamp Fintech의 싱가폴 담당자 두 분이 오셔서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셨으며, 다른 한 발표자가 비트코인의 장점과 그 가능성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진 이후에 데모데이가 시작된 것이다. 

상하이에서 핀테크가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상하이라는 도시 자체가 '금융'에 두는 무게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하이의 골간 산업은 3차 산업으로 특히 금융업, 부동산업, 보험, 운수업 등이 상하이 경제의 핵심이다. 참고로 상하이의 금융 무역 중심 지역은 2015년까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무역, 금융의 중심으로 우뚝 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상하이는 우선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상하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시기는 북송시대인 1074년 상하이전이 설치되면서부터였고 이 시기에 특히 수군, 상업이 번성했다. 이후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난징조약을 체결하면서 상하이 항구도시를 개방하기에 이른다. 1845년 설립된 영국 조계사를 시작으로 황푸강변의 와이탄은 번드라고 불리는 금융 빌딩이 늘어서게 되었다. 현재 푸둥신취의 루자주이는 상하이의 새로운 금융 무역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 

출처: 이원주, <Justgo 중국>, 시공사, 2014, 211쪽, 224쪽

* 상하이 그리고 핀테크 참고기사: 

[세계로 뻗는 금융한류③]중국엔 '핀테크 구호'가 없다..자생적 강국 성장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A21&DCD=A00102&newsid=01207046609240672

전자상거래 활발한 중국의 교훈
금리 통제· 신용카드 발급 장벽 뚫고 고객 필요에 의해 스스로 발전
알리바바는 '알리페이' 발판 삼아 자산운용사·개미금융까지 영역 확대 결제대행사 넘어 금융사로 성장
한국 금산분리법, 핀테크 활성화 막아 인터넷전문銀 한해 규제 완화 검토

큰 나라 중국의 금융 기술 엿보기 중국 핀테크 동향





셋, 중국의 스타트업

오늘 피칭한 10개의 스타트업, 그 통계를 내보자. 

중국인 여부 : 95%가 중국인이었다. 

미국인 시민권이 있는 중국계 여성창업가가 있었으므로.

성비 : 9명은 남자, 1명은 여자 

이 여자는 정말 창업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여자인 것 같았다. 버킷리스트 캠페인 성공에서 착안해 캠페인 크라우드 소싱 아이템을 소개한 이 여자, 그녀의 팀원들과 조언자들의 이력은 더 무서웠다. 당시 내가 에버노트로 메모한 것을 보면.

코파운더 둘 다 예일 대 나오고 philanthropy in motion이라는 데서 일했구나. 이 여자는 미국 출신에 CEO& BD, 공동대표인 여자는 베트남인이고 Product lead네. 
난양이 좋은 데 인가봐. 홍콩 대학교. 알리바바에서 일한 사람. Advisory를 보면 코카콜라의 미디어 마케팅 조언자. 다른 한 남자는 DELL, hp … 

참고로 베이징에는 여성 창업가가 아주아주 많다. 테크노드에서 시리즈물로 이 여성창업가들을 다룬 적도 있다. 테크노드 주최로 이 여성 창업가를 모아 X FOUNDER이라는 밋업을 매달 열고 있다. 

언어 : 6명은 중국어, 4명은 영어

참고로 심사위원 중 아예 중국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은 9명 중의 1명 뿐이었다. 

* 발견한 특징
-로고에 귀여운 캐릭터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아이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판다 캐릭터, 뚱뚱보 캐릭터가 등장했다. 
-회사명은 대체로 두 글자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중국어로 발표하면, 중국어로 코멘트. 영어로 발표하면, 영어로 코멘트가 나오는 식이었다. 
-외국 대학을 나온 것은 영어로 발표한 네 사람 중 두 사람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다 중국 내의 대학을 나왔으며, 북경대, 칭화대, 복단대 출신은 없었다. 
-피칭에 있어서는 중국인 창업가들의 열정이나 그 기술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PPT는 텍스트가 아주 많고, 세련된 터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슬라이드에 중국어 그 밑에는 영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줄글로 된 텍스트가 많았고, 글자체는 대체로 영어 신명조만 사용하는 것 같았고, 글짜 색깔과 배경 색은 다 내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원색들이었다. (빨강, 노랑, 하양.. 형광봉 색깔이 등장하기도 했다.)



[후기]


이벤트장으로 이동하는 길. 지금은 오전 10시 30분.
택시비 66위안

테크노드에는 테크크런치, 차이나방, Xfounder 이벤트가 있다. 차이나방 이벤트 담당은 베이징에 있는 샤오밍과 루루가 담당하고 있다. 
다른 도시 투어는 두 사람이 같이 도와서 하는데, 상하이 데모데이는 원래 상하이 회사의 멤버들이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샤오밍만 상하이에 내려왔다. 

여러 번 이벤트를 준비해본지라 Innospace에 도착하자마자 스탠딩포스터를 설치하고, 의자를 설치하고, 프로젝터가 잘 되는지 확인, 케이터링 업체들을 지시하는 것까지 도가 튼 것 같았다. 이벤트 중에는 세심하게 심사위원들, 발표자들을 챙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옆에서 쿤치랑 왕핑이 도왔다. 특히 쿤치가 길이가 맞지 않는 스탠딩 블라인드를 고치기 위해 여러번 나사를 풀었다 조이며, 포스터 길이를 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벤트 끝나고 사무실 가는 길. 지금은 6시.
택시비 80위안
오는 길에 뉘치엔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뉘치엔은 테크노드 중문판의 Chief Editor이다. 베이징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후 NetEase에서 3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가, 회사가 상하이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후 테크노드에 합류했다. 테크노드에 2012년 합류할 당시 회사는 그녀까지 4명 밖에 없었다. 그 중 두 명은 지금 회사를 떠났으니, 대표님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직원. 

에바: 뉘치엔, NetEase에서 일할 때가 좋아. 아니면 지금이 좋아? 
뉘치엔: 지금. 나는 스타트업이 좋아. NetEase는 대기업만 다루거든. 
에바: 스타트업이 왜 좋아? 
뉘치엔: 창업가를 만나는 게 좋아. 그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생각이 좋아. 

*뉘치엔과 대화하며 알게 된 것

Baidu는 검색엔진
QQ, Sina, Sohu, NetEase (163.com)은 인터넷포털사이트
门户网站 [ménhùwǎngzhàn] 



辛苦了!

이제 밤 12:44분이네요 ㅠ
모두들 안녕히 주무세요!

2015년 2월 5일 목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중국산 핸드폰을 사고 싶다 : 메이주 MX4



중국산 핸드폰을 사고 싶다
: 메이주 MX4




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아이폰6를 도둑맞았습니다. 저는 상하이, 한 사람은 발리, 한 사람은 버클리에서요. 핸드폰이 없어진지 이제 열흘이 지났고, 애플스토어에 가서 그 사람이 오프라인 상태인 이상 찾을 방도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핸드폰을 사기로 했어요. 중국산으로요. 중국산 핸드폰이라니, 못 믿겠다고요? 현재 샤오미, 화웨이 그리고 메이주가 얼마나 무섭게 핸드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양뿐만 아니라 핸드폰의 질에 있어서도 이제 해외 제조업체들에 뒤지지 않아요. 

지난 번 베이징에 갔을 때 Ex테크노드 기자님에게서 메이주 핸드폰에 대한 수많은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저는 잠정적으로 메이주를 사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유에팅의 노키아 윈도우 8폰을 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져서 저희 기자들에게 물어보기로 했어요. 중국어는 유에팅이 옆에서 번역하면서 알려준 것입니다. 


에바: 질문이 있어. 너희 생각에는 어떤 중국산 핸드폰이 좋은 거 같애? 
나한테 중요한 건 빠른 속도랑 사진의 퀄리티야. 

줘허: 애플꺼 사.

루루: 샤오미가 괜찮아. 

에바: 애플은 좀 위험한 선택인듯. (이미 저와 한 분의 아이폰6가 도난당한 상태)

왕량: 메이주가 사실 괜찮은데.
MX4 말야. 

류텅: 아이폰을 살 게 아니면, 넥서스5를 사. 한국 LG 같애. 제일 중요한 건 구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거. 

에바: 오 다들 고마워!

류텅: 만약에 가격이 낮은 게 좋다면 Sailfish OS의 Jolla Phone이나 Firefox OS의 Geeksphone, E-ink의 Yota Phone도 괜찮아. 



마침 오늘 플래텀에서 메이주 인터뷰기를 올리셔서 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꼭 메이주 MX4 Pro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 중에서 메이주에 대한 이야기
다른 이야기지만, 샤오미를 애플 짝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직접 느낀바로는 샤오미는 이미 ‘브랜드’로 인식되는듯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메이주는 ‘제2의 샤오미’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샤오미의 전략을 따라한다는 시선도 있다. 이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이주는 화웨이나 샤오미보다 먼저 스마트폰을 개발해왔다. 샤오미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선전할 수 있었던 건 로우엔드 전략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하이엔드 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샤오미가 저가폰 전략으로 성공하는 사례를 보고 로우엔드 제품을 추가로 라인업 한 것이다. 즉, 메이주는 샤오미보다 더 넓은 제품군을 제작, 개발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에게 최상의 모바일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MX4에 대한 이야기
메이주의 자체 R&D 개발 역량은 그 어떤 기업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MX4를 개발하였는데, 소비자들로부터 제품 성능 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인 부분에서도 애플 아이폰6보다 앞섰다는 평을 받았다. 현재 메이주 본사에 상주하는 R&D 연구인력이 1000명 이상이다. 인하우스 디자인팀까지 충분히 갖추었고.
메이주의 최신모델인 ‘MX4 PRO’는 현재 중국에서만 판매되고 있는 기종이다.
운영체제는 Android v4.4.4 (KitKat)이며, 샤오미와 마찬가지로 메이주 자체 커스텀롬 Flyme 4.0이 적용되어 있다. 5.5인치 정전식 스크린 방식이며, 멀티터치 및 지문인식 기능이 제공된다(자세한 사양은 아래 이미지 참조).
가격은 홍콩달러 기준 16기가 모델이 3299달러(한화 42만원), 32기가 모델이 3549달러(한화 49만원)에 책정되어 있다. MX4(출시가 29만원 선)에 비해 가격이 대폭 상승했음에도 여전히 타기업 동종제품군에 비해서 저렴하다.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춘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생활비가 얼마 안 남아서 아마 월급날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ㅠ 그래도 MX4는 꼭 사고 말리라,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1월 마지막 주에 정리하는, 중국에서 배운 것 세 가지

1월 마지막 주에 정리하는, 
중국에서 배운 것 세 가지 


왜 그 동안 사람들은 중국진출을 하는 창업가들에게, 혹은 취업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중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왜 중국 소비자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중국 베이징 1주, 상하이 2주, 지금까지 총 3주를 살면서 제가 느낀 것을 토대로 말씀드릴게요. 겨우 3주 갖고 이런 글을 쓰다니,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첫인상은 이후의 경험과 지식에 좋은 실마리가 되니까요. 또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도넛도 계속 먹으면 한계효용이 체감하듯이, 저에게 새롭고 신기한 중국도 나중에는 너무 일상이 되어버려 다 암묵지로 잠들 수도 있으니, 1월이 지나는 이 시점에서 중국에서 배운 것을 새삼 꺼내어 정리해봅니다.

하나, 중국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라. 중국 사람들과 마주 해서 앉는, 그런 공식적인 관계를 만들지 마시고요. 중국 사람들의 옆에 앉는 친구가 되어보세요.

중국 사람의 옆에 앉을 때 이점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앱을 사용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만 같이 살아서는 이 사람이 어떤 앱을 쓰는지 잘 몰라요. 일주일간 같이 살아보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 사람들이 고민없이 바로 찾는 앱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드러납니다.

지금 묵는 곳이 마음에 안 들어 급하게 묵을 곳을 찾을 때는 취날, 밖에서 맛집을 찾을 땐 디엔핑, 사무실에서 시켜먹고 싶을 땐 으어러머, 급하게 택시 탈 땐 콰이디, 디디, 공유차량을 탈 땐 우버나 AA.

한국의 문화는 강합니다. 비즈니스만 보더라도 술자리 문화, 호칭 그리고 명함을 주고 받는 문화 등. 문화라는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 직원 한 명이 온다고 해서 한국식 문화가 갑자기 중국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상해에 드디어 자리 잡은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님이 한국인 직원 여럿에 중국인 직원을 한 명 채용하고는, 갑자기 중국앱을 깔고, 중국 식당만을 찾아다니면서, 중국어만 쓰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스타트업이 중국 진출을 할 때 중국 직원을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중국인 파트너를 - 대표님과 동등한 의미에서 중국을 대표할 분을 뽑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요, 한국인과 중국인을 동등한 무게의 추로 두고, 그 권한을 늘릴 때마다 추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중국인 직원의 수 그리고 그리고 중국인에게 주는 권한이 한국인에 대한 것보다 더 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둔 미스테리한 스타트업이 있으니, 바로 스테이즈입니다. 스테이즈를 만난 것은 작년 12월 11일 스파크랩스 데모데이에서 였어요.

이 스타트업은 한국인, 중국인 공동 대표가 운영하면서, 외국인이 한국에서 장기간 투숙할 집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어요. 에어비앤비보다 더 길게 2주 ~6개월 간 묵을 집을 찾게 도와주는 서비스인데 9월에 론칭한 이후 발표 일자인 12월 11일까지 무려 5천만원을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60%의 고객을 중국인으로 유치한 결과였습니다.

그 비결이 너무 궁금해서 두 분을 인터뷰하면서 마케팅의 비결등을 여쭤보았는데, 위챗, 웨이보를 말씀하시고 나서는 더 이상의 말씀은 아끼셨습니다. 정말이지, 중국인이기때문에 아는 것들 - 을 그 비밀로 간직하고 계신 듯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짜이서울의 장재영 대표님께서 상해의 푸단대 쪽에 자리를 잡으시면서 6명의 중국인을 채용하시고 전면적으로 중국 스타트업으로서의 둥지를 잡으신 것은 이런 균형을 맞추기 위한 좋은 선택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의 스타트업을 미디어 뉴스를 보면서 파악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중국 친구들과 위챗으로 채팅을 하거나 수다를 떨면서 일상에서 그 사람들이 쓰는 핸드폰은 무엇이며, 서비스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왜 사용하는지 보는 것이 정말 피부에 와닿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위챗으로 통한다. 중국에 와서 위챗으로 이뤄지는 일들의 범위와 그 깊이에 대해서 놀란 적이 많습니다.

하나, 위챗은 대화의 장이다. 매우 기본적으로 위챗은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서비스입니다. 제가 테크노드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을 처음 마주한 계기도 위챗방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 회사에 이 위챗방이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유대화방, 하나는 업무대화방, 하나는 기자들대화방입니다.

이전에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자유대화방은 라인, 업무대화는 스택(Stack)을 사용했었는데, 여기서는 위챗으로 통일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단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둘, 위챗은 돈거래의 통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대표님이 직원들에게 홍빠오(빨간 지갑이라는 뜻으로 보너스) 제비뽑기를 위챗방에 올리셨어요. 이 링크에 접속해서 홍빠오를 클릭하니 랜덤한 금액으로 돈을 받는 방식이더라고요.

또, 이후 제가 중국 은행 계좌가 없어서 아직 위챗 지갑이 없다고 했더니 친구가 그러면 일단 자기가 1위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쉽게 그리고 즉시 돈을 건내받았습니다.

식사 후에 누가 돈을 내고, 어떻게 더치를 하고의 고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나 카드로 계산을 하면 칼같이 1위안 단위까지 1/n을 해서 위챗 지갑으로 돈을 보내거든요.

셋, 위챗은 명함이다. 중국에 와서 아직 명함 인쇄가 안되었습니다만 사실 그 필요성도 많이 느끼지 못했어요. 명함교환 대신 QR코드를 한 사람이 찍어가면 상대방의 정보가 가니까요. 또 링크드인까지 연동할 수 있어서 그 사람의 이력까지도 확인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수고를 더는 셈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만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자주 찍곤 하는데, 이후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면서 인사를 건내기 쉽기 때문에 좋더라고요.

넷, 위챗은 B2C 정보의 장이다. 위챗에는 텐센트 신문, 그리고 테크노드 신문이 있어서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가 깔끔한 뉴스레터의 형태로 소개되거든요. 기사를 읽지는 않더라도 사진을 통해 중요사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지난 번에 체루빔(Cherubim) 파트너스의 파티에 참석했을 때 파트너 분들이 제 위챗 QR코드를 찍어가시면서 앞으로 이리로 뉴스레터를 통해 스타트업 소식을 알려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섯, 밋업의 장이다. 장재영 대표님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위챗채팅방에 책장 같은 것이 있어서 여러 밋업 그룹에 가입할 수 있어요. What's Shanghai? 라는 곳을 알려주셨는데, 그 주에 열리는 중요한 모임 정보가 모두 나왔습니다.

여섯, 위챗은 페이스북 기능을 한다. 위챗의 펑요찬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처럼 그 사람의 근황을 쉽게 올리고 친구들이 댓글을 달 수 있게끔 되어있습니다. 이 펑요찬이 또 하나의 버티컬채널을 형성하기 때문에 사진앱 등이 연동됩니다.

(10:30 이네요 ㅠ 일단 여기까지 쓸게요. 다음 번에 이 글을 보실 때는 링크 & 사진까지 달려있을 거에요.)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베이징 에바노트] 베이징의 교통에 대해 말하다. '베이징의 지하철 미스테리'

베이징의 교통에 대해 말하다
'베이징의 지하철 미스테리'



베이징에서 일주일을 지냈습니다.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온 대표님, 직원들은 왕징의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호텔에서 시내에 내려갈 때마다 무조건 택시를 타시더라고요. 물론 베이징의 공기를 생각할 때, 걷기보다는 낫겠지만 시골도 아니고 도시인데 택시로만 이동하는 것이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베이징 사무실에 출근하는 현지 직원들 예닐곱 명에게 어떻게 출근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베이징출신의 기자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지방 출신이었고, 대체로 혼자 혹은 둘이서 회사 근처의 집에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집이 가깝다보니 다들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지하철을 타는 사람은 없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한 번 타보고 싶은데 여기서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들 갸우뚱하더니 결국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베이징의 공공 교통시설을 꼭 이용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온 제 동료가 베이징에 15번 정도 와본 것 같은데, 상하이와는 달리 교통이 잘 발달되지 않는 베이징에서는 택시만 타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사실은 10분만 걸으면 되는 거리를, 베이징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택시를 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저는 베이징의 지리를 택시기사의 네비게이션이 아니라 제 몸으로 익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저는 호텔 로비에 물었습니다. 천안문에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이죠. 직원은 지하철역이 여기서 매우 멀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까운 전철역까지 꼭 걸어가고 싶다고 말하며 약도를 물었습니다. 직원은 왜 카페에서는 공기밥을 찾을 수 없느냐고 묻는 고객을 대하듯이, 걷는 길을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며 택시를 타고 가기를 권했습니다. 이 지역의 지도도 없는지라 저는 결국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말했습니다.

'베이징의 지하철 미스테리'의 해답을 천안문까지 택시+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택시로는 50위안에 20분이면 간단히 도착할 거리였는데, 20위안에 1시간이 걸려 도착한 것입니다. 분명 베이징 지하철은 돈을 절약하는 면에서는 이득이지만 시간으로나 노력으로나 훨씬 더 소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먼저 택시를 타고 15위안을 낸 뒤 (정말이지 걸어서 50분 정도 걸릴 거리에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네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14호선 - 6호선 - 10호선 - 1호선, 총 12정거장) 상황이 이러니, 다시는 지하철로 시내로 이동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개찰구에 들어서기 전에 마치 공항 검색대에서 하듯, 가방 검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긴 줄을 서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베이징의 교통이 이렇기 때문에 베이징 내에서 교통을 이용할 때는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베이징 시내에 숙소를 잡은 사람이라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베이징 변두리에 숙소를 잡은 사람이라면 다음의 세 가지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하이에서 베이징에 출장을 오는 제 동료가 베이징에서 이동할 때의 두 가지 법칙, 그리고 제가 발견한 세 번째 법칙입니다.

하나, 호텔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는 택시를 탄다. 
우리 호텔이 있는 이 지역은 시내가 아니라 택시가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우버와 같은 공유차량제를 선택하면 그 차가 여기 오기까지 20분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택시앱을 이용해 택시를 부르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택시앱에는 콰이디, 디디가 있습니다. 각각 알리바바 텐센트가 인수한 회사들이지요.

카페 : 가장 널리 쓰이는 택시앱에는 콰이디, 디디가 있어. 각각 알리바바, 텐센트가 인수한 회사인 만큼 마케팅에 많은 돈을 쏟는 회사들이야. 돈이 많은 회사들이니까. 앱으로 5~15위엔을 주면 택시 예약을 할 수 있어. 이 예약금은 결국엔 이 택시앱 회사들에 내는 수수료인 셈이지. 하지만 택시 예약을 하는 것이 탑승객 입장에서 편리하기도 하고 나중에 택시 쿠폰을 받을 수 있도 있으니까 결국엔 이득이라고 생각해. 

둘째,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공유차량제를 이용한다. 
교통이 많은 시내에서 호텔에 돌아갈 때는 우버나 AA를 사용해 돌아오면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이두가 바로 우버에 투자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버, AA를 비교하자면 AA는 우버의 후발주자입니다. 하지만 가입부터 엄격하게 카드번호 기입을 요구하는 우버에 비해서 AA는 비교적 간단하게 가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사용자를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시내에서 택시보다 저렴하고,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철통인력거(?)'를 탄다. 
이 차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을 하자면 인력거를 바람을 막을 수 있게 사방으로 철판을 대고, 차도를 달려야 하므로 엔진을 단 듯한 초미니 자동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단은 제 경험담입니다.

때는 1시 30분, 저는 자금성 출구에 있었고 2시까지 XFounder 밋업이 열리는 '차오창차오지'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택시기사들은 목적지를 듣자 100위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타이꾸이러!' 너무 비싸다고 외치며 20위안으로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기사들은 혀를 내두르며, 미터기도 그렇게는 안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가 그 미니차가 제 앞에 섰습니다. 미니차에서 나오신 할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눈은 선명하게 번득이는 분이셨습니다. 이 미니차에 제 목숨과 시간을 맡길 수 있었던 것도 이 할아버지의 인상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에게 70위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저씨와 40위안으로 흥정을 했습니다.

철판에 문과 창이 달아 나름의 구색을 갖춘 이 미니차 안에 자리를 잡으니, 정말 저 한 사람, 그리고 그 옆에 제 가방을 끼워넣을만한 조그만 자리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1인만 태울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미니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저는 차체와 제가 탄 뒷자석이 분리될 것만 같은 약간의 공포감이 들어 아저씨의 운전석쪽으로 몸을 바싹 기울였습니다. 아저씨의 운전실력은 탄 사람의 편안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떤 사람도 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평할 수 있었습니다. 신호에 멈췄다 다다다 가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거미 같았으며, 자유자재로 차도도 달렸다 자전거도로도 달렸다하는 것이 박쥐와도 같았고,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운전대는 뱀의 요사스런 눈 같았습니다.  그렇게 15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저는 기분좋게 40위안을 꺼냈습니다. 아저씨와 셀카도 한 장 찍었습니다.

상하이에 안착한 지금은 사통팔달 편리한 상하이 지하철 덕분에 3,4위안의 저렴한 비용으로 요기조기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중국인에 녹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