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0일 목요일

[ISUP/ 이스라엘 그녀의 스타트업 생존기] 모르는 집에 대고 도움을 청하다. 우여곡절의 도브 모란(Dov Moran) 인터뷰.



도브 모란
Dov Moran



도브 모란은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주다.

최초로 USB를 만들어 벼락부자가 된 그.
10조원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을 걸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실패.
그리고 그 돈을 모두 날리고 만다. 
안타까운 주변 사람들.

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더 창업을 한다.
다시 한 번의 실패.

하지만 그는 다시 도전한다.
이번에는 앞선 두 번에 비해서는 잘 되고 있다고 :)

Geektime에서는 2013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대해
공로상을 수여하였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12월 말의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였다. 

그리고 이어 그를 반드시 인터뷰하고 말리라
다짐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텔아비브 떠나기 전날 밤.
그바힘에서 또 늦게까지 일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청소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3시간이 더 걸린 절차를 통해 열쇠를 반납했다.




히브리어 종강시험을 보러 갔는데 교실은 텅 비어있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직진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지도 않고, 
거리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도 않아서 계속 걸어갔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페가 처음으로 나타나자 나는 직원에게 물었다. 
첫번째, 카페카페의 종업원이 거꾸로 가라고 했다. (맞았다.)

두번째, 창의적이고 아기적인 카페의 여주인이 멀리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을 제안했다. (틀렸다.)

택시가 너무 안 잡혔다. 애가 타들어갔다.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지나가는 차의 주인들에게
눈짓을 했으나 차를 세워주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여러 대를 보내고 나서 택시 한 대가 섰다.

택시는 HaPardes라는 거리 이름을 듣고 바로 주행해나갔다.
하지만 정작 그 거리에 왔을 때 15번지가 없다며 나에게 도리어 화를 냈다.
나는 패닉이었다.
아이패드를 한 손으로 들고 다니다가 실수로 지운 것인지
확대사진도 없었다.
나는 전화 한 통을 부탁했다. 
그런데 리모르의 번호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20세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인터뷰까지 15분 가량이 남았고, 그때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더운 날이었다.
내 짐은 정말 버거웠다. 
나는 HaPardes를 따라 걸었다.
48번지에서 24번지에 가기까지, 
정말 홀수번지가 들어서야 할 곳은 농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 농장을 다 지나니 5번지였다.



나는 5번지 집에다 대고 불렀다.
“슬리하!!”
이윽고 한 남자가 창을 열었고, 나는 길을 잘 못찾겠다고 말했다.
남편 분은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윽고 그의 아내가 차를 꺼내왔다.
정말이지 구사일생이었다.
시계를 보니 1시 26분이었다.
그 집은 내가 택시가 데려온 곳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하파르데스라는 말은 오렌지의 어린 나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오렌지 나무가 많은 거에요.”

그 아줌마는 나를 15번지 앞에 내려주었다.
나는 감사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나는 가방에서 마지막 남은 한국여인의 책갈피를 꺼내 그녀에게 건냈다.
그녀는 한국에 가서 날 찾아오면 되는거냐고 물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도브 모란 씨를 만나려면 위층으로 올라가라고 
한 여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행색이 전혀 기자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이해해주시길. 
나는 10시간 후 동유럽행 비행기를 타러가려 했으니까)


이윽고 도브 모란 씨를 만났다.

정말 감격스러운 만남이었으나
그는 바쁜데다가 내가 늦었고, 인터뷰도 원래보다 7분 길어져
약간 예민해지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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