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에바노트] 피터팬은 파란 시간에 눈을 쉬게 한다. 세상을 음미한다. 사랑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도 다음 주부터는 너무 많이는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려고요. 제 자신을 붙잡고 글을 쓰기 좋은 때이거든요. 주말을 보내면서 느낀 것은, 제가 기사 쓰는 일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좋아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커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파란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서, 독서도 운동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단짝 친구 정연이랑 군자역에서 오후 9시 16분에 만나 홍합탕과 함께 소주 3병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에 간 뒤, 다음 날 아침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미닛메이드 오렌지 주스로
정신을 차린 뒤 찍은 정연이네 집 마당의 감나무.


후배들이 대신 받아준 졸업사진을 가지러 왔다.
은행나무가 눈부신 GRE실 마당.
2011년에 여기서 서성이며 기다리다 면접을 보았던 나는,
햇수로 4년째 이 자리에 선다.

오늘은 목욕재계한 날이었습니다. 오전 11시에는 엄마, 이모랑 같이 싸파리 사우나에서 때를 밀었어요. 때를 밀고 나니 80g이 줄었더군요. 오후 2시 30분에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분이 오셔서 지압을 해주셨습니다. 저더러 눈을 너무 많이 쓰고, 특히나 생각이 너무 많아서 뒷목이 뻣뻣하다고 하셨어요. 온몸의 열이 다 머리 쪽에 쏠려있어 발로 내려갈 수록 몸이 차가워진다고 하셨어요. 엉덩이 쪽이 안 좋아서 앉아 있는 일을 많이 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자판을 많이 쳐서 손도 굳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아직 젊어서 지압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 필요할 때만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지압을 받은 뒤 2시간을 누워서 쉬라고 하셨어요. 저는 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내 안방 침대에 눕고 나니 스스르 잠이 들었습니다. 3시 16분에 잠들어 5시에 깨어났습니다.

쓸 데 없는 생각을 버리고, 가끔 눈을 쉬게 해주기로 했어요.


정말, 정말, 정말 소중한 장미. 이번 주에 어쩌면 가장 많은 생각주머니를 쏟은.


한국에 오니 욕심이 없어져서 좋아요. 미국에 있으면 +a의 일은 스스로 피하게 되더라구요. 그 시간에 여행을 가거나, 모임에 나가거나, 혼자 산책을 나가지, 노트북 앞에 앉아 이스라엘 기사를 쓰는 일은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에 오니, 시간 제약 때문에 안달나는 것이 없으니 마음이 차분해져서 제 시간을 활용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스케쥴러랑 맞지 않는 사람이야!' 하며 던져버렸던 3P 바인더도 다시 집어들었습니다. 비록 주말에 부랴부랴 정리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전략적이고 계획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생각입니다.

제 책 제목이 오늘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날마다 새로울 권리가 있다> 저는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하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시간은 느리게 가는 듯 하여, 아이들은 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어른의 시간은 빨리 가서, '나는 항상 젊고 싶은데 시간이 참 빨리 가는구나.' 하지요. 그 비밀은 시간의 축적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지루한 것을 싫어하여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을 보아도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한 만큼 다른 색깔의 책으로 차곡차곡 채워진 것 같다면, 어른들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아마도 '의무'를 이행하기 때문에 같은 일로 채워진 지난 날이 훌쩍 시간이 간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마치 A4용지로 그득 쌓인 탑처럼요. EBS 다큐에서 이 편을 본 저는 피터팬이 되기로 결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 청춘을 A4용지가 아니라 형형색색의 색종이로 예쁘게 꾸며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삶을 사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늘 새로운 나라에 가서, 이방인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 엄마가 저에게 늘 기억력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제 나이의 어느 시기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억이 바로 나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 더불어 최익용 교수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회색신사가 되지 마세요. 피터팬이 되세요. 

목계장터 /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끝에서 4행 올라가면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 선생님이 이 구절을 보시면서, "그래, 3년 살면서 한 7일쯤은 바보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치?" 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는 집에 오면 꼭 바보가 됩니다. 사물을 의인화시키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엄마랑 여행을 가게 되면 정말로 천치가 되어요. 춘천에 내려간 이 날은 초등학생 패션으로 가서, 공지천을 걸을 때는 담요를 허리에 두르는 것도 모자라 김밥 말듯이 하여 머리에 이고 다녔어요. 아직도 제 안에는 꼬마가 있는 것 같아요. (제 글을 보면 동화 모티브가 자주 출연하는 이유입니다.)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춘천 휴게소. 뒷배경에 우동 먹는 엄마와 
맞은 편에서 어린이 돈가스 먹는 딸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김 나는 우동, 흐르는 모녀의 정


기억에 관한 것. 엄마, 이모랑 얘기하다가 나온 주제니까.


오빠네 집의 아롬이.


오빠 사진 찍는 데 실패하자 이모가 보내주신 사진
사랑하는 엄마랑 오빠. 내가 이스라엘에 있던 2월에 오빠 졸업식

다음 주에는 더 운동을 해야겠어요. 오늘 안마사 분이 저더러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먹되, 삶아 먹으라고 하셨어요. 다행이도 앞으로는 회식 갈 일은 없겠네요. 고기도 덜 먹고, 앞으로는 음식도 더 꼭꼭 씹어먹으면서 - 적어도 30번은 씹어서 삼켜야 겠어요. 먹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내 치아와 내 발로 음식을, 세상을, 내 앞에 다가오는 것을 꾹꾹 눌러 음미하기로 했어요. 

오늘, 올해에 들어 두 번째로 성당에 갔습니다. 미국 가기 전 날,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와서 그 첫 주일에. 제가 기독교였던 것을 아시는 분들은 괘씸하실 수도 있지만, 천주교인 엄마 옆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같이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고해성사는 안 보았지만 곧 봐야겠죠. 성가를 부르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참 좋습니다. 오늘 성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판단하지 말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주 말씀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다음 주부터는 쑥스럽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사진을 많이 찍고, 제 셀카도 찍기 시작해야겠어요. 이거 원,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이번 주에 정연이, 크리스티나, 이기홍 교수님 외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사진이 하나도 없다니 원. 이제 음식 사진은 되도록 찍지 않으려고 해요. 생각해보면 곧 사라질 음식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지금 이순간 함께 있는,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니까요.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지금 이 시간 함께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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