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에바노트] 호명산을 오르며

아침 7시 쯤이었을까요?
여자 6명이 그 좁은 방 안에 마치 색연필이 플라스틱 곽에 누워있듯 그렇게 잠을 잤던 것입니다. 술에 젖은 이 여섯 색연필은 세상 모른 듯 자고 있었습니다. 간밤에는 추웠지만 이제는 거추장스러워진 잠바를 벗었습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미리내' 방을 나왔습니다.

지붕이 드리워진 마당의 나무 테미블 위에는 어제 새벽의 술상이 나름 정돈된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그 바로 뒤로 초록빛 물결, 청평의 냇물이 흘렀습니다. 옆에는 이모님이 바베큐판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이모님께 아침 인사를 드렸습니다.

가방에서 필통과 수첩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수림별장'을 나와 냇물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햇볕이 왜 인공적으로 느껴질까. 차가운 아침 기운도 낯설었지만 기분좋아야 할 햇볕이 낯설었습니다. 아직 선크림이 흡수가 안 되서 그런가. 한 참 후에서야, 아 어젯밤 내가 막걸리랑 소주를 마셨었지. 하고 깨달았습니다.

가는 길에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호명산'으로 가는 나무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등산! 기분좋은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왔다가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친구들이 걱정하겠다 생각이 들어 선뜻 그 방향으로 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해바라기를 닮았지만 더 얄따란 모습의 꽃들 사이로 걸어갔습니다. 전철이 지나가는 다리가 바라다 보이는 자전거용 다리에 다다랐을 때, 아 이제는 돌아가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뜻: 기분이나 느낌이 시원하고 깨끗한 모양

별장에 돌아오면, 누구라도 일어나, "어디 갔다 오셨어요?" 라고 물을 것을 생각했는데 아직도 다들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6월 그리고 몇 일이더라.. 일요일.. 하고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냇물을 마주보고 아름다운 냇물 이외의 그것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다가, 심심하기도 하고, 이런 풍경으로는 좋은 생각이 날 수가 없어. 생각이 들어, 다시 길을 나서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제 휴대폰은 죽은지 오래이니 링겔꽂은 친구 휴대폰을 깨워보니 8시 18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 엄청 이른 시간이구나. 그럼 등산을 가야겠다!

저는 바지런히 걸어 징검다리에 도착했습니다. 징검다리는 거대한 시멘트 사각기둥이었는데 고소공포증이 없는 저는 아래 사각기둥 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모판을 건너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등산로 지도로 현위치를 파악하려 했는데 어림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가장 멀리가면 호명호수라니! 지도 한 가운데 표시된 그 호수가 낭만적이게 생각되었습니다. 산 속의 청평사, 혹은 대성사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꽤나 먼듯 했습니다. 지도 앞에 서서 정하지 못하느니 일단 오르자, 생각하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습니다. 계단 하나는 딛는 다리가 허벅지와 맞붙어야 할 만큼 가팔랐습니다. 제 바로 앞의 등산객 부부의 말로는 한 할아버지가, 이 산이 참 가팔러. 하셨다고.

*바지런히: 놀지 아니하고 하는 일에 꾸준하게

제 모습을 보면, 등산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깜박 잊고 머리끈을 안 가져와 머리는 내린 상태로, 티셔츠에 인디언 무늬 조끼, 예진이가 만들어준 구슬 팔찌와 어젯밤 종환오빠 말로는 탄환 같다는 목걸이, 등산할 때 가장 난관이 될 딱 맞는 면바지. 그리고 슬리퍼로 착각하기 쉬운 샌들. 가방도, 휴대폰도 없었으며 술을 마신지 약 9시간이 지난 지금 물도 몇 모금 밖에 마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지금 이 모습으로 산행을 하는 것이 제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실리콘밸리에 스스로를 던져 넣을 때, 제가 모든 것이 준비되었든, 어느 무엇이 부족하든 저는 제 몸뚱아리만으로 그 일을 직면해야 하니까요. 등산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산복을 입은 사람과 제가 그리 산행조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 다람쥐처럼 올라갔습니다. 문득 무소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난관: 일을 하여 나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고비

1.4km를 올라오고 나서 호명산 정상까지 800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 등산객에게 시간을 물으니 9시 5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상까지 올라가보기로 마음 먹고 다시 발걸음을 놀렸습니다.

편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으나 사실 저는 줄곧 같이 온 동아리 친구들이 행여나 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방불명 신고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이렇게 혼자 나왔다가 정말 내가 큰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숨어있던 간첩이 나를 납치해서 4일 이상 굶어야 하는 것 아닐까. 갑자기 독사가 내 발목을 무는 것은 아닐까. 술을 마신 뒤 탈수해서 이대로 쓰러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스님이 내 머리를 밀어주셔서 나는 엉겹결에 비구니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나서 이 산을 나왔을 때 나는 실리콘밸리에 가기 위해 가발을 사서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산 속의 외진 곳을 배경으로 하는 김기덕 감독의 <일대일>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등산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나중에 제 행방물명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제 인상착의에 대해서 설명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저를 찾아나서는 제 동아리 친구들의 이야기가 영화 한 편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본 <리스본 행 야간열차>가 아주 훌륭한 예입니다.

등산스틱 대신 나무 기둥이 저의 단단한 버팀목이 되주었습니다. 한 나무는 잠시 서서 그 나무껍질을 만져보기도 하고, 한 나무는 그 시원한 기둥에 기대도 보고, 한 나무는 약하게 흔들어 보면서 나무들과 친해졌습니다. 800m 표지판에서 얼마 안 남았겠지 하며 정상을 바라보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났습니다. 산은 사람을 참 겸손하게 합니다. 마침내 100m 표지판으로 바뀌자 저는 열심히 발을 놀렸습니다.

정상에 다다르자 헬리콥터 착륙대가 펼쳐지며 탁 트인 공터에 나왔습니다. 저는 돌울타리 위에 올라서서 청평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야호

유채원

화이팅

할 수 있어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뒤이어 정상에 도착한 부부 등산객이 신경 쓰여 그러지 못했습니다. 돌아가려는데 우편함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편함 위에는 '호명산 방명록' 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뚜껑을 젖히니 노트 한 권과 펜 서너 개가 같이 있었습니다. 저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젖혀진 페이지에 '로또 꼭 당첨되게 해주세요' 라고 아주 진지한 어르신이 쓴 것 같은 글 아래에 제 자취를 남겼습니다.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지만 이 방명록에 그리고 가슴에 사진을 찍었으니 괜찮았습니다.

저는 태음인입니다. 살이 찌기 쉬운 체질이지만 그렇기에 운동을 많이 하여 체력이 좋고, 건강해 보이는 편입니다. 땀을 흘리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이 모두 지난 주에 읽은 태음인의 설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침에 태어나서 그런지, 혹은 말띠라서 그런지 아침에 눈이 쉽게 떠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산행을 하기 좋았던 것입니다. 자기 탐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방법론들이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없는 자신을 넓은 군집에 포함시켜 설명해 놓은 것을 읽으면, 나 같이 독특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내 자신을 사랑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세상에 본보기가 되는 많은 위인들이 있고, 부 권력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가 선택한 길이 최고의 길이다.' 생각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남들이 짜준 일정이 있더라도, 항상 내 스스로의 일정, 내 스타일을 접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즐기기로 했습니다. 원래 인생은 외로운 길이니까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혜롭게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에서 아버지랑 등산할 때 일본 사람들은 등산객에게 귀엽게 '곤니찌와'라고 인사하던 문화가 인상 깊게 각인되어, 저는 마주치는 등산객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냈습니다. '네'라고 짧게 인사하는 사람, 덩달아 '안녕하세요'하는 사람, '미끄러운데 조심하세요', '저 샌들을 신고 이 산을 올라갔어요?' 하는 사람. 산 2/3 지점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아니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거에요?', '엄청 일찍 다녀오시고, 부지런하시네요.'하는 사람..

그렇게 내려오다보니 처음 그 등산로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모판을 보다가 발을 적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 발을 조심스로 모내기판에 넣었습니다. 물은 시원했고, 흙은 보드라웠습니다. 축축해진 한 발과 다른 발을 놀려 징검다리에 닿았습니다. 이번에는 저 냇가의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건넜습니다. 등산을 하기 전과 등산을 한 후의 산책로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등산을 하기 전에는 그 고요함과 깨끗함이 주를 이루었는데, 등산 후에는 수평적인 세계로 보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생활공간은 수평면 위의 세계이다. 사실은 수직상의 공간도 존재하는데. 그 수직상의 공간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오묘한 세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침 내 별장에 도착했을 때, 명희와 주영이는 이를 닦고 있었습니다.

"언니,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저희는 언니가 혼자 서울 가신 줄 알았는데."

모든 짐이 이 방에 있는데. 내가 잠시 없어진 줄도 몰랐구나.
저는 주영이 명희와 오합지졸라면을 끓였습니다. 신라면, 너구리, 육개장, 안성탕면이 들어간 라면. 아침을 먹고 이를 닦는데 보람언니가

"채원아 너 이닦는 폼이 복싱선수가 경기 준비하면서 이닦는 것 같아."

라고 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변기에 앉아서 팔을 무릎을 괴고 이닦는 폼이 그렇게 비쳐졌나봅니다.

문득 일회용품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MT 가면 항상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일회용품인데, 착한 사람들이든 모범적인 집단이든 상관없이 엄청난 일회용품을 소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앞으로 MT에 갈 때는 내 컵, 내 밥그릇, 내 수저는 내가 챙겨가야 겠다 생각이들었습니다.

또 MT 장소에 미리 인원수만큼 친환경 휴지나 놋그릇, 수저 세트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창업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올까 하다가,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굳이 혼자되려 하지 않기로 하자, 생각이 들어 같이 형준오빠 차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여자 네 명이 뒷자석에서 또 다시 색연필각에 갖혔고, 골반이 아파 끙끙대며 세종대 GRE 동아리실로 도착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며, 오빠가 차로 데려다주시는 김에 책상의 제 모든 짐을 챙겨 집에 왔습니다. 차창문에 비치는 제 얼굴은 이를 드러내고 눈까지 웃으면서 주영이, 명희, 형준오빠에게 인사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볼 수 없는 그 웃음이 반갑고 예쁘게 생각되었습니다.

사람. 나를 웃게 하는 사람들.

혼자. 나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