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6일 일요일

[에바노트] <노예 12년> 영화 & 원작 책 비교, 생존하다 & 산다 비교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1.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251쪽.
이런 잔인무도한 행동이 노예 소유주들의 가정에 미치는 효과는 분명하다...어린 소년은 그 노인을 혼내면서, 어린 마음에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특정 횟수의 채찍질을 선언하고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채찍질을 가했다...그걸 보고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철두철미한 녀석이라고 칭찬했다.

아아 정말 이 대목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을지로 3가에서 내리면서 이 대목을 읽었는데 내가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이 대목을 생각하며 인상을 썼는데 지하철에 타던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정도였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인 것인지.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이 말이 맞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어린이가 성장하면 어른이 될 것이고, 자신이 자라온 환경의 영향으로 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또 자신의 아이를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대로 이 말을 받아들여보자. 가령 내가 우리 엄마의 엄마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더 생각을 해보아야 겠다.)





2. 배스

253쪽.


온갖 지역 문제에서 그가 인기 없는 측을 옹호한다는 건 당연히 여겨지는 듯했고, 그가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재치 있고 독특한 방식을 듣는 것이 사람들에게 불쾌함보다는 재미로 다가갔다. 

솔로몬의, 배스(브래드 피트 역)에 대한 묘사.
이 묘사를 통해서 나는 그 이전에 내가 배스에 대해 썼던 말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베스는 노예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극 중에서 상당히 이상적인 인물로 비쳐진다.
그 다음 만남에서 플랫이 사실대로 털어놓았을 때도
그는 그저 들어주는 사람일 뿐이었으며,
플랫의 손을 잡아주며 '내 꼭 그리하리다.'라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오히려 영화 속에서 더 자연스러웠다.

참고로 오늘 토론 때는 이 장면이 옥의 티라고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정말이지 
배스 역이 얼마나 축소되고, 그 연기가 절제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배스가 실로 플랫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한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스는 3명에게 편지를 쓰고, 이를 위해 플랫과 여러 날 밤 함께 만났다. 6주 후에는 다시 나타나 만약 봄까지 자신의 목숨이 붙어있다면 자신이 직접 샌드힐에 가겠다고 까지 말한다. 
정말 그의 목숨을 걸고 한 일이었다. 

솔로몬은 배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62쪽.
자기 삶은 자신에게는 별 가치가 없으며, 그렇기에 내가 자유를 찾도록 노력하고, 그리고 노예제라는 가증스러운 제도에 맞서 계속 싸워 나갈 거라고 했다. 

자기 삶이 가치가 없다니! 160년이 지난 이후에 내가 영화 <노예12년>을 보고 감동하고, 책 <노예 12년>을 보며 감동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배스의 도움으로 솔로몬이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기 때문 아닌가.
배스의 삶은 참으로 가치있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브래드 피트가 배스의 역할을 맡은 것이, 브래드 피트 자신과 좋은 비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브래드 피트는 노예 12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이 영화의 감독을 섭외하기 위해 직접 영국에 갔고, 미국에서 큰 논쟁거리인 노예의 문제를 소재로 영화화하기로 다짐한다고. 이것은 마치 장동건이 해외의 감독을 섭외하여 우리나라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브래드 피트의 이 결정은, 배스가 목숨을 걸고 한 행동에 비할 수는 없지만 분명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3. 패치

솔로몬은 패치를 다음과 같이, 애정을 담아 묘사한다. 그의 묘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패치라는 인물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책 속에서도 패치의 고통에 내가 더 민감했던 것은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185쪽.
패치는 호리호리하고 허리가 곧았다. 그녀는 인간의 몸이 직립이 가능하다는 듯 꼿꼿이 몸을 펴고 섰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노동이나 피로, 심지어 채찍질로도 파괴할 수 없는 어떤 고고한 분위기가 있었다...자연히 그녀는 기쁨의 존재,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명랑한 처녀였다.  

패치가 엡슨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영화 속에서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는 사실, 이 장면이 브래드 피트가 여러 장면을 결합하여 넣은 장면인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책 속 내용 - 즉 진실 그 자체였다.

패치는 정말로, 비누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외출했다는 이유로 
정말 잔인한 채찍질을 당한다. 



248~249쪽
사실 그때부터 패치는 예전의 그 처녀가 아니었다...예의 그 활기와 탄력 넘치는 걸음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천상의 기쁨이란 단순히 쉬는 것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애절한 가사 속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

천상의 낙원은 바라지 않아,
지상에서 근심에 허덕이는 내가
그리는 유일한 천국이 있다면
휴식, 영원한 휴식이라네.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4. 전체적인 느낌.

영화와 책을 비교하자면, 영화는 백인의 눈에서 그려진 것이라면 책은 보다 흑인들의 생각까지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을 생각하면 백인 감독관이 멀뚱히 서있는 흑인 노예 6명에게 사탕수수를 어떻게 자르면 되는지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노예들은 그리 똘똘하거나 잘생긴 것도 아니다. 백인 감독관 입장에서 '노예'라고 부를 만큼 타성에 젖은 모습이다. 또 영화 전반적으로 노예들끼리 많은 대화를 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책에는 노예들의 삶을 인간미 넘치게 그린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솔로몬이 책에서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대해 설명했을 때였다. 노예들은 일 년 중 오로지 3일간, 크리스마스 동안에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지역의 노예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밤새도록 춤 추는 축제를 벌인다. 
또 솔로몬이 노예 개개인에 대한 기억을 애정 넘치게 묘사한다. 영화 상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플랫은 몰이꾼으로서 같은 흑인들에게 채찍질을 해야 했다. 이 때 플랫이 패치나 에이브라함에게 채찍질을 하는 척하고, 그들이 실감나게 연기를 하는 장면이 책에는 나온다. 멀리서 백인들은 눈치 못채도록 말이다. 

말하자면 영화 속에서는 슬픔이 두드러진다면, 원작에는 빛과 어둠을 같이 보여준다.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 농사일에 대한 설명도 구체적이어서 정말 읽는 내내 계속 장면이 그려졌다. 

5. 생존하다 VS 산다의 비교


솔로몬 노섭에게 무척 감사한다. 이 글을 남겨주어서.
그는 개인의 경험을 책에 담았으나,
그것이 동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미국 역사에, 
더 나아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민영씨가 말했다. 
즉 개인의 문제가,
너의 문제,
우리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수요일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내 내 문제가 
아주 작은 것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솔로몬 노섭처럼 생의 고백이 되는 책을.
그러려면 
그처럼 정말 열심히 인생을 살아내야겠지.


그는 참 살아있길 잘 했다.
다른 노예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노예로 죽 사느니
죽는 것이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로 통한다. 

하지만 솔로몬은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마침내 노예의 시기를 견디어낸 보람을 얻게 된다. 

이 순간도 지나가리라.

솔로몬은 말했다.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생존은 무엇을 말하는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서 최소의 조건들, 이를테면 의식주로 생명을 부지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생존은 당연히 하는 것으며 그것을 넘어서
삶 속의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사는 것 아닐까.

생존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 어울리고,
삶이라는 말은 사람에 어울린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이 
노예 12년을 생존했다,
가 아닌
노예 12년을 살았다.
라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1. 그는 취미이자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바이올린을 켜는 것.  

솔로몬은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영화 속에서 바이올린을 켤 때의 그의 모습은 매우 슬프지만 책에서 그는

아마 바이올린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그 12년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행복을 표현하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었으며,
때로는 수익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한다. 

2. 솔로몬은 글을 쓸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는 글을 아주 잘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삶이 너무 바빠 글 쓰는 일 없이 그저 '사는' 사람 혹은 시기도 있고,
글을 쓰며 '사는' 사람 혹은 시기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하나, 적음으로서
일단 내가 그 시기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알 수 있고,

둘, 적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 시기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떤 것이 의미있는 삶인지,
읽혀질 만한 글인지는
내 스스로도 많이 고민해볼 문제인 것 같다. 





p.s. 


삼청동 코코브루니에서
4월 5일 토요일, 5시에 열린 모임.


숭례문학당 가족들과 :)

숭례문학당에게 정말 고맙다.
이번이 두 번째 모임인데,
이 모임에 나가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게 만들어주니까.

요즘 나의 30%는 다 여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에너지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사화작업에
쏟아야 하는데..
화이팅!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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