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상하이 에바노트] 3월 마지막 날. 중국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



3월 마지막 날 
중국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


상하이에 온지 2개월 하고도 2주가 지났습니다. 상하이에서의 직장생활도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저에게 있었던 변화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로, 졸지 않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점심을 먹으면 당연히 졸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인턴생활을 하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버릇인데, 중국에 와서 그 버릇을 고쳤습니다.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포장문화 덕분입니다. 예전에는 밥을 남기기가 아까워서 배가 불러도 꼭 다먹었었는데, 이제는 점심을 먹으면 반드시 조금은 남겨서 싸간 다음 저녁으로 먹고 있어요. 덕분에 맑은 정신으로 점심 먹은 후에도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테크노드 메인. 캡스톤파트너스 기사와 마이리얼트립 기사가 보입니다^^

둘째, 기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어요.
작년에는 정말이지 변비걸린 사람처럼 기사 하나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 처음 와서도 하루에 기사 한 편을 쓰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시간, 영어 실력에 대한 욕심을 버린 덕분입니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욕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다 넣으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기사도 길어지고,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지고 질질끌게 되었어요. 그런데 테크노드 전사회의 때 영어 기사의 길이를 줄여달라는 위팅의 발표를 듣고, 기사량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요즘에는 word카운트의 350자 ~ 400자에 맞게 쓰고 있어요. 정보 제공 욕심 때문에 더 길어지면 600자가 넘을 때도 있지만요.

제가 처음으로 쓴 영어기사는 2013년 12월 31일에 Geektime에 쓴 것이고, 두 번째 기사는 2014년 11월 30일에 TechNode에 쓴 것입니다. 써본 기사량이 적은 만큼 제가 쓰는 어휘나 어법에 대해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다른 기사들의 세련되고 깔끔한 표현들을 보면서 뒷골이 서늘해지거나 마음이 풀썩 가라앉는 경험을 종종 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표현들을 돌려가면서 짜깁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조각보옷을 깁는 양 문장문장에 욕심을 내다보니 속도도 느려졌습니다. 그런데 스피드가 더 중요함을 많이 느끼게 되면서부터,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제가 인터뷰이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제 입으로, 제 목소리로 편하게 풀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 창업가와 이야기할 때 감동을 받은 부분, 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느낌표를 가져간 부분이 어디였는지 기억합니다. 제 방법은, 그 감동 그 마음 그대로 일단 다 적어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쓰고 싶은 글의 뼈대를 잡은 다음, 회사 홈페이지의 올바른 표현이나 다른 기사들을 참고하며 제 표현을 바로 잡습니다.

여기다 회사의 PR담당 분들, 마지막에는 영국의 Mike Cormack이 검토를 해주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런웨이에 올릴 만한 글이 나오게 됩니다. 마이크가 수정한 부분과 제 원본 기사를 비교하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제 글이 테크크런치 기자의 수준이 될 만큼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제는 개방적인 테크블로그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기사 하단에는 제 이메일이 있어서 스타트업이나 관련 조직에서부터 저에게 기사 의뢰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은 저를 친근하게 Eva라고 부르며 제 기사에 대한 평을 해주고, 자기 회사 서비스 링크를 달아 제 코멘트를 부탁하거나, 흥미로운 기사 제안, 산업 전반적인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의뢰합니다. 상하이에 있는 경우에는 아예 그 회사에 방문하기도 해요.

완성된 기사 한 편을 레스토랑의 요리라고 비유하면요, 이런 이메일 문의는 마치 장을 보면서 야채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입니다. "조금 덜 익은 것 같은데, 나중에 좀 더 무르익으면 사갈게요."라고 말이죠. 물론 제철이 된 채소의 경우에는 오오오!를 연발하며 요리를 시작합니다. 아예 저한테 요리를 해서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보도기사 전달) 이 경우에는 저희 쉐프님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 쉐프님이나 다른 요리사들의 추천이 있을 때에만 요리로 내놓고 있어요. (다음카카오 케이큐브 벤처스 합병 기사, 비네이티브 투자 유치 기사가 그 경우입니다.)



셋째, 중국어가 조금씩 늘고 있어요.
중국어는 아직도 제가 많이 반성을 하면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말하기 전에 영어로 할 수 있는 말과 중국어로 할 수 있는 말을 구분해서 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어로 말을 그냥 막 던지고 있어요.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중국에 온지 2주만에 아이폰6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 핸드폰인 Meizu를 사게 되었는데, 한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카카오톡도 안 쓰고, 네이버 사전을 대체할 영한사전을 찾게 되었어요. 영어, 중국어만 쓸 수 있는 가운데, 일기도 중국어로 쓰기 시작했어요.

가령 둔황에 혼자 여행하다가 제 여권을 보고는 중국인이 아니면 민박집에 묵을 수 없다며 밤 10시에 경찰서에 간 적이 있어요. 결국 외국인을 숙박할 수 있는 4성급 호텔에 더 비싼 돈을 내고 묵어야 했습니다. 그 때의 섭섭한 마음을, 여기는 중국이니 중국인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로에서 뺨맞았으면 종로에서 눈 흘겨야 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 덤덤하게 경찰서에 간 일기를 썼습니다. 이렇게 일기를 써서 위챗으로 보내면 제 과외선생님인 세실리아가 글을 교정해줍니다. 중국어 블로그 LOFT에 올렸습니다만, 괜스레 경찰서에 갔다는 얘기를 해서 다들 제 걱정을 할까봐 위챗 모멘트에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에 간 바로 다음 날. 사막을 보러 둔황에 왔고, 마침내 사막을 보았습니다. 고진감래.

오늘 친구 둘 앞에서, "케이트가 내 왼손에 헤나를 그려주었는데, 한국인들이 모이는 독서토론 모임 뒤풀이에서 어른들이 내 헤나를 보지 않도록 하면서 술을 마시느라 아주 혼났어." 라는 말을 제스처와 함께 설명하는데, 친구들이 알아듣고는 하하 웃었습니다.

중국어를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친구들이 제 말을 알아듣고, 제 개그에 웃어줄 때에요. 제 동갑인 남자애가 저한테 영어로 말하면 제가 도도하게 "중국어로 말해줄래?" 하면 친구들이 제 말투 듣고 킥킥 웃거든요. 회사에서 분위기메이커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넷째, 규칙적인 생활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외로움 병에 빠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정말 잘 빠지는 병인데, 이 때 시계가 9시 이내라면 어김없이 술친구인 정연이에게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럴 일이 없어요. 아니,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규칙적인 팻말들을 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퇴근하고 나서 바로 댄스수업에 가거나, 중국어 수업을 잡아두어서 외롭다는 감정에 쏟을 에너지를 활동으로 발산하고 있어요. 한 번도 제 선택사항에 없었던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가 생기면서 정말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었어요.

기분이 몹시 안좋을 때, 그나마 글을 써서 좋은 글이 나오면 좀 나은데, 그것도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거든요. 그림을 그리면 생각이 없어지고, 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외로울 때는 외로운 소녀 그림, 애정이나 관심에 목마를 때는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여자의 그림, 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을 때는 원색의 강렬한, 자신감이 넘치는 여인 그림을 선택합니다. 이 그림을 똑같이 캔버스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못 그리고 잘 그리고는 안중에 없어요. 제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에 있어서 밉고 고운 것이 있을리 없으니까요.



다섯째, 혼자 재미있게 사는 법.
집에 혼자 살고, 또 출장이 자주 있다보니 집이 허하게 느껴지는 적이 많았습니다. 침대가 좀 큰 편인데, 저는 그 침대의 구석 1/3에 방석 두 개만한 전기장판을 깔고, 최대한 전기장판에 밀착하여 차렷해서 자거든요. 이런 환경이라면 혼자 공부를 하고, 일을 더 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만, 사람은 무척 다채로운 무지개색깔 같은 존재라서 일이나 공부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그 능률도 매번 100%를 유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중국은 제가 네 번째로 혼자 사는 나라입니다. 영국 3개월, 이스라엘 7개월, 미국 3개월, 그리고 중국. 이스라엘에서 일만 하면서 살아봤는데 정말 인간이 피폐해진다는 것, 일의 능률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반대로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잘 쉬면, 월요일에 더 일에 잘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한 가운데 혼자 놀기도 물론 할 수 있지만,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저만의 보증수표 3종이 있어요. 에어비앤비 (Airbnb), 카우치서핑 (Couch Surfing), 그리고 밋업(Meetup)입니다. 회사에 절친도 위팅, 카페 -가 있긴 하지만, 그 친구들은 상하이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제가 놀러가자고 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카우치서핑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이미 중국에서 세 번 해보았어요. )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왕카이, 레이나, 로렌스) 밋업은 주말의 빈 칸, 평일에 빈 칸에 종종 채워넣습니다. 그림 그리기 밋업, 근교여행 밋업, 연극 밋업에 갔었고 좋은 친구들도 덩달아 사귀게 되었어요.



지난 주말에는 케이트, 세게이 - 러시아 커플을 집에 묵게 해주었어요. 알고보니 세게이가 러시아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더라고요.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어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Laoshi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엑셀러레이팅도 받았답니다. 이 친구들에게서 러시아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고, 같이 등산도 나갔으며, 케이트는 제 손등에 헤나도 그려주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정말이지 주변에 구차하게 신세를 사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호스팅을 하니, 베푸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아, 이제 내가 베풀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섯째, 제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당황하셨죠.)
작년에 윤모언니와 대화가 생각나요. "언니 저는 제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매력은 말야, 계속해서 노력을 쌓아가면 자연스레 생기는거야."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년 12월부터 1.5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고 있어요. 오늘은 최고의 날이니까,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고, 거울을 보았을 때 씩 웃을 수 있는 것에서 멋진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제 스타일이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 회사 안에서도 저만의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 같아요. 아직 일적인 부분이나 중국어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아 엠마, 위팅, 카페에게 질문하는 적도 많은데, 고마움을 표현할 뿐 질문을 한다고 해서 눈치를 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항상 제가 갖고 싶어하던 '당당함'이라는 단어를 갖게 되었어요.



이 글에 다루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댄스수업, 여행, 독서토론 이야기 들인데, 종종 하게 되겠지요. 이제 밤 10시가 되었으니 집에 가야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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